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준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사장(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지난 한 해 사회ㆍ문화ㆍ예술계를 통 털어 가장 화제가 됐던 단어는 단연 영국 록그룹 ‘퀸(Queen)’이라는데 이의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발화점은 ‘보헤미안 랩소디’라는 영화다. 이 영화가 매스미디어 영역을 넘어 사회 신드롬으로 번진 이유는 영화적 요소보다는 음악적 요소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기 때문이다. 영화를 본다는 느낌보다 퀸의 음악에 푹 빠져 들었던 것이다. 실제 영화 평론가들의 평점은 6점대이지만 관객들은 9점대를 주었다는 것을 보더라도 짐작할 수 있다.
이 영화의 감동은 외모 콤플렉스, 이민자, 양성애자, 에이즈라는 단어로 점철된 천재 음악가 프레디 머큐리의 짧은 생에 대한 아쉬움도 한몫을 했다. 하지만 영화 내내 관객을 압도하며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 넣는 것은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실험적이고 자유분방한 독창적인 음악과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프레디 보컬의 마력이 만들어낸 음악 자체다.
그리고 관객몰이의 주인공들인 40, 50대들은 퀸 음악을 들으며 젊은 시절의 추억을 소환하기도 하고, 고단한 현실을 잠시 잊고 행복감에 빠져들었다. 자신의 트라우마나 고통이 치유되는 느낌을 받았다는 사람도 있다. ‘퀸 신드롬’의 본질은 음악을 통한 힐링이며, 이것이 처음으로 대중 매체를 통해 사회현상으로 표면화된 것이라 보는 게 맞다.
음악이 힐링이나 치료 행위로 사용된 것은 이미 오래된 일이다. 그리스 신화의 아폴로가 음악과 의학을 동시에 관장하는 신인 것만 보아도 음악과 의학은 아주 가까운 사이임을 알 수 있다. 의학의 아버지인 히포크라테스 시대에 이르러 음악을 정신질환 치료에 이용하기 시작하였다. 불안 우울증 치매 자폐증 통증 파킨슨병 조현병 등 실로 다양한 병 치료에 음악을 이용하고 있다.
2016년에 발표된 메타 연구에 의하면, 조현병 환자들이 기존 치료와 함께 음악 치료를 같이 받으면 치료 효과가 월등해진다고 한다. 다른 연구에 의하면, 우울증, 외상후스트레스장애 등의 환자에서도 음악 치료가 효과적이라는 게 증명되었다. 사춘기 아이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문제인 약물 사용, 자살 기도, 과격한 행동, 가족 문제 등에도 많은 효과를 발휘한다고 한다. 치매 환자에게도 음악을 들려주면 기억력과 집중력이 향상된다는 연구들도 있다.
뇌는 외부 자극에 의해 뇌세포 사이에 새로운 연결이 생겨나고, 새로운 길이 만들어 지고, 그 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뇌 연결망을 다시 쓰기도 한다. 이를 뇌 ‘가소성(plasticity)’이라고 한다. 외부 자극에 의해 뇌기능이 변한다는 것이다. 음악은 뇌를 변화시키는 아주 강력한 가소성을 가지고 있다.
‘누구든지 원한다면 자신의 뇌를 조각할 수 있다’는 말이 있듯이, 우리 뇌는 주위 환경이나 자극에 민감하게 변한다. 소위 ‘모차르트 효과’라고 하여 뇌 손상 환자들에게 모차르트 음악을 들려줌으로써 인지ㆍ운동기능 등이 좋아진다는 보고들도 있다. 특히 태교에 음악을 이용하는 것도 흔히 있는 일이다. 2018년 중국 남부 선전 지역의 3만5,000여명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 의하면, 출산 전에 임신부가 음악을 많이 들으면 출산 후 자녀의 자폐증적인 성향이 줄어든다고 한다. 음악을 듣는 시간과 자폐증적 성향 감소가 상관관계가 있다고 하니, 음악의 유용성은 임신 때부터 이미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기능자기공명영상(fMRI) 연구에 의하면, 음악은 뇌에서 집중력, 기억력, 청각능력과 관련된 부위를 활성화한다. 특히 뇌의 보상시스템의 하나인 중격핵(nucleus accumbens)을 활성화해 도파민과 세로토닌을 분비하여 즐거움, 기쁨과 보람을 느끼게 한다. 이렇듯 음악은 정신ㆍ신체적으로 긍정적인 효과가 많고, 상처받은 마음이 힐링이 되고, 질병도 치료하는 효과가 있다.
한 해를 시작하는 이 때에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새로운 해를 설계하고 긍정적인 감정을 간직한다면, 올해는 더 좋은 에너지로 활기차고 희망찬 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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