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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한반도 정세, 싱크탱크에 듣는다] “1월 김정은 답방ㆍ2월 북미회담 성사돼야 비핵화 협상 돌파구”

입력
2019.01.01 04:39
수정
2019.01.01 11:06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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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백학순 세종연구소장

핵-경제발전 맞바꾸려는 김정은, 비핵화 뒤 美 변심 걱정… 美는 비핵화 냉소

北, 소련 붕괴 후 美 내세워 中 견제 전략… ‘비핵화ㆍ평화 교환’ 5번째 시도

2018년은 한반도 냉전 양대 지주에 균열이 생긴 해다. 2017년 핵 전쟁 위기가 남북과 북미 간 평화 컨센서스라는 반전을 낳았다. 그러나 70년 적대의 성(城)은 견고했다. 비핵화와 체제 보장을 교환하는 북미 협상은 6월 정상회담 뒤 답보 중이고, 남북관계도 이에 제약을 받고 있다. 2019년 한반도는 어디로 갈까. 대표적 국내 외교안보 분야 싱크탱크 수장들의 통찰이 담긴 의견을 4회에 걸쳐 들어본다. 편집자 주

백학순 세종연구소장이 12월 19일 경기 성남시 세종연구소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그는 "2019년 1월 안으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답방이 이뤄져야 북미 협상 동력이 소진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신상순 선임기자
백학순 세종연구소장이 12월 19일 경기 성남시 세종연구소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그는 "2019년 1월 안으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답방이 이뤄져야 북미 협상 동력이 소진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신상순 선임기자

2018년 세계를 가장 놀라게 한 인물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일 것이다. 2017년까지 가공할 위력의 수소탄을 실험하고 미국을 겨냥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연신 쏴 올리던 그가 올 초 돌연 핵을 협상 테이블에 올렸다. 고립과 가난과 불안감을 감내하며 완성한 보검(寶劍)이라던 핵을 그는 과연 포기할 수 있을까.

“전쟁을 끝내고 평화를 정착시키는 이른바 ‘한반도 대전환’에 김 위원장이 협력하고 나선 건 놀라운 일이 아니에요. 1991년 말 소련이 붕괴하자 북한은 21세기에 어떻게 살아남을지, 나아가 어떻게 발전을 도모할지에 대한 새 전략을 세웠습니다. 소련의 빈자리를 미국으로 채워 중국을 견제한다는 심산도 있었죠. 이후 북한은 줄기차게 대미 협상을 시도합니다. 이번이 다섯 번째죠. 북한의 구상은 늘 같았어요. 핵을 포기하되 경제 발전 밑거름이 될 평화를 받아내겠다는 거였습니다.”

지난달 19일 경기 성남시 세종연구소에서 만난 백학순(64) 소장은 북한의 저 집념에 “어떻게든 경제를 살려 ‘자신의 시대’를 열려는” 김 위원장의 욕망이 포개지면 분명 상승 효과가 생길 거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다만 현재 북미 간 협상 교착 상태가 2월을 넘겨서는 안 된다는 게 백 소장 생각이다. 한반도 대전환을 끌어낸 동력이 약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김 위원장의 리더십 스타일상 서울 답방 약속은 지켜질 가능성이 크다”며 “기왕 올 거면 늦어도 1월 말까지는 방문이 이뤄져야 북한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_1990년대 초 냉전 종식 뒤에도 근 30년간 여전히 동토인 한반도에 2018년 해빙의 단초라 볼 만한 변화가 일어났다.

“가히 한반도 대전환이라 표현할 만하다. 전쟁을 끝내고 평화를 정착시키는 과정에 들어섰다. 정전(停戰)체제 한반도의 핵심 증후인 핵 위협을 없애기 위한 치료도 시작됐다. 2017년에 발생한 일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특히 하반기에 핵 전쟁 위기가 고조됐었다. 북미 정치 지도자들이 ‘핵 단추’ 운운하며 핵무기를 마치 장난감 다루듯 말했다. 한반도에 사는 우리는 충격과 좌절에 빠졌다. 이제는 정말 냉전 구조를 해체해야 한다는 컨센서스가 이뤄졌다. 이를 우리 손으로 해내기 위해 문재인 대통령이 취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이니셔티브에 김정은 위원장이 호응했고,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도 화답했다.”

