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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감동적인 엔딩 스토리가 그립다

입력
2019.01.01 16:39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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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한 장면.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한 장면.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180억원을 기부한 황필상 박사가 자신의 시신을 기증하며 가는 길까지 기부의 참 의미를 되새기게 하고 있다. 연합뉴스
180억원을 기부한 황필상 박사가 자신의 시신을 기증하며 가는 길까지 기부의 참 의미를 되새기게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하반기부터 대한민국을 들썩이게 했던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기어이 1,000만 관객 돌파 초읽기에 들어갔다. 그간 영화에 대한 숱한 분석들이 나왔지만 고교시절부터 줄곧 퀸의 광팬임을 자처했던 터라 개인적 단상을 한 줄 더할까 한다.

퀸의 보컬리스트 프레디 머큐리의 사망소식을 신문 부고란에서 접한 것은 1991년 11월 하순 언론사 입사 시험을 불과 며칠 앞두고서였다. 그가 에이즈와 투병 중이라는 사실을 바로 하루 전 신문을 통해 접한 터라 충격은 더했다.

충격이 감동으로 바뀐 것은 죽음을 대하는 그들의 마음가짐 때문이었다. 프레디와 멤버들은 에이즈 발병 사실을 자신들을 비롯한 극소수만 공유한 채 외부에 철저히 함구했다. “에이즈 환자로 소비되고 싶지 않다”는 영화 대사처럼 그들은 살아있는 동안 최대한 많은 음악을 남기자며 곡 작업에 열중했다. 최후의 순간까지 피를 토하며 불렀던 노래는 프레디 사후 4년 뒤 ‘메이드 인 헤븐’이라는 타이틀로 발매돼 또 한번 팬들의 심금을 울렸다.

향수, 떼창, 세대공감 등 다양한 흥행 비결이 거론되지만 삶의 마지막을 어떻게 장식할 것인지 고민했던 퀸 멤버들의 숭고한 정신이 영화 속에 녹아있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영화를 보면서 ‘보헤미안 랩소디’에 빠져 열중했던 고교시절을 떠올렸고, 어린 마음에도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게 해준 한 은사에게로 이어졌다.

고교시절 교장이었던 그는 청렴한 삶으로 주변에서 적잖은 존경을 받고 있었다. 교장을 하면서도 8평짜리 단칸방에 사는 그에게 많은 제자들이 “왜 넓은 집에서 사시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내 이름이 김두평인데, 이름보다 4배나 큰 집에 살면 됐지 뭐가 대수냐”고 답했다고 한다.

그는 자주색 꽃동백을 특히나 좋아했다. 하루는 이유를 묻는 제자에게 “자주색 꽃동백은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간직한 채 꽃잎이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삶의 마지막을 깔끔하게 마무리하겠다는 그의 철학이 오롯이 녹아있는 일화였다.

그리고 자신의 철학을 실천으로 옮겼다. 정년을 얼마 앞두고 병색이 짙어지자 주변에서는 퇴직금 액수가 달라지니 학교를 그만두지 말고 어떻게든 버티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그는 “교단에 설 수도 없는 상황에서 정년에 집착할 순 없다”며 미련 없이 사직서를 던졌고, 얼마 후 세상을 떠났다. 눈앞의 이익에 집착하지 않고 자신의 천직인 교사의 길을 걸었던 숭고한 그의 정신은 프레디 머큐리와 결은 다르지만 인생의 마지막을 어떻게 장식할지를 고민하는 이른바 종활(終活)에 조금이나마 길을 제시할 수 있지 않을까.

이렇듯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는 잊고 있던 오래 전 추억의 서랍장에서 소중한 보물을 찾아낸 것 같아 개인적으로 더더욱 애착이 간다.

언론사 여러 업무 중 부고를 담당하는 데스크를 맡아 지난 한 해 다양한 인물들의 마지막을 지켜봤는데 이중 세밑에 세상을 떠난 황필상 박사의 사연도 많은 여운을 남긴다. 180억원을 사회에 기부했으나 140억원의 세금 폭탄을 맞았던 그였다. 세무당국과의 지루한 법정 다툼 끝에 겨우 승소했으나 이 과정에서 림프종 암을 얻었다. 선의를 탈세의혹으로 둔갑시킨 현실에 화도 치밀었겠지만, 그는 결코 기부를 후회한 적은 없었다고 한다. 시신을 자신의 모교인 아주대에 기증키로 한 사실은 사후 뒤늦게야 알려졌다. 기부를 위해 살다간 그의 진심이 오롯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신년 벽두에 굳이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은 우리 주변에서 깔끔하지 않은 마무리가 자주 눈에 띄어서다. 한때 정치권을 호령하던 인사들이 재등판해 쏟아내는 막말 퍼레이드는 도를 넘었다. 높은 지지를 받던 정치인들과 유명인들이 조신하지 못한 처신으로 나락으로 떨어지고, 사회적 합의를 무시하고 불복에 나서면서도 그게 마치 정의인 양 떠드는 모습도 볼썽사납다. 아름다운 삶의 마지막을 장식한 이들의 감동 스토리가 더욱 그리워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창만 지역사회부장 cm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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