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해빙 국면과 맞물려 이례적 ‘안보 알력’
트럼프는 궁지 탈출ㆍ아베는 지지층 결집 노려
북한 핵 위협에 맞서기 위해 한국과 미국, 일본 등 우방 3국이 결성한 ‘안보 네트워크’가 삐그덕대고 있다. 남북 및 북미 대화 시작으로 한국과 주변국의 이해관계가 바뀌고, 해빙 기운에 편승한 미ㆍ일 정치 지도자가 동맹 유지보다 국내 정치에 더 큰 관심을 기울이면서다.
요즘 한국은 공교롭게 미ㆍ일과 그간 우정이 돈독했던 군사 안보 사안을 놓고 갈등 중이다. 미국과는 새 주한미군 주둔 비용 분담 협정이, 일본을 상대로는 우리 군 함정이 일본 자위대 초계기에 공격용 레이더를 조준했는지 여부가 알력 요인이다.
두 가지 마찰 다 한국이 수세(守勢)인 형국이다. 미국의 경우 올해 내내 끌어 온 제10차 한미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SMA) 협상을 지난달 11~13일 막판 회의 때 사실상 원점으로 돌려버렸다. 수뇌부가 양측 실무진 간 타협안을 도외시하고 대폭 인상된 총액을 고집하는 한편, 새 기준을 설정해 주둔국 비용 부담을 최대한 늘릴 요량으로 협정 유효 기간마저 기존 5년에서 1년으로 줄이자고 제안하면서다.
우리 군의 부인에도 일본은 얼마 전 자국 군용기가 동해 중간수역에서 북한 조난 선박을 수색하던 우리 해군 구축함 광개토대왕함의 사격용 레이더에 의해 추적당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광개토대왕함이 정말 초계기를 겨눴는지 판단 가능하게 하는 수신 레이더 주파수 특성 정보 공개는 거부하면서다.
한국에 공세를 가하는 미ㆍ일의 속내가 물론 같지는 않다. 북미 비핵화 협상에 한국 입장을 더 많이 반영하고 싶거나 남북관계 진전을 미국이 양해하기를 바란다면 그 대가로 돈을 더 내라는 ‘장삿속’이 미국 요구에 반영돼 있다면, 일본의 호들갑은 한반도 대화 국면에서 소외된 듯한 자국의 처지가 못마땅해 남북관계가 잘되게는 못해도 훼방은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시위하려 한 번 놓아보는 ‘어깃장’에 가깝다는 게 대체적 분석이다. 어느 경우든 비핵화를 약속하고도 협상에 소극적인 북한이 대한(對韓) 압박의 빌미가 됐을 수 있다.
한미일 안보 동맹의 이완에는 한반도 긴장 완화가 큰 몫을 한 듯하다. 대북 화해 국면에 접어들자 미ㆍ일 모두 정부 수반이 안보 이슈를 다룰 때 동맹이나 우방의 가치보다 자국 정치 활용도를 최우선 기준으로 삼으려는 기색이 역력해졌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우리는 세계의 호구가 아니다”라는 노골적 표현까지 써가며 연일 동맹국들의 방위비 분담금이 모자라다는 불평을 쏟아내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최근 행보를 두고 자국민의 관심을 딴 데로 돌려 국내에서 자신이 놓인 사면초가 상황을 타개하려는 정치적 노림수 아니냐는 의심이 제기될 정도다.
더욱이 트럼프 대통령은 2016년 대선에서 ‘미국 우선주의’를 호소해 당선된 인물이다. 아무리 동맹이어도 미국의 이익과 어긋날 경우 ‘관계 재조정’을 마다하지 않는다는 게 지금껏 확인된 그의 원칙이다.
일본 역시 비슷한 분위기다. 의원 내각제 정치인 각료가 기본적으로 인기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데다, 최근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한국 정부의 위안부 화해ㆍ치유재단 해산 결정 등으로 불거진 한일 외교 갈등과 자국 내 반한(反韓) 여론을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지지층 결집에 활용하려 한다는 비판이 일본 언론 사이에서도 적지 않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은 1일 “남북관계와 대미ㆍ대일 관계를 분리하는 투 트랙 전략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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