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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마케터의 절규... “나는 오늘도 눈물 밴 수화기를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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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마케터의 절규... “나는 오늘도 눈물 밴 수화기를 듭니다”

입력
2019.01.12 09:00
수정
2019.01.12 11:14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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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계 위해 하루 300통 이상 전화

고객 막말 쏟아져도 견딜 수밖에

‘스팸 노동자’로 비하하는 말까지

스팸 전화를 건다. 그래서 미안한 마음에 고객의 욕설과 무시를 참아 넘기고 속으로만 울어야 한다. 상품 영업을 위해 매일 300통 이상 전화를 걸어야 하는 아웃바운더 텔레마케터의 삶은 스산하기 짝이 없다. 류효진 기자
스팸 전화를 건다. 그래서 미안한 마음에 고객의 욕설과 무시를 참아 넘기고 속으로만 울어야 한다. 상품 영업을 위해 매일 300통 이상 전화를 걸어야 하는 아웃바운더 텔레마케터의 삶은 스산하기 짝이 없다. 류효진 기자

“미친○아. 네 어미한테나 사라고 해!”

인천의 한 텔레마케팅 업체에서 전화를 걸어 휴대폰을 판매하는 이선교(48ㆍ가명)씨. 지난달 27일 오전 출근 후 회사 데이터베이스에서 추출된 전화번호로 연결한 첫 통화는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쏟아냈다. 누군가의 휴대폰 화면에 ‘스팸 전화(광고 전화를 의미하는 속어)’라는 슬픈 이름으로 명명되는 아웃바운더 텔레마케터(Outbounder Telemarketerㆍ익명의 고객에게 전화를 걸어 영업하는 직종)의 일상이기에. 이씨는 그저 입술만 깨물 뿐이다. 하루가 빨리 끝나기를. 속으로 수십 번 되뇌고, 억지 웃음도 지어본다. 내 이름은 스팸 노동자이니까.

“이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고객들의 욕설에 상처받아 울기도 많이 울었어요. 아침부터 심한 욕을 들으면 하루 종일 일을 못한 채 멍하니 있을 때도 있었죠.” 상대방을 고려하지 않은 무작정 통화시도. 이 무례함의 미안함 뒤에 통화 속 욕설의 아픔을 가려보려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는 않단다. 생계를 위해 하루 300통 이상의 ‘욕설’ 혹은 ‘무시’가 예상되는 전화를 걸어 물건 판매 때론 금융 상품 가입 권유를 해내야 하는 아웃바운더 텔레마케터의 스산한 삶이다.

욕설을 쏟아내는 상대방의 통화를 이들 텔레마케터는 그냥 끊어버릴 수도 없다고 한다. 업체에 따라 오토콜(Auto callㆍ자동으로 고객에게 전화를 거는 시스템)을 이용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시스템에서는 텔레마케터가 상대에 앞서 통화 단절을 하는 게 불가능하다. 상대가 욕을 마치고 스스로 통화 종료버튼을 누를 때까지 텔레마케터는 하염없이 듣고 있을 수밖에 없다. “그나마 지금 일하는 곳은 수동콜이라 상대방이 욕하는 순간 바로 전화를 끊을 수 있어 환경이 많이 개선된 셈이죠. 이제는 (막말하는 고객도) 이골이 나서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겨버리려 애를 써요.”

◇업체 스스로 만든 ‘스팸 전화’ 이미지에 상처

텔레마케터들이 업무 중 가장 힘들다고 호소하는 부분은 수화기 너머로부터 들려오는 욕설과 폭언, 성희롱성 발언들이다. 실제로 한국고용정보원이 2015년 730개 직업 종사자 2만5,550명의 감정노동 강도(15점 만점)를 비교ㆍ분석한 결과 텔레마케터가 12.51점으로 가장 높게 나타나기도 했다. 또 같은 조사에서 ‘불쾌하거나 화난 사람에 대응해야 하는 빈도’가 가장 높게 나타난 직업도 텔레마케터였다. 감정노동에 가장 자주, 그리고 가장 심하게 노출돼 있는 셈이다.

스스로 정보를 원하거나 상품구매를 위해 전화를 거는 고객과 통화하는 인바운더(Inbounder) 텔레마케터이든, 아웃바운더 텔레마케터이든 간에 그나마 단순 욕설에 그치면 다행이라고 입을 모은다. 직업을 비하하고, 가족까지 욕하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더욱 심한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 또 다른 텔레마케터 양경숙(56ㆍ가명)씨는 “‘네 직업을 대대손손 물려줘라’, ‘너는 할 일이 그렇게 없으면 발 닦고 잠이나 자라’ 등의 말을 종종 듣는다”라며 “일을 시작한 지 10년이 훌쩍 지났지만, 인격적으로 무시를 당할 때면 여전히 손이 벌벌 떨린다”고 말했다.

