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해가 되면 ‘후쿠부쿠로(福袋ㆍ복주머니)’ 행사로 일본 전국이 들썩인다. 후쿠부쿠로는 백화점이나 상점에서 복주머니라고 쓰여진 봉투 안에 여러 상품들을 무작위로 넣어 입구를 봉해 판매하는 한정상품이다. 봉투당 1,000엔(약 1만원)짜리부터 수십만 엔에 이르는데, 판매가격의 3~5배에 달하는 상품이 담긴 경우도 있다. 그래서 연초 백화점 앞에는 복주머니를 구입하려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필요한 상품인지도 모른 채 구입하는 ‘묻지마 쇼핑’이지만 한 해의 운을 점쳐보는 재미를 제공하는 측면도 있다.
2019년은 아키히토(明仁) 일왕이 퇴위하는 이른바 ‘헤이세이(平成ㆍ아키히토 일왕 즉위 이후 연호)’의 마지막 복주머니라는 점을 들어 소비자의 지갑을 열게 할 아이디어 상품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미쓰코시(三越)백화점 나고야(名古屋)점에선 헤이세이 최고가인 1억엔(약 10억1,200만원)짜리 복주머니를 내놓았다. 무려 15㎏짜리 순금으로 된 에비스(えびすㆍ풍어와 어부의 안전을 관장하는 신)상으로 단 한 점만 준비했다. 백화점 관계자는 “원래 1억3,000만엔(약 13억1,600만원)에 달하는데, 20% 이상 싸게 구입할 수 있다”고 했다.
JR나고야다카시마야(高島屋) 백화점은 1,000만엔 상당의 다이아몬드와 에메랄드 등으로 만든 액세서리들을 담은 복주머니를 500만엔에 판매한다. 중고명품 유통업체인 고메효는 여성에게 인기 있는 에르메스의 버킨백 등을 담은 2,019만엔짜리 복주머니를 준비했다. 사실상 내년 10월 예정된 소비세 인상(현행 8%→10%)을 앞둔 소비자들이 고가품을 구매할 것이란 심리를 활용한 마케팅이다.
헤이세이 시대를 추억하는 복주머니도 등장했다. 마쓰자카야(松坂屋)에선 일본 버블경제 시기에 유행했던 디제이(DJ)의 음악과 함께 디스코 체험을 할 수 있는 상품권을 준비했다. 지역 특성을 살린 이색 복주머니도 있다. 9월 강진 피해를 경험했던 삿포로(札幌)에선 ‘지금 정말로 필요한 것’이란 주제로 재해 시에 활용할 수 있는 상품들로 구성된 복주머니를 준비했다. 도큐(東急)백화점 삿포로점은 ‘일상적으로 먹어도 맛있는 비상식량’세트(7,560엔)와 바람을 넣어 간단히 만들 수 있는 텐트와 가스 스토브 등이 포함된 비상용품 세트(7만5,600엔)를 준비했다. 또 홋카이도(北海道) 내 관광지와 피해지역 부흥을 위해 온천 등으로 유명한 조잔케이(定山渓) 투어 상품과 산사태로 인명피해가 컸던 아츠마(厚真)초의 양고기와 쌀을 담은 복주머니도 마련됐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에 따르면 백화점 업계에선 연말 미국발 쇼크로 일본 증시가 크게 출렁이긴 했으나 부유층의 고액 소비에 기대를 걸고 있다고 한다. ‘헤이세이의 마지막 복주머니’라는 마케팅을 앞세워 새해 첫 매상실적을 올리겠다는 목표에서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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