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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심리 잘 쓰는 비법? 그 사람의 신발을 신어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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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심리 잘 쓰는 비법? 그 사람의 신발을 신어봐라”

입력
2019.01.02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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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작가 아모스 오즈, 생전 미공개 인터뷰

28일 별세한 이스라엘 작가 아모스 오즈. 생전 "오직 책만이 오래오래 살아남을 수 있기에 어렸을 적 나는 사람이 아닌 책이 되고 싶었다"고 말했던 그는 이제 그 바람처럼 책으로 오래오래 우리 곁에 남을 것이다. 토지문화재단 제공
28일 별세한 이스라엘 작가 아모스 오즈. 생전 "오직 책만이 오래오래 살아남을 수 있기에 어렸을 적 나는 사람이 아닌 책이 되고 싶었다"고 말했던 그는 이제 그 바람처럼 책으로 오래오래 우리 곁에 남을 것이다. 토지문화재단 제공

이스라엘 작가이자 평화운동가인 아모스 오즈(79)가 지난 달 28일(현지시간) 암투병 끝에 별세했다고 로이터통신 등 외신이 보도했다. 현대 히브리 문학 최고의 작가로 평가받는 그는 최근 10여년간 노벨문학상 수상 후보로 꾸준히 거론돼왔다. 이스라엘 문학상을 비롯해 프랑스 페미나상, 영국 윙게이트상, 독일 하인리히 하이네상, 괴테 문학상 등 유럽 권위있는 문학상을 두루 수상했다.

예루살렘 히브리대에서 철학과 문학을 전공하고 1961년부터 본격적으로 작품을 발표했다. ‘블랙박스’, ‘나의 미카엘’, ‘여자를 안다는 것’, 자전소설 ‘사랑과 어둠의 이야기’ 등 대표작에서 인간의 다중적인 본성과 삶에 대한 성찰을 제시했다. 그의 책은 45개 언어로 번역돼 전 세계에 널리 소개됐고 10여 종이 국내 번역, 출간됐을 정도로 한국에서도 고정 독자층을 형성했다. 2015년 박경리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돼 한 차례 한국을 방문한 바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과 관련해 팔레스타인 독립국 건립을 공개적으로 찬성한다고 밝히고 반전단체에서 활동하는 등 평화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아모스 오즈의 미공개 인터뷰를 소개한다. 2012년 10월 문학평론가 허윤진씨와 전화 인터뷰다. 본보는 당시 노벨문학상 수상이 유력했던 작가와 인터뷰를 진행했으나 수상이 불발하며 보도하지 않았다.

-당신의 작품들은 경이로웠다. 너무도 섬세하고 아름다운 작품들을 써온 거장과 이야기 할 기회를 얻게 되어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한다. 한국어 번역본으로 ‘나의 미카엘’(1968), ‘블랙박스’(1987), ‘여자를 안다는 것’(1989), ‘삶과 죽음의 시’(2007)를 읽었다.

“고맙다.”

이야기의 전통

-당신의 소설에는 현대 과학의 영향이 있는 듯하다. ‘블랙박스’에서는 광학이 언급되고, ‘나의 미카엘’에서는 남자 주인공인 미카엘의 직업이 지질학자이다. 현대 과학, 특히 자연 과학이 혹시 당신의 소설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당신이 소설을 쓸 때 당신이 영향 받은 히브리 전통의 성서적이고 신화적인 지식이 현대 과학과 인식론적으로 충돌하지는 않는가?

“예컨대 ‘나의 미카엘’의 지질학자와 ‘블랙박스’의 사회과학자(기드온 교수)를 보자면 나는 분명히 그런 과학 분야와 그 밖의 과학 분야에 큰 관심이 있다. 그러나 내 자신은 과학자가 아니다. 그저 흥미와 호기심이 많은 아마추어일 뿐이다. 소설을 쓸 때 나는 과학 분과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이야기꾼이고, 그래서 나에게 항상 가장 중요한 것은 이야기 자체다.”

-‘블랙박스’는 편지 형식을 쓴 작품이다. 편지는 이 작품에서 교육적인 기능을 한다. 그리고 ‘블랙박스’에서 문학의 구술성이 비추는 섬광 같은 것을 보았다. 혹시 히브리적인 교육 전통이 당신이 쓰는 방식과 당신이 쓰는 내용에도 영향을 미쳤나?

“나는 이야기꾼으로 태어났고, 내가 아주 어린 꼬마였을 때부터 나는 동네 애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아마 여자애들에게 뽐내려는 의도였겠지. 나는 글을 쓰는 데 있어서 아주 엄격하게 훈련되어 있다. 매일 아침 다섯 시에 일어나서 책상 앞에서 몇 시간을 보낸다. 글을 쓰고, 지우고, 다시 쓰는 것이다. 이때 사실 내가 하는 것은 책상 앞에서 앉아서 내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는 일이다. 내가 그였다면? 내가 그녀였다면? 이렇게 나는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 본다. 다른 사람의 신을 신어보고, 다른 사람의 피부로 느껴본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 대해 상상한다. 이것은 호기심에서 나오는 것이다. 내 글쓰기의 최대 동력은 호기심이고, 나는 호기심이 매우 많은 사람이다.”