이들에게 욕설과 무시가 쏟아지는 이유는 스스로 잘 알고 있다. 갑작스러운 마케팅 전화를 원하지 않는 일반인들에게 이들은 그저 귀찮은 스팸 전화를 거는 사람들이다. 강원도에서 카드대출 영업을 하는 텔레마케터 김정유(45ㆍ가명)씨는 “고객들은 한창 바쁜 일과시간에 뜬금없이 여러 통의 텔레마케팅 전화를 받는 입장이라 좋은 말이 나오지 않는 점을 이해한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매번 막말을 견뎌야 하는 구조가 편치는 않다.

“우리 센터의 경우 40명으로 구성된 한 팀이 약 8,000여명의 잠재고객 명단이 담긴 데이터베이스(DB)를 받으면, 1차로 전화를 돌린 후에 다른 텔레마케터가 다시 그 DB에 나온 번호로 전화를 걸고 있어요. 전화를 받는 사람 입장에선 2, 3일 사이 같은 전화를 여러 차례 받는 셈이니 기분이 좋겠습니까.” 스팸 전화라는 인식은 업체 스스로 만들어간다는 얘기이다.

이들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 너무나 부정적인 탓에 자신의 직업을 가족에게까지 숨기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한다. 이씨는 “주변에서 ’폰팔이’, ‘스팸 전화’ 등으로 낮춰 부르는 게 신경 쓰여 아이들에게 내 직업을 말하지 못했다”라며 “애들은 아직도 엄마가 그냥 통신사에 다니고 있는 정도로만 안다”고 말했다.

텔레마케터를 포함한 이른바 감정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지난해 10월 감정노동자법(산업안전보건법 제26조의2)이 신설, 시행에 들어갔지만 실제 현장에서 제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선 우려의 목소리가 더 높다. 이 법에 따르면 감정노동자가 고객으로부터 폭언 등을 들어 건강상 문제가 생겼다면, 사업주는 (예방)조치할 의무가 있다. 이를 제대로 시행하지 않는 업주에는 최대 1,0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다. 그러나 욕설을 들은 텔레마케터가 조치를 원한다면 일일이 상사에게 보고를 해야 하는 절차가 필요해 현실적으로 실효를 거두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 “욕먹어 떠나고 싶어도 기술 없어 잔류”

이들 아웃바운더 텔레마케터는 스스럼없이 자신을 ‘벼랑 끝 노동자’라 부르곤 한다. 당장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지만 별다른 기술이 없고, 새로운 진로를 모색하기엔 이미 늦은 나이라 텔레마케팅 업계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는 자조다.

이씨는 고등학교 졸업 후 8년여간 어머니 병간호를 하다 20대 후반 결혼했다. 사회생활을 해본 경험이 없기에 특별한 기술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는 2002년 결혼 4년만에 남편과 사별한 뒤 생업전선에 갑자기 뛰어들어야 했다. 3세와 갓 돌을 지난 두 자녀의 생계는 오롯이 이씨가 책임져야 했다.

그는 처음에는 자격증을 따 피부관리사, 보험설계사 등으로 가계를 꾸렸다. 하지만 일을 하다 보니 육아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피부관리, 보험판매 두 일 모두 오후 9시 넘어 퇴근하는 경우가 잦다 보니 아이들을 제대로 돌 볼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그때 텔레마케팅 일은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6시에 정시 퇴근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 일을 시작하게 됐어요. 여러 가지 불합리한 일을 많이 당하면서 다른 일을 찾아볼까 고민도 했지만, 당장 새로운 기술을 배우려 해도 생계 문제 때문에 일을 쉴 수 없었어요.” 이씨는 도리 없이 계속 이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는 “막내가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까지는 별수 없이 텔레마케터로 일하기로 했다”고 말하며 한숨을 깊이 내쉬었다.

양씨 또한 비슷한 상황 탓에 텔레마케터 업계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곧바로 결혼해 살아온 평범한 주부였다. 그러다 남편의 예견치 못한 사업 부도 후 텔레마케터 일을 시작했다. “당시 막내가 6살이었는데, 저녁에 아이를 돌보면서 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텔레마케터라는 직업을 알게 됐어요. 막상 이 바닥에 들어가 일을 겪어보니 불합리한 경우가 많아 그만두고 여의도 모 리서치회사에 들어가 1년 4개월간 근무한 적도 있는데, 그 일은 일감이 없으면 2개월 정도를 그냥 쉬어야 했어요. 그나마 안정적인 수입이 필요해 결국 다시 텔레마케팅 업계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어요.”

대부분의 텔레마케팅 사업장은 이와 비슷한 사연을 지닌 사람들이 가득하다. 카드론 영업을 하는 김씨는 “현재 근무하고 있는 센터에 50여명의 동료들이 있는데, 대부분이 50, 60대의 중장년층 여성”이라며 “장년층에 가까워질수록 ‘여기 아니면 갈 데가 없다’는 푸념 섞인 말을 많이 한다”고 말했다.