_하지만 꽤 오랫동안 북미 협상이 진전되지 않고 있다.

“이미 북미는 6ㆍ12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통해 공동 목표뿐 아니라 북한 비핵화와 북한에 제공될 보상을 병행해서 협상하고 상호 주고받기가 다단계, 동시행동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양(兩)궤도 접근 방법에 합의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도 2018년 7월 제3차 방북 뒤 도쿄 기자회견에서 이를 확인했다.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와 2005년 북핵 6자 회담 9ㆍ19 공동성명도 양궤도 주고받기였다. 다만 몇 단계에 걸쳐 단계마다 뭘 어떻게 주고받을지에 대한 합의, 즉 로드맵이 아직 나오지 않았을 뿐이다. 교착이 실패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돌파하면 되는 과정의 일부일 뿐이다.”

_북한이 침묵하는 형국이다.

“김 위원장은 핵을 갖고 세계와 적대하며 고립돼 가난하게 살기보다 핵을 포기하고 국제사회와 협력하면서 잘사는 나라를 만들기로 선택한 듯하다. 문제는 비핵화 뒤 북한이 직면할 취약성과 이에 대한 북한의 방어 의식이다. 핵 능력이 감소한 상황에서 미국이 대북 정책을 뒤집어버리면 속수무책이라는 게 북한 걱정이다. 김 위원장은 이란 핵 합의 등 전 정부가 이뤄놓은 여러 국제 합의를 트럼프 대통령이 무시해버리는 현실을 보기도 했다. 이런 변수들에 대한 방어 메커니즘을 가급적 완벽하게 갖춰둬야겠다는 생각을 북한이 하고 있는 것 같다.”

_미국에게는 책임이 없나. 비핵화 보상에 아주 인색한 모습이다.

“북한이 미국 요구를 순순히 들어주지 않는 것보다 어쩌면 미 국내 정치가 더 큰 문제다. 2018년 11월 중간선거로 야당인 민주당이 미 하원을 장악한 데다, 로버트 뮬러 특검 수사와 각종 스캔들이 트럼프 대통령을 더 심한 곤경으로 밀어 넣고 있다. 보수 진영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외톨이 처지다. 대통령과 관료 집단, 의회, 싱크탱크, 언론 등 분야를 막론하고 지속돼 오던 보수 진영 내의 협력 전통도 집권 뒤 사라지고 있다. 결국 북한 비핵화에 실패하고 말 거라는 비관과 냉소가 가득하다. 외교안보 분야 기득권 세력은 보상은커녕 비핵화 전에 이뤄지는 어떤 전향적 대북 조치에도 반대한다.”

_왜 그렇게 김 위원장을 못 믿는 건가.

“‘이제 비핵화 협상은 없다. 핵 협상을 해야 한다면 핵무기 보유국으로서 핵 감축 협상만 하겠다’고 북한이 선언한 게 2013년 가을이다. 이후 김정은 북한은 핵 완성을 향해 질주했다. 핵ㆍ미사일 능력 고도화에 전력투구했고, 2017년 말에는 수소탄과 ICBM 역량을 세계에 과시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러자마자 180도 돌변한 태도로 비핵화 협상을 하겠다고 하니 무슨 꿍꿍이인가 하는 의심이 들 만도 한 것이다.”

_김 위원장의 진짜 속내는 뭘까.

“김 위원장은 선대(先代)와 다르다. 경제를 살려 자기 ‘레테르’(고유성을 드러내는 표지)가 붙은 시대를 열려는 의지가 강하다. 청소년기 스위스 유학 경험이 토대가 된 세계 수준 인식과 북한 경제 후진성에 대한 고민, 변화 필요성 자각, 실용주의 리더십 등이 토양이 됐을 것이다. 증산ㆍ국산화 등 성과를 나름대로 거두고 있는 대내 개혁에 대외 개방이 결합돼야 비로소 부국(富國) 건설이 가능하고, 이를 위해서는 핵을 건 대미 담판이 긴요하다는 게 그의 분석이었을 듯하다.”