-당신은 무엇에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가?

“나는 사람들에게 호기심이 많다. 비단 최근뿐만 아니라 늘 그렇다. 만일 나에게 화성에 가서 24시간을 보내는 것과 어떤 집의 벽에 붙은 파리가 되는 것 중 한 쪽을 택하라고 하면 당연히 후자다. 그 편이 훨씬 재밌을 테니까 말이다.”

-당신에게 상당한 유머 감각이 있다는 것을 알겠다. 이름의 문제로 넘어가 보겠다. ‘블랙박스’의 어린 주인공은 성경의 룻기에 나오는 보아스(Boaz)와 이름이 같다. ‘여자를 안다는 것’의 주인공인 킬러 요엘은 성경의 선지자 요엘(Joel)과 이름이 같다. 당신은 인물들의 이름을 지을 때 히브리 전통의 문화와 맥락을 염두에 두는 편인가?

“그렇다. 나는 인물들의 이름에 대해서 굉장히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다. 인물들의 이름을 짓는 일은 내 습관과 관련이 있다. 나는 매일 아침 히브리어로 성경을 한 챕터씩 읽는다. 평생을 해온 습관이다. 그래서 성경에서 나온 이름들을 자주 인용한다. 내 이름인 아모스도 성경에서 온 이름이다. 아모스는 내가 좋아하는 선지자 중의 한 명이기도 하다. 그는 놀라운 사회적 정의감을 지녔으며, 이스라엘 민족을 위한 사람이었다.”

젊은 시절의 아모스 오즈. 예루살렘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타인의 허기와 상실, 외로움과 욕망을 자신의 것처럼 여기는 훈련을 통해 현대 히브리 문학 최고의 작가로 성장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젊은 시절의 아모스 오즈. 예루살렘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타인의 허기와 상실, 외로움과 욕망을 자신의 것처럼 여기는 훈련을 통해 현대 히브리 문학 최고의 작가로 성장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키부츠에서 생활했던 경험에 대해서 묻겠다. 이스라엘 인들은 키부츠 생활에서 어떻게 개인성과 집단성 사이의 조화를 도모하는가?

“이스라엘은 고대의 예루살렘 왕국으로, 성서적 대지로 돌아가고 싶다는 이스라엘 인들의 집단적 꿈에서 태어났다. 유대인들은 다양한 나라로부터 돌아와서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세웠다. 나는 이민자들의 자녀로, 그 집단적 꿈의 일부가 이뤄지는 것을 보았다. 그 꿈은 완전히 이뤄진 것은 아니다.”

-이뤄지지 않은 꿈이 있다는 것, 그래서 현재와 미래 사이에 긴장이 있다는 것은 작가인 당신에게는 시적인 기능을 하지 않는가?

“정말 그렇다. 완전히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이 꿈의 본질이다. 꿈을 이루었거나 이루려고 하는 순간, 꿈은 헝클어지고 불완전해진다. 그래서 성취된 꿈은 다른 꿈들을 위한 토대가 되어야 한다.”

-시적인 표현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예루살렘의 꿈이 완전히 성취되는 쪽과 지연되는 쪽 중에서 어떤 쪽을 택하고 싶은가? 인간으로서, 작가로서, 유대인으로서.

“인간으로서나 작가로서, 나의 첫 번째 선택은 좀 더 인도적인 쪽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고통을 덜 안겨주는 쪽 말이다. 더 큰 평화, 이해, 화해가 있는 쪽. 이 선택은 비단 이 문제뿐만 아니라 어떤 진퇴양난의 상황에서든 같을 것이다.”

-샬롬(평화)의 말이다.

“아, 그 히브리어 단어를 써줘서 고맙다.”

-비록 당신의 소설을 번역된 형태로 읽기는 했지만 당신의 소설은 매우 시적인 언어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당신이 산문가인데도 말이다. 혹시 당신의 모국어인 히브리어가 당신의 시적인 글쓰기에 깊이 영향을 주었는가?

“분명 그렇다. 히브리어는 나의 악기다. 나에게 히브리어는 바이올리니스트의 바이올린이다. 나는 히브리어로 살고 히브리어로 꿈꾼다. 히브리어는 나의 글쓰기 양식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

타자와의 포옹

-‘여자를 안다는 것’과 ‘나의 미카엘’에서 당신이 여성 심리를 묘사하는 부분에서 큰 감명을 받았다. 예컨대 ‘나의 미카엘’에서 주인공인 한나의 섬약한 인격을 정말 좋아하게 되었다. 에밀리 브론테를 비롯한 영문학의 여성 작가들을 떠올리게 하는 부분이다. 당신은 남성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여성 인물들의 내면 풍경을 묘사하는데 있어서 어떻게 이렇게 ‘유창’할 수 있는가? 당신에게 있어서 ‘여자를 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내가 아주 젊었을 때부터 나는 여성들의 경험에 많은 관심이 있었다. 젊은 남성으로서 여성들에게 관심을 갖는 명시적인 방식이 아니라, ‘여성이 되는’ 경험에 관심을 갖는 암시적인 방식으로. ‘나의 미카엘’을 쓸 때 나는 겨우 스물 네 살이었다. 신기하게도 나는 그때 소설 전체를 여성의 시점에서 쓸 수 있을 만한 예민한 신경과 감각이 있었다. 지금도 그 정도의 감각이 남아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여성의 존재에 대해 늘 공부하고 탐구한다. 나는 여성들의 심리, 여성들이 처한 조건, 여성들의 사고방식을 탐구해 왔다. 나는 평생 그렇게 탐구해왔고 여전히 탐구하고 있다.”

