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딜락 CT6 터보는 국내 시장에서 ‘가성비 좋은’ 차량이라 평가 받는다.
그도 그럴 것이 국산 플래그십 세단보다 합리적인 가격 구성은 물론이고 캐딜락 고유의 당당한 존재감과 여느 플래그십 세단들 사이에서도 당당한 체격을 갖췄으며, 그에 걸맞은 여유로운 공간을 자랑한다. 게다가 캐딜락의 2.0L 트윈스크롤 터보 엔진을 탑재하며 준수한 주행 성능까지 겸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무대를 서킷으로 옮기면 어떨까?
가볍다고는 하지만 거대한 체격, 준수하지만 왠지 빈약하게 느껴질 파워트레인, 그리고 후륜구동 방식이지만 코너 공략이 어렵지는 않을까?’라는 온갖 생각이 머리 속을 가득 채운다. 이러한 불안감 속에서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캐딜락 CT6 터보와 함께 인제스피디움을 향했다.
캐딜락 CT6 터보, 인제스피디움에 서다
캐딜락 CT6 터보가 달려야 할 인제스피디움은 국내 서킷 중 가장 큰 고저 차를 보유하고 있는 서킷이며, 입체적인 레이아웃이 연이어 펼쳐지는 중형급 서킷이다. 테크니컬 서킷이면서도 차량의 기본기만 충분하면 곧바로 리드미컬한 드라이빙을 즐길 수 있는 장소기도 했다.
하지만 플래그십 세단에게는 반대로 제약이 될 수 있는 구조다. 휠 베이스가 길기 때문에 차량의 일체감이 떨어질 수 밖에 없고, 고저차에서는 다운사이징 터보 엔진의 빈약함이 드러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주행의 시작 전부터 여러 걱정을 안고, 헬멧을 썼다. 잠시 후 시동을 걸고 코스로 진입했다.
코스 진입 후 여유 있는 페이스로 전체 코스를 둘러보았다.
드라이빙 포지션을 최종적으로 확인하고 드라이빙 모드 또한 스포츠 모드로 바꿨다. 플래그십 세단, 대형 세단이라는 특성 때문에 스포츠 타입이 아닌 일반 타입의 플랫한 백시트 때문에 서킷 주행 시 운전자의 몸을 제대로 지지하지 못할 것 같았다.
재미있는 것은 리어 뷰 카메라 미러였다. 일반 도로에서도 이미 넉넉한 시야를 제공했던 이 기능은 서킷에서도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인제스피디움의 넓은 노면을 모두 비추며 CT6 터보의 후방 상황을 보다 빠르고 여유 있게 확인할 수 있었다.
인제스피디움의 고저차를 이겨내는 파워트레인
마지막 코너를 탈출하면서 엑셀러레이터 페달을 깊게 밟았다.
패들시프트를 따로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8단 변속기가 능숙하게 기어를 낮추며 출력을 한껏 끌어 올린다. 다운 시프트 시의 속도는 아주 빠른 편은 아니다. 조금 더 빠른 변속이었다면 부족함이 없겠지만 토크 컨버터의 구조는 물론이고 ‘CT6 터보’가 그렇게 성급한 변속을 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도 머리 속을 가득 채웠다.
CT6 터보를 위해 새롭게 조율된 269마력과 41.0kg.m의 토크는 CT6 터보를 인제스피디움의 긴 스트레이트로 몰아세운다. 강력한 가속력은 아니지만 가속력이 꾸준히 이어지기 때문에 충분한 속도를 낼 수 있었다. 출력도 출력이지만 차량의 무게가 상당히 가벼운 것도 큰 의미가 있다.
실제 캐딜락 CT6 터보는 1,735kg의 공차중량을 갖춰 비슷한 체급의 차량 대비 적게는 150kg, 많게는 300kg 정도 가량 가벼운 차량이다. 덕분에 다운사이징 터보 엔진이 내는 다소 제한적인 출력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속도를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한편 가속력이 상당히 부드럽게 전개되는데 이는 CT6 터보의 목적에 부합한 셋업이라 할 수 있다.
