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한국 영화계는 내우외환이었다. 100억원대 제작비를 들인 대작 영화 15편 중 손익분기점을 넘긴 영화는 고작 4편. 화려함에 비해 실속이 없었다는 게 ‘내우’다. 연말연초 분위기 반전을 노렸던 ‘마약왕’과 ‘스윙키즈’마저 부진의 늪에 빠졌다. ‘외환’ 또한 여전하다. 올 상반기 ‘캡틴 마블’과 ‘어벤져스: 엔드게임’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 등 마블 슈퍼히어로물들이 줄지어 대기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내우외환을 극복하기 위한 2019년 한국 영화계의 전략은 ‘물량 공세’보다는 ‘다양한 상차림’이다. 시대극, 액션, 드라마, 코미디, 공포 등 다양한 장르와 독창적인 이야기를 내세운 한국 영화들이 관객을 만날 채비를 하고 있다. 봉준호 감독의 충무로 복귀부터 최민식 송강호의 연기 열전까지 눈길 끄는 관전포인트가 많다.
시대극은 여전히 강세다. 일제강점기 조선어학회 사건을 모티브로 창작된 ‘말모이’를 필두로, 일제에 맞서 승리한 봉오동전투를 다룬 ‘전투’, 한국전쟁 당시 학도병들의 장사상륙작전을 그린 ‘장사리 9.15’, 1970년대 정치공작을 주도한 중앙정보부 부장들의 행적을 추적한 ‘남산의 부장들’ 등 근현대사를 재조명한 영화가 잇달아 나온다.
조선 세종 시대를 다룬 영화도 두 편이나 된다. 허진호 감독과 최민식 한석규가 의기투합한 ‘천문’은 세종과 장영실의 이야기를 다루고, ‘사도’ 각본을 쓴 조철현 감독이 연출하고 송강호 박해일이 주연한 ‘나랏말싸미’는 세종의 한글 창제기를 스크린에 옮긴다. 최민식은 장영실 역, 송강호는 세종 역으로 배역은 서로 다르지만, 두 배우가 같은 시대를 다룬 영화에 나온다는 사실만으로도 흥미를 끈다.
액션물도 소재가 다양해졌다. 주먹이나 칼을 휘두르는 게 액션의 전부가 아니다. 100억원대 블록버스터 ‘엑시트’는 유독가스 유출로 인한 재난 상황을 다룬다. ‘뺑반’은 스피드광 사업가를 쫓는 뺑소니 전담반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타짜’ 시리즈의 명성을 잇는 ‘타짜3: 원 와이드 잭’과 ‘신의 한 수’의 스핀오프 ‘귀수’, OCN 드라마 ‘나쁜 녀석들’의 스핀오프 ‘나쁜 녀석들: 더 무비’ 등 검증 받은 범죄액션 시리즈 영화도 여러 편 출격한다.
한국에선 비주류로 여겨지는 공포 스릴러의 재도전도 눈에 띈다. ‘검은 사제들’로 한국형 오컬트 장르를 개척한 장재현 감독이 차기작 ‘사바하’에서 신흥 종교 집단과 관련한 초현실적인 사건을 담고, 하정우와 김남길이 출연하는 ‘클로젯’은 딸의 실종 이후 벌어진 미스터리한 사건을 그린 공포 영화다. 제작비 70억원을 들여 565만 흥행을 거둔 ‘청년경찰’의 김주환 감독도 오컬트 영화 ‘사자’로 돌아온다.
‘스물’ 이병헌 감독의 신작 ‘극한직업’과 차승원의 ‘힘을 내요 미스터 리’는 유쾌한 코미디로 웃음을 책임지고, 설경구와 전도연이 재회한 ‘생일’, 정우성 김향기가 주연한 ‘증인’은 묵직한 드라마의 힘을 보여주는데 도전한다. 애니메이션 영화 ‘언더독’과 ‘안녕 티라노: 영원히, 함께’ ‘태양의 공주’도 놓쳐서는 안 될 기대작으로 꼽힌다. 라미란 이성경의 코믹수사극 ‘걸캅스’와 박신혜 전종서가 뭉친 ‘콜’은 충무로에 귀한 여성 영화라 더 반갑다.
올해 최고 기대작은 단연코 ‘기생충’이 꼽힌다. 넷플릭스 영화 ‘옥자’ 이후 2년 만에 충무로로 돌아온 봉준호 감독의 신작이다. 백수 가족과 기업가 가족이 얽히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통해 부조리한 현대 사회를 보여준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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