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갑 고용부 장관 취임 이후 ‘근로자’ 용어 부쩍 잦아
“두루누리 사회보험료 지원도 210만원 미만 근로자까지 확대됩니다. 보다 많은 근로자들이 이 제도의 혜택을….”(12월20일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 전국 기관장회의)
“95만명 노동자, 32만개 사업체가 안정자금을 신청하여, 100만명 노동자 지원 달성을 눈앞에 두는….”(3월5일 김영주 당시 고용노동부 장관 전국 기관장회의)
고용노동부가 지난 9월 장관 교체 이후 장관 발언과 보도자료 등에서 ‘노동자’ 대신 ‘근로자’라는 용어를 부쩍 자주 쓰고 있다. 30일 한국일보가 이 장관(2018년 9월~현재)과 김 전 장관(2017년 8월~2018년 9월)의 재임 시절 발언과 이 기간 고용부의 보도자료를 대조한 결과 김 전 장관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재임 기간 내내 노동자라는 표현만 사용했다. 반면 이 장관은 근로자와 노동자를 혼용해 사용하고 있으며 때때로 근로자라는 용어만 쓰고 있다.
지난 20일 기관장회의 모두발언에서 이 장관은 근로자라는 용어를 세 차례 쓴 반면, 노동자는 한번도 입에 올리지 않았다. 김 전 장관이 지난 3월5일 같은 행사에서 노동자만 다섯 번 사용한 것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고용부의 보도자료에서도 ‘근로자’ 용어 활용 빈도가 높아지고 있다. 고용부가 지난 12일 발표한 ‘2019년 정부 업무보고’ 보도자료에서 근로자와 노동자가 각각 6번 사용됐다. 반면 올해 1월18일 발표된 ‘2018년 정부 업무보고’에는 노동자만 2회 등장했다.
이를 두고 업무보고와 기관장회의 보도자료의 실무 책임자인 이민재 고용부 기획재정담당관은 “노동관계법에는 ‘근로자’로 명시하고 있어 법적 용어를 쓸 때는 근로자를 쓰지만 다른 경우에는 노동자로 쓴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꼭 법적인 용어를 쓸 때만 ‘근로자’를 쓰는 것은 아니다. 일자리안정자금 관련 보도자료를 보면 과거(2017년 11월9일 일자리안정자금 시행계획안)에는 ‘저임금 노동자’ ‘일용 노동자’라는 표현을 쓴 반면 지난 26일 ‘2019년 일자리 안정자금 세부 시행계획’에는 ‘저임금 근로자’ ‘일용 근로자’라는 표현이 혼재돼 있다. 임금 체불 피해자를 가리켜 김영주 장관 시절에는 ‘체불 노동자’라고 지칭했지만, 최근엔 ‘체불 근로자’(지난 20일 ‘이재갑 장관, 체불근로자와의 대화’)로 표현된다.
근로자냐, 노동자냐는 상당한 정치적 함의를 갖는다. 노동(勞動)과 근로(勤勞) 모두 과거부터 써 왔던 말이기는 하다. 하지만 북한에서 노동이라는 용어를 많이 쓰면서, 우리나라는 박정희 정권이 ‘노동절’의 명칭을 1963년부터 ‘근로자의 날’로 바꾸는 등 정부가 근로자라는 표현을 장려했다. 노동계와 진보 진영은 ‘열심히 일한다’는 뜻으로 사용자 입장이 담겼다고 해석될 수 있는 ‘근로’보다는 가치중립적인 ‘노동’을 쓰는 게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청와대는 이런 맥락에서 지난 3월 발표한 개헌안에 ‘근로’ ‘근로자’ ‘근로조건’등의 표현을 전부 ‘노동’ ‘노동자’ ‘노동조건’으로 일괄 교체하기도 했다.
반대 편에서는 ‘노동’이 오히려 정치색이 짙다고 비판하고 있는 만큼, 최근의 변화는 정책 기조가 ‘노동 존중’에서 ‘친 시장’으로 조금씩 옮겨가는 것과 무관치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용어를 변경하는 법 개정 동력도 식을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8월 12개 노동관계법에서 ‘근로’라는 표현을 전부 ‘노동’으로 바꾸는 법안을 대표 발의했지만 1년 넘게 국회 상임위에 계류 중이다.
이성택 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