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쿡방(출연자가 직접 요리하는 방송 프로그램)’ 전성시대다. TV 예능 프로그램뿐이랴. TV 밖 유튜브,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도 ‘요리하고, 찍고, 먹어라’의 3박자 일상이 이어진다. 요리는 단순히 배를 불리기 위함이 아니라 음식을 창조하고, 상대와 소통케 하는 문화적 행위로 간주된다.
요리의 사회적 지위가 달라졌듯 요리를 가르치는 곳도 달라졌다. 과거 요리 명장의 도제식 기술 전수가 주를 이뤘던 전통 요리 학원 대신 요리와 관련한 다양한 경력의 소유자가 요리를 매개로 식문화를 전파하는 쿠킹 클래스가 성행하고 있다. 과거 수백 만원씩 내고 6개월~2년 코스로 요리 학원에 등록했다면, 쿠킹 클래스는 회당 1만~20만원으로 목적에 따라 비용과 코스가 세분화돼 있다.
◇레스토랑 대신 쿠킹 클래스
워킹맘 정유리(35)씨는 매주 주말 서울 잠실 ABC쿠킹스튜디오에서 친구들과 쿠킹 클래스를 듣는다. 정씨는 “요리도 배우지만 평소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과 레스토랑에 가는 대신 클래스에서 함께 요리하고, 식사하고, 수다도 떤다”며 “추억도 쌓고 다른 사람들과 음식 이야기 하는 것도 재미있다”고 했다. 수업은 정씨 일행을 비롯해 20여명이 함께 듣는다. 학생, 직장인, 퇴직자 등 세대와 성별, 직업이 다양하다. 정씨가 듣는 ‘일본 요리 코스’에서는 지라시 스시(다양한 재료를 흩뿌리듯 올린 초밥), 가라아게(튀김 요리), 낫토(일본 전통 발효식품) 등 간편한 일식 메뉴를 선보인다. 전문 셰프의 시연을 따라 만들고, 완성된 요리는 별도의 공간에서 편안하게 먹을 수 있다. 스튜디오 측은 “주부나 학생보다 20~30대 고소득 직장 여성들이 많다”며 “전문적인 요리보다 쉽게 따라 할 수 있으면서 잘 차려진 듯한 요리를 선호한다”고 했다. 6회 기준 35만원(요리 코스)이지만 매달 1,500여명이 수업을 듣는다.
사적 모임을 위한 쿠킹 클래스도 열린다. 레스토랑에서 정해진 메뉴를 먹고, 다른 이들과 부대끼는 것보다 지인들끼리, 새로운 메뉴를 먹기 위함이다. 영국에서 요리를 공부한 김서영 셰프가 운영하는 서울 한남동의 킴스쿠킹은 예약을 통한 소규모 쿠킹 클래스를 운영한다. 10명 이내로 단체 예약을 하면 김 셰프가 그들만을 위한 메뉴를 정하고, 요리를 선보인다. 가정집처럼 안락하게 꾸며진 공간에서 지인들과 함께 셰프의 요리 시연을 보고, 완성된 음식을 함께 먹고 얘기한다. 김 셰프는 “어떻게 요리하는지 보여주고 설명하지만 참석자들이 직접 요리하진 않는다”며 “시연을 보고 메모하고, 질문하고, 토론하는 식으로 진행한다”고 했다. 단호박 퓨레 떡갈비, 성게알 콜드 파스타, 토마토 솥밥 등 한식 퓨전을 선보인다. 김 셰프는 “연예인 등 프리랜서 전문직들이 수업을 많이 듣고, 요리를 배우는 목적이라기 보다 관련 요리 문화를 토론하고, 새로운 음식을 맛보기 위한 목적이 크다”고 말했다.
◇건강하고 우아한 ‘집밥’ 열풍
대표 요리보다 건강한 한 끼를 만드는 데 집중하는 쿠킹 클래스들도 인기다. 여성 경제활동과 1인 가구 증가로 외식 시장 규모가 연간 100조원(2015년 농림축산식품부 통계치)을 넘었지만, 반대로 건강한 집밥에 대한 욕구도 커졌다. 휘황찬란한 요리를 만들진 못해도 한 끼라도 건강하고 우아하게 먹으려는 이들이 쿠킹 클래스를 찾는다. 채식 요리를 주로 선보이는 서울 연남동의 푸드란스튜디오는 일상 생활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채소를 다양한 방법으로 활용할 수 있는 요리법을 알려준다. 유기농 재료를 사용하는 키즈 클래스도 운영한다. 예비 신부, 신혼 부부, 임산부, 워킹맘 등이 주 고객이다. 이곳을 운영하는 홍성란 요리 연구가는 “가족끼리 화목하게 둘러앉아 먹는 건강하고 소박한 집밥을 그리워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추세”라며 “바쁜 현대인들이 한끼를 먹더라도 건강하고 맛있게 먹고자 하면서 쉽고 간편하게 먹는 채식 주스나 샐러드 요리법에 대한 수요가 커졌다”고 말했다.