_어쩌면 핵 개발이 전쟁 종식과 경제 발전을 위한 전략적 사고의 결과였을 수 있겠다.

“북한은 이미 1991년 12월 소련 해체 직후 소련이 사라지면서 생긴 공백에 미국을 끌어들여 대중(對中) 대항력으로 활용하는 한편, 미국과의 주고받기 협상을 통해 주한미군 주둔을 비공식 용인하고 핵을 포기하는 대신, 종전(終戰)과 평화협정, 관계 정상화, 경제 협력을 받아내겠다는 전략을 수립했다. 이른바 ‘21세기 생존과 발전의 전략’이다. 북한의 이 전략은 지금까지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게 내 생각이고, 김 위원장의 이번 전향은 다섯 번째 전략 이행 시도다. 2017년 급격히 수준을 끌어올린 수소탄과 ICBM 기술로 미국이 무시할 수 없는 군사안보적 힘을 이제 갖게 됐고, 그 덕에 미국과 본격 주고받기가 가능해졌다고 김 위원장이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백 소장이 소개한 첫 대미 비핵화ㆍ평화 주고받기 시도는 1992년 1월 미 뉴욕에서 열린 김용순 당시 노동당 국제 담당 비서와 아놀드 캔터 미 국무부 정무차관 간 회담이었다. 두 번째는 1994년 제네바 합의를 이끌어낸 1차 핵위기 때였고 3차가 2005년 9ㆍ19 공동성명으로 이어진 2000년대 초 2차 핵위기 즈음이었다. 4차 시도는 한미가 북핵 위협에 핵무기로 맞대응하는 연합 훈련을 처음 공개적으로 했던 2013년 봄을 거치면서 이뤄졌다(6ㆍ16 대미 고위급 대화 제의).

시도들은 모두 좌절됐다. ‘핵 카드’에 마지못해 반응하기는 했지만 초기에는 놔두면 북한이 저절로 망할 거라 믿었고 나중에는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으로 여겼던 미국이 협상에 적극성을 보이지 않으면서다. 백 소장은 “북한이 미국과의 관계를 끝장내려 했으리라는 해석은 오해”라며 “오히려 북한은 미국을 지렛대 삼아 자신들의 꿈을 이루려 했다”고 설명했다.

_답보 중인 북미 협상부터 다시 굴려야 결실도 거둘 수 있다. 어떤 돌파구가 있을까.

“두 가지다.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과 2차 북미 정상회담이다. 2019년 2월까지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되지 않으면 3월부터 한미 연합 군사훈련이 재개될 것이다. 그럴 경우 북미 간 말싸움으로 분위기가 다시 험악해지고 트럼프 대통령의 자국 내 입지 축소로 대북 정책 동력이 약화할 가능성이 크다. 김 위원장도 버티기에 들어갈 수 있다. 그 상태에서 봄이 지나가고 국내 정치권이 2020년 4월 열리는 총선 준비에 접어들면 대북 정책은 지금보다 더 당파적으로 다뤄질 것이다. 늦어도 1월 안에 김 위원장의 답방이, 2월 안에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돼야 북미 협상 동력이 유지되고 2019년에 예상되는 험난한 파도들을 한반도호(號)가 헤쳐나갈 수 있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백학순 소장은

2018년 6월 1일 제10대 세종연구소장으로 취임했다. 북한 국내 정치와 남북관계 및 통일, 북미관계, 북핵문제 등을 연구해 왔다. 통일부 남북관계발전위원회 위원과 통일부 자체평가위원장, 외교통상부 정책자문위원, 국회 외교통일 분과 상임위원회 정책자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서울대 영어교육학과를 졸업한 뒤 같은 대학 대학원 정치학과와 미국 조지아대를 거쳐 펜실베니아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하버드대 박사후연구원을 지냈다. 주요 저서로 ‘북한 권력의 역사: 사상ㆍ정체성ㆍ구조’ 등이 있다.

<글 싣는 순서>

<1> 백학순 세종연구소장

<2> 조세영 국립외교원장

<3> 김연철 통일연구원장

<4> 조동호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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