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운영위 출석해 “김태우 정보보고, 요건 부합 안 돼”
학자 출신답게 자료 활용… “위기 대응력 상당” 평가
2018년의 마지막 날인 31일 정치권의 이목은 국회에 등장한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에게 집중됐다. 청와대 특별감찰반원 민간사찰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국회 운영위에 첫 출석한 조 수석은 여야의 불꽃 공방에도 시종 침착함을 유지하며 각종 의혹에 단호한 답변을 내놨다. 조 수석의 첫 정치 데뷔전에 대해 기존 대중적 인지도를 넘어 상당한 위기 대응 능력을 보여주며 선방했다는 평가가 정치권의 중론이다.
조 수석은 이날 회의 시작 30분 전인 오전 9시 30분쯤 청와대 관계자들과 함께 국회 본청에 모습을 드러냈다. 청색 정장 차림의 조 수석은 담담한 표정이었고 옅은 미소도 보였다. 그는 본회의장 앞 로텐더홀에서 대기하고 있던 기자들 앞에서 이번 사태에 대해 “한마디로 ‘삼인성호(三人成虎)’다”라고 특유의 비유법을 동원한 일성을 남겼다. 삼인성호는 중국의 고서 ‘한비자’에 나오는 고사로 “세 사람이 입을 맞추면 없는 호랑이도 만들어낸다”는 뜻이다.
이날 오전 10시 운영위 전체회의가 시작되자 조 수석은 자유한국당 일부 의원들의 고성에 기다리는 여유를 보이면서도 4분가량의 모두 발언을 힘주어 읽어 내려갔다. 최근 공직기강 사태에 대해 “국민들께 송구한 마음”이라고 포괄적 사과를 하면서도 김태우 전 수사관의 폭로에 대해서는 “핵심은 김 수사관이 자신의 비위 행위를 숨기고자 희대의 농간을 부린 데 있다”고 일축했다. 조 수석은 ‘단언컨대’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문재인 정부는 블랙리스트를 만들지 않았다. 저희가 열 몇 명의 행정요원을 갖고 민간인 사찰을 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고 정말 제가 민간인 사찰을 했다면 즉시 저는 파면돼야 한다”고 배수진을 쳤다.
이날 회의장에는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함께 나왔지만 대부분의 질문은 조 수석을 향했다. 조 수석은 본격적인 질의 응답이 시작되자 한층 격앙된 모습으로 심경을 드러냈다. 앞서 자신의 페이스북에 ‘두들겨 맞겠지만 맞으며 가겠다’고 밝힌 대로 조 수석은 야당 의원들이 우윤근 러시아대사의 비위 의혹,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 등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질 때마다 단답형으로 강하게 부인했다. 야당 의원들의 고성이 이어질 때는 조 수석도 지지 않고 결기 어린 어조로 대응했다. 다만 야당의 질의에 지나치게 철벽 방어를 치면서 타협과 협상 대신에 교수 출신답게 원리ㆍ원칙만 강조하는 모습으로 비치기도 했다.
법률가답게 미리 준비한 자료를 적극 활용하는 모습도 엿보였다. 그는 민간인 사찰에 대해 설명하면서 다양한 색깔 표시와 필기 흔적이 보이는 두꺼운 노트를 참고해 “민간인 사찰은 판례에 따라 지시, 목적, 특정 대상, 인물을 목표로 이뤄져야 하지만 김 전 수사관의 정보보고는 이런 요건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조목조목 상세히 설명했다.
한편 이날 회의에서는 조 수석과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의 36년 만의 만남도 이목을 끌었다. 서울대 법대 82학번 동기인 두 사람은 회의에 앞서 옅은 미소 머금고 악수를 나눴지만 질의응답에서는 팽팽한 기싸움을 펼쳤다.
손효숙 기자 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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