특히 집에서도 고급 디저트를 즐기는 ‘홈 디저트’ 시장이 커졌다. 홈파티 등 집에서 모임을 하기도 하고, 집에서도 우아하게 디저트를 즐기려는 이들이 증가하면서 홈 디저트가 중요해졌다. 다양한 디저트를 만드는 베이킹 클래스도 인기 만점이다. 베이킹 클래스를 운영하는 아틀리에낭만앵 스튜디오는 마카롱, 마들렌, 타르트 등 디저트 종류에 따라 클래스가 구분된다. 한 클래스당 1~5명으로 1주일에 한 번씩, 한 달에 네 번 진행된다. 이곳을 운영하는 이유영 파티시에는 “일반 제빵 학원은 대량 생산 위주에 일반 재료를 사용해 기술을 전수한다”며 “여기서는 좋은 재료를 써서 빵 고유한 맛과 특징을 살릴 수 있고, 기호에 맞게 메뉴를 선택해 수업을 들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단순 기술뿐 아니라 디저트의 역사, 문화 수업도 하고, 서로 맛집도 소개해주는 ‘디저트 사랑방’에 가깝다. 이유영 파티시에는 “직접 만들어 먹으면 훨씬 맛있고, 신선하다”며 “집에서 신선하고 우아하게 디저트를 만들어 먹고자 하는 이들이나 주위에 선물하려고 배우는 이들도 많다”고 했다.
◇요리로 문화를 소통하는 공간
수업을 뛰어넘어 ‘문화 전도사’ 역할을 자처하는 쿠킹 클래스들도 등장했다. 서울 강남 신사동의 현대카드 쿠킹 라이브러리는 5층 건물 전체가 요리와 관련한 공간이다. 1~5층이 베이커리, 음식 자료실, 쿠킹 클래스, 레스토랑, 텃밭 등으로 운영된다. 쿠킹 클래스도 요리 기술 전수에 그치지 않고 음식 문화에 관한 것이다. 예를 들어 지난해 6월에는 ‘토종쌀의 재발견&쌀’을 주제로 김형래 셰프와 이근이 우보농장 대표가 참석해 토종쌀의 기원과 역사를 설명하고, 토종쌀 활용 요리를 선보였다. 12월에는 기순도 간장 명인을 초청해 간장의 역사와 함께 간장으로 만든 코스 요리 즐기는 법 등을 알려줬다. 현대카드 측은 “요리는 삶을 보다 의미 있게 만드는 창의적 활동”이라며 “전문가와 함께 요리 이상의 지식과 경험을 선사하는 공간”이라고 소개했다.
외국인에게 한식 문화를 소개하는 쿠킹 클래스도 있다. 서울 연남동의 아이러브한식에서는 한국을 찾는 외국인이 실용적인 한식 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 이민정 셰프가 불고기 잡채, 떡볶이, 파전, 비빔밥 등 실용적이고 외국에서도 해 먹을 수 있는 한식을 알려준다. 이 셰프는 “외국에서 한류 붐을 타고 한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며 “그런데 전통 한식을 하기에는 재료 구하기도 어렵고, 입맛에도 안 맞고, 먹는 방법도 모른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떡볶이 국물에 김밥을 찍어 먹는 이유, 뜨거운 돌솥비빔밥을 후후거리면서 먹는 법, 냉장고 파먹는 법 등 우리네 식습관도 함께 전수해준다. 동네 언니처럼 편안하고 쉽게 알려주는 그의 쿠킹 클래스를 듣는 외국인은 연간 400여명. 그는 “쿠킹 클래스는 음식으로 문화를 소통하는 공간이라고 생각한다”며 “일방적으로 한식을 소개하는 게 아니라 외국인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주고 얘기하면서 자연스럽게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게 된다”고 했다.
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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