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원이 예정된 경기 하남의 A유치원 학부모 도유진(35)씨는 새해에는 아이를 유치원 대신 어린이집에 보내기로 했다. 내년에 일곱 살이 되는 예비 초등학생이라 보육 중심인 어린이집보다는 교육에 방점을 찍는 유치원에 보내고 싶었지만 아이를 보낼 수 있는 유치원이 한 곳도 없었다. 도씨는 “행정력을 총 동원해 폐원을 막을 것을 기대하고 관할 교육지원청에 대책을 요구했더니 ‘어차피 폐원할 것 같으니 빨리 다른 유치원 대기자 명단에 올려놓으라’고 하더라”며 “자리가 아직 남아 있다고 소개해준 사립유치원들도 모두 교통이 안 좋거나 시설이 열악해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곳들뿐이었다”고 답답해 했다.
지난 한 해 정부와 사립유치원 단체, 정치권이 요란하게 맞붙었던 유치원 전쟁이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한 채 일단락되면서 현장의 혼란은 오롯이 학부모의 몫이 됐다. 31일로 유치원입학관리시스템인 ‘처음학교로’의 대기자 등록까지 마감돼, 유치원 새 학기를 목전에 둔 학부모들의 고민은 더 깊어지고 있다.
처음학교로를 이용하는 학부모는 희망 유치원을 3순위까지 지원할 수 있는데, 지난 4일 결과 발표 당시 모든 유치원에서 떨어진 경우에는 대기자로 전환돼 12월말까지 결원 발생시 등록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만약 이날까지 연락이 없다면 사실상 학부모가 알아서 아이를 맡길 곳을 찾아야 한다. 유치원 학부모∙교사 모임인 ‘유치원 무단폐원 119법률지원단’에서 활동하고 있는 손익찬 변호사는 “모두 떨어지면 결국 어린이집이나 처음학교로에 참여하지 않은 사립유치원을 알아봐야 한다”며 “정부가 책임지고 전원 대책을 마련해 주길 기대했지만, 피해자인 학부모가 모든 책임을 지고 각자 유치원을 알아봐야 하는 상황이 돼버렸다”고 말했다.
특히 폐원 유치원 학부모들은 옮길 유치원을 알아보는 과정에서 일선 교육청과 교육지원청의 무책임한 대응에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폐원이 예정된 서울의 B유치원에 6세 아이를 맡겼던 이주영(40)씨는 같은 유치원 학부모들과 함께 ‘부모협동형 유치원’을 세우려고 추진하다 구청으로부터 ‘우리는 부지를 물색해주는 곳이 아니다’라는 식의 비협조적인 태도에 계획을 접었다. 부모협동형 유치원은 교육부가 매입형, 공영형과 함께 공공성 강화 방안으로 제시한 유치원 모델 중 하나지만 현실에서는 ‘그림의 떡‘에 불과했다.
정부가 국공립 유치원만 증설하면 유치원 문제가 모두 해결될 것처럼 여기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주영씨도 ‘일단’ 병설유치원에 등록했지만 고민은 현재 진행형이다. 맞벌이 부부라 오후 1시 이후에 정규 수업이 끝나고 나면 아이를 맡길 곳이 없기 때문이다. 이전 사립유치원에서는 저녁 7시까지 아이를 봐줬다. 이씨는 “방과후 돌봄도 정원이 20명이라는데, 우리 애처럼 신규로 들어오는 애들은 신청 기회가 없다고 한다”며 “정원을 늘려달라고 요청했더니 교육지원청에서 12월 말까지 알려주겠다고 했으나 아직까지 답이 없다”고 말했다. 도유진씨도 “5분 거리 국공립에 자리가 있었지만 방학이 너무 길어 어린이집을 택했다”고 했다. 정부는 지난달 기존 500학급 신설 계획에 580학급을 추가해 내년까지 모두 1,080학급을 증설, 국공립 유치원 유아 정원을 2만여명 추가로 확보한다고 밝혔다. 시민단체 ‘정치하는 엄마들’의 장하나 대표는 “정부의 국공립 유치원 증설도 새로운 게 아니라 원래 하려던 것에 속도를 붙이는 것에 불과할 뿐”이라며 “사립유치원 폐원에 대한 실질적인 대안이 없다 보니 한국유치원총연합회도 이렇게 막무가내로 나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송옥진 기자 cli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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