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남철수’ 당시 미 10군단 사령관에게 피란민 수송을 간청해 근 10만명의 목숨을 구한 이로 알몬드 10군단사령관의 통역가 겸 민사고문 ‘현봉학(1922~2007)’을 소개한 적이 있지만, 그의 형제 모두의 사연이 사실 예사롭지 않다. 그는 함경남도 함흥에서 활동한 목사 현원국과 독립운동가 겸 교육자 신애균의 6남매 중 둘째였다. 현봉학은 2014년 12월 국가보훈처의 ‘이달의 6ㆍ25 전쟁영웅’으로 선정됐다.
국가보훈처가 지난해 3월 ‘이달의 6ㆍ25전쟁 영웅’으로 선정한 현시학(1924.1.3~1989.7.18) 전 해군사관학교장은 현봉학의 두 살 아래 동생이다. 보훈처에 따르면 현시학은 전시 초계함 PC-703(삼각산)함 부장으로 50년 7월 남하하는 북한 수송선단을 격퇴하고, 8월 한국군 해병대의 경남 통영 상륙작전에 기여했으며, 51년 1월에는 PC-704(지리산)함 함장으로 황해도 월사리의 피란민 5,000여명을 백령도로 구출하는 공을 세워 52년 을지무공훈장을 받았다. 전후 제1전단사령관과 함대사령관, 해사교장을 역임하고 66년 소장으로 예편, 모로코와 이란, 멕시코 대사를 지냈다.
두 형제와 함께 꼭 기억해야 할 이는 형제의 장남 현영학(1921~2004)이다. 신학을 전공한 신학자인 그는 이화여대 교수로 재직하던 60~70년대 박정희의 정권 연장 및 유신 반대에 앞장선 반정부 인사였다. 안병무 서남동 등과 교유한 해방신학자로, 70~80년대 민중문화시대를 풍미한 전통 탈춤을 연구 보급한 주역이기도 했다.
현봉학이 전쟁 이후 아예 미국으로 건너가 펜실베이니아 의대와 컬럼비아대, 버지니아대 등의 의대 교수로 비교적 안정적인 삶을 살던 것과 달리, 현시학이 박정희 정권에서 장성으로 승진하고 예편 후 여러 나라의 외교관으로 살던 것과 달리, 현영학은 도시 빈민들을 찾아다니며 민중신학을 전파했고, 이런저런 시국선언에 참가해 고초를 치렀고, 강원룡 김수환 등과 박정희 퇴진 운동에도 앞장섰으며, 80년 신군부에 의해 강제해직을 당하기도 했다. ‘전쟁 영웅’인 두 동생은 거의 나란히 소개되곤 하지만, 더 아래 동생인 재미 언론인 겸 작가 피터 현(한국명 현웅)까지 그 명단에 포함되는 경우도 있지만, 현영학을 그들의 형제로 소개한 자료는 드물다. 그는 민주화의 거인 중 한 명이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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