가속을 시작하며 느껴진 다운 시프트는 조금 느렸지만 스트레이트 구간을 지나며 진행되는 업 시프트는 무척이나 빠르고 기민했다. 개인적으로는 스티어링 휠 뒤쪽의 패들 시프트를 당길까 싶었지만 적당한 변속 타이밍, 그리고 서킷에서 조작하기엔 조금 작게 느껴지는 패들 시프트로 인해 변속기에게 의지하기로 했다.
사실 이후에도 특별히 패들을 조작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만큼 알아서 적절한 기어를 택하는 모습이었다.
길이가 느껴지는 CT6 터보, 그리고 그 길이를 줄이는 CT6 터보
인제스피디움의 고저차와 오메가 코너, 그리고 연속된 코너를 진입하고 탈출하는 과정에서 지금껏 서킷에서 탔던 차량 중에 ‘휠 베이스가 가장 긴 차량’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후륜이 제법 부드럽고 뉴트럴한 반응으로 흐르긴 하지만 ‘전륜의 진입 이후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에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순히 ‘길이가 길게 느껴지는 것’ 뿐이지 막상 주행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차량의 길이로 인해 부담이 된다’라는 느낌은 전혀 없었다. 실제 일반 도로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느꼈는데, 아무래도 굉장히 자연스럽게 흐르는 후륜의 특성 때문인 것 같았다.
코너를 탈출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흐르는 후륜은 이후의 주행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 되려 후륜구동의 움직임이 더욱 명확하게 느껴지는 편이라 드라이빙에 대한 이해도나, 더욱 섬세한 조작을 하게 되는 이유가 되었다.
참고로 앞서 말한 것처럼 CT6 터보의 크고 평평한 시트는 코너를 돌아 나갈 때 운전자의 몸을 제대로 지지하긴 어려웠다. 하지만 재미있게도 제동 상황 및 조향 상황에서 ‘시트 벨트 프리텐셔너’가 작동하며 몸을 확실히 움켜쥐어 ‘시트와 몸이 따로 놀지 않는’ 모습이었다.
한계가 느껴지는 타이어
그렇게 몇 랩을 달렸을까? 제동 상황에서 타이어가 노면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예상한 조향 지점을 제법 지나친 후에야 선회를 할 수 있었다. 페달 조작의 힘이 부족해서 그렇다고 생각하고 다음 코너에서 조금 더 힘을 주고 제동을 했더니 다시 한번 ‘생각한 포인트’를 지나치는 모습이었다.
결국 타이어의 문제였다. 이해는 한다. 캐딜락 CT6 터보는 말 그대로 컴포트한 플래그십 세단이며 고성능 모델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킷을 지속적으로 달리면서 강력한 접지력을 확보할 수 있는 고성능 타이어가 아닌 ‘일상 주행을 위한 컴포트 타이어’가 장착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혹 CT6 터보로 서킷을 달릴 생각이하면 타이어의 교체가 절실하다.
물론 브레이크 쪽에도 부담이 있다. 원래 캐딜락은 출력을 확실히 억제할 수 있는 브레이크 시스템을 탑재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CT6 터보는 ‘보다 대중적인’ 포지션을 지향하는 차량이다. 실제 서킷을 3~4랩 정도 달린 후부터는 조금 더 고성능의 브레이크 패드가 장착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생긴다.
그런데 막상 주행을 마치고 난 후 생각해보니 ‘순정 사양으로 3~4랩을 버틸 수 있는 브레이크 패드’는 꽤나 우수한 편이라는 것이다.
서킷을 즐기는 F-세그먼트 세단, 캐딜락 CT6 터보
캐딜락 CT6 터보는 누가 보더라도 F 세그먼트 세단의 존재감이 돋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세단으로 아무런 준비, 대응 없이 서킷을 제법 즐겁게 달릴 수 있다면 믿을 수 있을까? 여느 차량이라면 성능이 좋더라도 2톤이 넘어가는 그 덩치로 뒤뚱거릴게 뻔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캐딜락 CT6 터보는 후륜구동 본연의 가치와 재미라는 특별함을 선사할 수 있었다.
한국일보 모클팀 – 김학수 기자
취재협조: 인제스피디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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