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 ‘문화과학’에 연구 논문
“남성 권력자 숭상은 그대로지만 과거 강반석ㆍ김정숙과 다른 모습”
“여전히 남성 권력자를 숭상하는 모습이지만, 두 여성의 이미지는 자본주의식 자기계발의 주체로서의 모습을 선보이고 있다.”
계간 ‘문화과학’ 겨울호에 실린 리설주, 김여정에 대한 평가다. 권금상 서울건강가정지원센터장이 쓴 ‘북한여성과 문화연구’ 논문이다. 올해 남북해빙기를 타고 가장 눈길을 끈 존재 중 하나는 김정은 위원장의 부인 리설주, 그리고 여동생 김여정이었다. 기존에 우리가 상상했던 북한 여성상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줘서다. 권 센터장은 이 두 명의 여성을 통해 북한의 변화하는 여성상을 짚어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북한 초기의 여성상은 “혁명의 한쪽 수레바퀴”였다. 봉건 유습 철폐를 내건 사회주의 이념에 따라 여성의 독립성, 주체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이건 구호였을 뿐이다. 오랜 가부장제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가령 1961년 열린 ‘1차 전국어머니대회’는 여성을 “가정을 책임지는, 자녀의 공산주의 교양을 책임지는 어머니”로 규정지었다. 여성의 역할은 ‘뒷받침’이다.
대표적인 게 김일성의 어머니 강반석, 그리고 김정일의 어머니 김정숙이다. 권 센터장은 강반석ㆍ김정숙을 “총대 여성상”이라 부른다. ‘총대’란 권력의 계주가 총을 넘겨주는 의식을 통해 공식화되는 것을 말한다. 이 권력 계주 드라마는 “권력 승계자를 남성으로 규정할 뿐 아니라, 남성에게 희생적 여성이 곡 애국적 여성”이라는 이념을 만들어낸다.
‘총대’ 개념이 가장 강력하게 추진된 건 김정일의 ‘고난의 행군’ 시기다. 1998년, 2005년 두 차례 전국어머니대회를 열면서 ‘강반석 따라하기’ ‘김정숙 따라하기’ 같은 운동을 벌였는데, 그 이유는 어렵지 않게 추론해볼 수 있다. “사적 소유가 인정되지 않던 북한 사회에서 장마당 활동이나 식량 구하기 등의 사경제 활동이 일반화되는 국면”에서 여성은 “가족의 생존을 책임지면서 국가적 어려움을 극복할 주체”로 호명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김정은 위원장 등장 이후 변화 조짐이 보인다. 김 위원장은 2012년 전국어머니대회를 부활시킨 데 이어, 11월 16일을 ‘어머니날’로 처음 지정했다. 이어 각종 놀이시설, 공원, 동물원, 유치원 등 가족 관련 시설들을 자주 드나들었다. 권 센터장은 이런 행보가 여성의 ‘노동’과 ‘희생’을 강조한 예전 정책과 다른 지점이라 평가했다. 최고 권력자의 부인과 여동생의 행보가 예전과 달리 자주 눈에 띄는 것도 그 때문이다.
물론 과대평가는 금물이다. 북한 여성은 여전히 최고권력자 집안에서, 남성 권력자를 보좌하는 이미지가 강하다. 그럼에도 권 센터장은 “강반석, 김정숙이라는 전통적 여성상”에서 “리설주, 김여정이라는 현대적 여성상”으로 이동했다는 점은 눈 여겨 볼 만하다고 강조했다. 그들 존재 자체가 북한 여성들이 “400여개가 넘는 장마당에서 주류를 이루고 있는 행위자”임을 드러내는 은유라서다.
조태성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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