◇“열심히 일해도 월 100만원 못 가져가기도“

생계를 위해 취업전선에 뛰어들었지만 그렇다고 이들의 처우가 크게 좋은 것도 아니다. 텔레마케터들은 원청업체로부터 받은 고객 데이터베이스(DB)를 토대로 통상 하루에 300~400통의 전화를 돌린다. 이들은 이렇게 한 달간을 일한 뒤 기본급과 인센티브를 지급받는데, 이를 다 합쳐도 월 200만원이 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강원 A업체에서 텔레마케터로 일하며 노동조합을 결성한 손영환(37)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콜센터지부 지회장은 “현재 근무 중인 업체는 기본급을 최저시급으로 계산해 월 174만5,150원으로 책정하고 여기에 구간별 인센티브를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이 업체의 카드론 인센티브 구성표를 보면 최소 취급금액 4억1,000만원을 달성하면 월 10만원의 인센티브를 준다. 이 구간을 넘어서면 ▦4억2,000만원 달성 시 11만1,000원 ▦4억3,000만원 달성 시 12만2,000원 ▦4억4,000만원 달성 시 13만3,000원 등 1,000만원 단위로 구간을 나눠 일정 금액의 인센티브가 추가된다. 취급금액 최고구간인 8억원 대출을 달성하면 월 170만9,000원의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인센티브 제도는 사실상 허울뿐이라는 게 텔레마케터들의 입장이다. 손 지회장은 “최소취급 구간(SPD) 자체가 높게 설정돼 있어 이를 달성하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SPD를 달성해도 인센티브의 절대액이 소액”이라고 말했다.

다른 업체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휴대폰 판매를 하는 이씨는 “업계 1, 2위를 다투는 업체임에도 팀장급은 월 170~180만원, 일반 상담원은 월 140만원의 기본급을 가져가는 게 고작”이라며 “인센티브 역시 팀장의 경우 팀당 월 90개 이상을 판매하면 10개 추가당 10만원, 팀원의 경우 30개를 넘으면 개당 2만원을 지급한다”고 설명했다.

텔레마케터들은 이 인센티브마저도 이런저런 이유로 삭감되기 일쑤라고 입을 모았다. 손 지회장은 “우리 회사의 경우 지각이나 결근을 한 번이라도 하면 해당 월의 인센티브가 얼마이든 모두 삭감한다”라며 “일을 안 한 시간만큼 기본급을 차감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그간 쌓아둔 인센티브를 아예 없애버리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양씨가 다니는 회사 역시 업무 일자에 비례해 돈을 받지 못하는 사정이다. 그는 “팀장급의 경우 한 달 기본급으로 180만원을 받는데, 기본 판매 개수를 채우지 못하면 기본급에서 30만원을 삭감한다”라며 “일반 상담원의 경우 열심히 일해도 한 달에 100만원을 못 가져가는 경우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보수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다 보니 생계에 허덕이는 이들은 퇴근 후에 또 다른 일을 하기도 한다. 텔레마케터 B씨는 “1년간 퇴근 후 근처에 있는 GS홈쇼핑에서 오후 7시~12시 30분 상담원 업무를 했다”라며 “하루에 4시간도 못 자다 보니 몸이 많이 상했다”고 하소연했다.

◇”휴대폰 걷어가고, 막말 일삼아”

텔레마케터들은 고객의 막말과 열악한 처우 못지않게 사측의 하대가 업무 동력을 잃게 만든다고 입을 모았다. 욕설과 막말은 전화기뿐 아니라 업무 현장에서도 수시로 들려온다. 강원 A업체는 일과 중 근무자들의 휴대폰을 모두 수거하기도 한다. 이 업체에 근무하는 C씨는 “팀장 자리 옆에 걸려있는 휴대폰 수거 가방에 각자의 휴대폰을 꽂아두고 일과 시간에는 이를 보지 못한다”라며 “사측은 보안, 업무효율성 등의 이유를 대지만, 결국 이 같은 규칙 밑바닥에는 텔레마케터를 관리대상으로만 바라보는 인식이 깔려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상사의 막말도 심심찮게 나온다. 김씨는 “한 남성 팀장이 공개석상에서 ‘여기 있는 아줌마들 일 그만두면 다들 식당에 가서 일할 사람들’이라고 두 차례나 말했다”라며 “이 발언 내용은 식당 종사자들을, 억양과 태도는 텔레마케터들을 비하하고 있다고 느껴 동료들이 심하게 반발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는 회사의 이익을 창출하기 위해 하루 종일 한 자리에 앉아 전화를 돌리는 노동자인데, 직원으로 대우해주기보다 ‘아래 것’으로 무시하는 처사에 상처를 받는다”고 호소했다.

박주희 기자 jxp93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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