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새해 초부터 중국 통신 장비 제조사 화웨이와 ZTE가 생산한 장비를 미국 기업들이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행정명령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로이터통신은 27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국제긴급경제권한법(IEEPA)을 활용해 국가 비상사태를 선언, 중국의 최대 통신 장비 제조업체 가운데 두 기업인 ZTE와 화웨이를 미국 시장에서 사실상 축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IEEPA는 미국 대통령이 국가 안보를 위협한다고 판단할 경우 상업행위의 통제권을 부여하는 법률이다.
로이터는 내부 논의에 정통한 관계자 3명을 인용해 백악관이 지난 8개월간 이 행정명령을 검토해 왔으며, 이르면 내년 1월에 바로 발동할 수 있다고 전했다. 로이터가 인용한 관계자들은 명령 자체가 화웨이나 ZTE를 직접 거명하지는 않겠지만 사실상 두 기업의 장비 유통을 제한하는 명령으로 해석될 것이며, 행정명령의 문안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미국 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 5월 초 백악관이 이와 같은 행정명령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지만 실제로 실행 단계가지 가지는 않았다.
그동안 미국을 비롯한 서구 정보기관은 화웨이와 ZTE가 사실상 중국 정부의 통제를 받고 있다고 보고, 화웨이와 ZTE의 장비가 첩보 활동에 동원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로이터 보도에 따르자면 트럼프 대통령이 검토하고 있는 행정명령도 이를 근거로 할 가능성이 높다. 화웨이는 이미 정부와 무관한 사기업임을 강조하며 이런 의혹을 부인한 바 있다.
이미 지난 8월 입법으로 미국의 연방정부 및 관련기관에서는 화웨이와 ZTE의 장비 사용이 금지돼 있다. 논의되는 행정명령은 이를 미국 내 사기업까지 확장할 가능성이 있다. 다만 산업 분야 관계자는 로이터에 정부가 합법적으로 사기업의 거래를 통제할 수 있는지 정부 내에서도 논의가 엇갈린다고 밝혔다.
특히 다른 기업 장비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중국산 장비를 주로 사용하고 있는 미국의 지방 통신업체들은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 지방무선통신협회(RWA)의 캐리사 베넷 법률고문은 RWA 회원사가 모두 화웨이ㆍZTE 장비를 대체하는데 총 8억달러에서 10억달러 사이의 비용이 들 것이라고 예측했다.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는 이미 지난 4월 미국 안보에 위협이 되는 장비를 구매하는 기간통신사에 연방 지원금 지불을 중단하는 규정을 승인했는데, 역시 화웨이와 ZTE를 겨냥한 것이다.
화웨이ㆍZTE 제재 논의는 미국과 중국의 새 무역협상 돌입을 앞두고 부정적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있다. 이 때문에 화웨이 문제가 거론되는 것을 트럼프 대통령의 무역협상술의 일환으로 보는 시각과, 근본적으로 중국 첨단기술기업 성장을 억누르려는 서방의 의도가 숨어 있다는 분석이 동시에 나오고 있다. 화웨이의 경우 미국 시장보다는 아시아ㆍ유럽 등지에서 판매량이 많은데, 유럽연합(EU) 등이 미국의 영향을 받아 수입 규제 정책을 취하게 된다면 타격이 있을 수밖에 없다.
화춘잉(華春瑩)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보도와 관련해 “공식적으로 확인된 바 없다”라며 논평을 거부했다. 다만 그는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일부 국가가 증거도 없이 국가 안보라는 명분을 남용해 정상적인 과학기술 교류 활동을 정치화하고 장애물을 만든다”고 말했다. 백악관과 화웨이ㆍZTE 모두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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