-그런 탐구의 원천은 어디에서 오는가? 책들? 작품들? 당신이 일상생활에서 마주치는 현실 속 여성들?

“그 무엇보다도 실제의 여성들이다. 예컨대 나의 어머니, 나의 아내, 나의 딸들에게 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 다른 여성들에게도 배웠다. 내가 살면서 만난 여성들에게도. 그리고 제인 오스틴이나 에밀리 브론테 같은 작가들의 작품 속에서 만난 여성 인물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다.”

-당신의 작품에는 인간의 욕망, 파토스, 감정이 비추는 희미한 섬광이 있다. 이 신자유주의 시대의 현실 정치에서 인간은 그런 정서가 없는 기계로 다뤄진다. 기계처럼 노동만 해야 하는 것이다. 당신은 인간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우리 시대의 인간 조건을 보면 우리 주위의 사람들은 그들이 일해야 하는 수준보다 더 열심히 일을 하는 것 같다.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보다 더 많은 돈을 벌려고, 그들이 딱히 원하지 않는 것을 사려고, 그들이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의 코를 납작하게 하려고 말이다. 나는 이 상황이 정말 착란적이고 불건강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사람들이 감정을 돌아볼 시간을 더 많이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의 감정은 억압되어 있다. 이 무자비한 경제 위주의 상황, 돈만 좇는 상황에서 말이다. 사람들의 감정이 좀 더 이완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어서 20세기에 일어난 가공할 만한 재앙들, 특히 전 세계에서 일어났던 반유대주의적 움직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반유대주의는 아주 오래된 괴물이다. 그것은 정신적 부조화의 형태이다. 일종의 광기다. 그런데 그것은 늘 유행을 잘 타서, 이제껏 여러 시대와 여러 국가에서 사람들에게 호소력이 있었고, 불행하게도 여전히 사람들을 이끈다.”

-혹시 활동가로서의 경력과 작가로서의 경력이 내적 갈등을 일으키지는 않는가? 당신의 소설이 전혀 정치적인 프로파간다가 아닌데도 혹시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볼 위험은 없는가?

“나는 작가로서의 일과 정치 활동가로서의 일 사이에 분명하게 선을 긋는다. 나는 책상에 펜이 두 자루 있다. 하나는 검정, 하나는 파랑이다. 하나로는 이야기를 쓰고 하나로는 정부에 갈 문서를 쓴다. 절대 두 가지를 섞어서 쓰지 않는다. 예컨대 ‘나의 미카엘’, ‘블랙박스’, ‘여자를 안다는 것’은 정치적 프로파간다가 절대 아니다. 내가 시민으로서 정치적 문제에 응답을 할 때 가지는 내적인 분노가 이야기의 동력이 될 때는 있지만, 소설과 논설은 분명히 다르다.”

아모스 오즈는 생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를 위해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수립을 지지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아모스 오즈는 생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를 위해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수립을 지지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오래된 미래를 향하여

-어떤 인터뷰에서 당신은 전쟁의 포화 속에서 살아남은 것이 유일하게 책이었기 때문에, 당신 역시 책이 되고 싶다고 한 적이 있었다. 책이 태블릿 PC와 스마트폰을 비롯한 뉴미디어와 경합을 벌이고 있는 이 정보화 시대에도, 당신은 여전히 책이 ‘생존할’ 것이라고 믿는가?

“책은 생존할 것이라고 믿는다. 지금 같은 인쇄된 제본 형태는 아닐지라도 말이다. 아마 사람들이 책을 읽는 방식은 변할 것이다. 책을 읽는 테크닉이 바뀔 것이다. 사람들은 아마도 종이가 아닌 스크린으로 책을 읽을 것이다. 허나 분명히 책은 어떻게든 살아남을 것이다. 그러리라고 본다.”

-도처에서 폭력과 전쟁이 그치지 않고 있다. 마지막으로 묻건대, 당신은 우리가 언젠가는 지상 위에서 이런 폭력과 전쟁을 종식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가.

“어느 정도 타협된 형태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 국가, 사회 갈등의 문제에 있어서. 나는 타협이라는 것을 매우 신뢰하는 사람이다. 이상주의자들은 대개 ‘타협’이라는 말을 부정적인 의미로 쓰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들은 타협이라는 것이 불안정하다고, 비겁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타협’이라는 말이 ‘삶’의 동의어라고 생각한다. 삶이 있고 생명이 있는 곳에는 어디나 타협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타협’이라는 말의 철학을 신뢰하는 사람이다.”

정리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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