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에 화폐가치 급락
빵 한 덩어리 가격 세 배로 올라
“지방 홀대” 반정부 시위로 번져
‘제2 아랍의 봄’ 가능성도 제기
8년 전 ‘아랍의 봄’이 북아프리카와 중동을 휩쓸 때도 흔들리지 않았던 나라 수단의 30년 절대권력이 2019년 새해 벽두부터 위기를 맞고 있다. 빵값 급등에 항의해 열리기 시작한 집회가 3주째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6일(현지시간)에도 수도 하르툼 곳곳에 수 만명 시위대가 모여 오마르 알바시르 대통령의 관저까지 행진하다 경찰과 충돌했다. 남부 와드마다니와 북부 앗바라 등지에서도 시위가 열렸다.
바시르 정권을 흔든 집회가 촉발된 계기는 빵값이었다. 지난달 19일 빵 한 덩어리 값이 1수단파운드(약 22원)에서 3수단파운드(약 66원)로 3배나 오르자, 만성적인 식량ㆍ연료 부족에 시달리던 앗바라 지역 주민들이 참지 못하고 들고일어났다. 본래 수단에서는 주민 생존에 필수품인 곡물과 연료에 보조금을 지급해 왔으나, 지난해 말부터 국제통화기금(IMF) 제안에 따라 서민 계층에 대한 보조금 폐지를 추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외환위기로 인해 수단 파운드화 가치가 폭락하고 물가가 급등하면서 빵과 연료의 가격이 예상보다 훨씬 크게 치솟았다.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서 주민들에게 빵은 생명과도 같아, ‘빵의 민주주의’라고 불릴 정도로 서민들에게 빵을 공급하는 정책이 중요시돼 왔다. 미국 온라인매체 쿼츠에 따르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은 시리아ㆍ이집트ㆍ레바논의 민심 안정을 위해 당국이 직접 식료품 공급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북아프리카 사회주의 성향 정권들도 빵 보조금 정책을 이어 받았다. 빵 공급을 줄이거나 보조금을 축소하려는 시도는 강력한 저항에 직면했다.
이번 시위의 경우 바시르 정권의 노골적인 지역 차별이 문제를 더 키웠다는 지적도 있다. 바시르 정권은 인구가 많아 반발이 심할 것 같은 수도 하르툼은 제외하고 인구가 적은 지방부터 보조금을 삭감하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수도 하르툼이 아닌 북동쪽으로 300㎞ 떨어진 앗바라에서 첫 대규모 시위가 벌어진 것이다. 오래도록 중앙으로부터 외면받은 데다 긴축정책의 짐은 가장 많이 짊어지게 된 지방민들의 분노는 경제 문제뿐 아니라 정치 구조의 근본적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시위의 목적이 자연스레 30년 집권한 바시르 정권의 퇴출로 연결된 것이다.
바시르 정부는 당연히 반정부 구호를 용납하지 않고 있다. “집회에 불온분자가 섞였다”라며 강경 진압에 나섰다. 정부는 지금까지 시위대와 경찰의 충돌로 19명이 사망했다고 발표했지만, 시민단체 국제앰네스티는 37명이 사망했다고 집계했다. 부상자들도 머리나 가슴 등에 총상을 입었다는 의사 증언에 진상조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국내외의 비판 여론을 의식한 듯 바시르 대통령도 5일 보건장관을 교체하고 경제난 돌파구를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학교를 폐쇄하고 소셜미디어 접속을 막는 등 집회에 대해서는 강경 대응 태세를 유지했다.
일각에선 수단 사태가 8년 전 중동ㆍ북아프리카 독재 정권을 무너뜨리거나 내전으로 몰아 넣은 ‘아랍의 봄’의 제2파로 확산되는 게 아니냐는 전망도 있다. 수단 외에도 모로코ㆍ알제리ㆍ튀니지ㆍ레바논ㆍ요르단 등지에서 저임금과 고물가, 지나친 과세 등에 반발해 크고 작은 시위가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튀니지에서는 프랑스의 ‘노란 조끼’ 시위를 닮은 ‘붉은 조끼’ 시위가 발생하기도 했다. 비교적 부국이라 할 수 있는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아랍에미리트 등도 국제 유가 하락과 투자심리 감소로 인해 경제지표가 좋지 않다.
중동은 청년층이 많아 젊은 지역으로 불리지만, 그만큼 청년 실업률이 높아 잠재적 화약고가 되고 있다. 공식 지표에 따르면 청년 실업률은 중동에선 21%, 북아프리카에선 25%로 집계됐으며 이 가운데 모로코ㆍ알제리ㆍ튀니지는 30%를 상회한다. 중동 전문매체 미들이스트아이의 데이비드 허스트 편집장은 “8년 전 ‘아랍의 봄’이 폭발하던 상황과 같은데, 달라진 점은 집권세력이 훨씬 취약한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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