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낙 물량이 많다. 송파뿐 아니라 강남권 전체 전세 시장이 한 동안 혹한기를 겪을 수 밖에 없다.”
최저 영하 11도의 강추위가 몰아 친 31일 오전 서울 송파구 헬리오시티 단지 4번 출구 인근 부동산중개사무소의 A대표는 연신 걸려오는 상담 전화를 받으면서도 표정이 썩 밝지 못했다. 20여분 동안 걸려오는 전화는 하나 같이 전셋값 하락이 어느 정도이고 얼마나 더 떨어질지 묻는 ‘간보기’가 대부분이었다. 실제 거래로 연결되는 문의는 한 건도 없었다. A대표는 “전용면적 59㎡의 경우 매매 호가는 15억원인데 전셋값은 4억8,500만원에 불과하다“며 “입주가 시작되면 분위기가 좀 나아질 것으로 기대했는데 신학기가 가까워질 때까진 이런 약세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씁쓸히 말했다.
실제로 이날부터 입주가 시작된 헬리오시티 단지엔 이사 차량마저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 가락시영아파트를 재건축해 지은 국내 단일 최대 아파트 단지(9,510가구)이자 대형 건설사가 공동 시공한 프리미엄 단지에도 불구하고 입주 첫날 분위기는 조용하다 못해 썰렁한 쪽에 가까웠다. 이날 인터넷과 전화 접수를 통해 이사를 신청한 가구는 70여 가구였지만 점심 시간까지 실제로 이삿짐을 옮기는 장면은 볼 수 없었다. 조합 관계자는 “추운 날씨에다 입주 시까지 현재 전세로 살고 있는 집과의 계약 관계 정산 등에 시간이 걸려 이사는 1월 중순 이후에나 본격화할 것”이라며 “현재 4,000여 가구 정도가 이사를 신청했고 입주 기간이 4월1일까지임을 감안하면 3월은 돼야 입주나 전세 시장 등이 활기를 보일 것”이라고 밝혔다.
그나마 단지에 사람들이 모인 곳은 입주자 지원센터가 유일했다. 입주 관련 서류를 제출하는 조합원과 이들을 상대로 인터넷 개설과 인테리어 제품 등을 팔려는 상인들이 붐볐다. 주변에는 조합이 고용한 100여명의 미화원과 50여명의 경비인력들이 추위에 몸을 녹이는 모습도 보였다. 연차 휴가를 내고 지원센터를 찾은 조합원 석모(53)씨는 “단지 규모는 크지만 정부가 9ㆍ13 부동산 대책 등으로 강남4구 시장 자체를 확 죽였는데 이겨 낼 재주가 있겠냐”며 “당초 전세를 놓으려 했지만 전셋값이 너무 낮아 현재 살고 있는 금천구의 전셋집(보증금 6억원)을 빼 일단 입주부터 하기로 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실제로 1가구1주택 양도세 비과세 조건에 실거주 2년(조정대상지역)이 추가된데다가 전셋값도 떨어지며 석씨처럼 직접 입주하는 집주인도 적잖다.
한국감정원의 12월 4주(24일 기준) 전국주택가격동향조사에 따르면 서울 전세가격은 전주 대비 -0.11% 떨어졌다. 특히 송파구는 -0.29%나 떨어지며 하락장을 주도했다. 헬리오시티발 전세가격 하락은 강남4구 전체 전셋값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강동구 -0.33%, 서초구 -0.25%, 강남구 -0.16% 등 강남4구가 평균 -0.29%나 떨어졌다.
헬리오시티 물량은 집값에도 변수가 되고 있다.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이 같은 기간 0.08% 떨어진 데 비해 송파구는 0.15%, 강남4구는 0.14%나 하락했다.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선수기자촌 아파트 단지는 4분기 매매거래가 단 4건(12월30일 기준)에 그쳤다. 한국감정원 관계자는 “헬리오시티 등 신규 대단지 입주가 시작되면서 노후단지에 대한 수요도 자연히 줄었다”며 “계절적 비수기 요인까지 겹쳐 당분간 강남권 전세 및 매매 시장 전반의 약세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정재호 기자 next8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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