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4일 발생한 KT 아현지사 화재와 같은 ‘통신 재난’이 발생해도, 타사 통신망을 이용해 급한 전화와 문자메시지 등을 할 수 있게 된다. 모든 통신사의 지사(통신국사)에 우회망 확보가 의무화되고, 500m 미만 지하 통신구에도 소화설비가 설치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7일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를 거쳐 ‘통신재난 방지ㆍ통신망 안정성 강화대책’을 확정했다. 앞으로 다가올 5G 시대에서는 어떤 환경에서도 끊김 없는 통신 환경이 중요한 만큼, 이번 대책은 통신 안정성 확보에 초점을 맞췄다.
◇”KT 아현지사 C급임에도 D급으로 관리”
과기정통부가 통신 및 소방 전문가 62개 팀과 함께 이달 3일부터 13일간 주요 통신시설 및 통신구, 인터넷데이터센터(IDC) 1,300개소를 점검한 결과, 일부 통신시설은 여전히 재난 대비가 미비한 것으로 드러났다.
먼저 통신사가 자체 분류한 지사 등급을 정부가 제대로 검증하지 않으면서 허점이 발생했다. 전체 915개 통신 시설 중 12곳은 등급 조정이 필요한 상태였다. 실제로 KT 아현지사는 4개 구(서대문ㆍ마포ㆍ용산ㆍ은평)의 통신을 책임지고 있어 분류기준상 C급 지사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D급 시설로 관리돼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장석영 과기정통부 정보통신정책실장은 이날 “이달 5일 KT에 아현지사 분류 등급을 조정하라는 시정명령을 내렸다”면서 “KT의 이행 결과를 보고 과태료나 법적 조치를 내리겠다”고 말했다.
또한 화재 방지 의무가 없었던 500m 미만 통신구 126개 중 10%엔 자동 화재탐지 설비가, 70%에는 살수 헤드가 마련돼있지 않았다. 전체 통신구 중 절반이 넘는 117개소에는 폐쇄회로(CC)TV조차 설치되지 않았으며, 심지어 일부 통신케이블은 지하 주차장에 노출돼 제3자 접근에 무방비 상태인 것으로 드러났다.
◇통신 안정성 위해 관리 기준 강화하기로
이번 KT 아현지사 화재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이유는 통신망 이원화 의무가 없는 D등급으로 설정돼 있던 탓이다. 과기정통부는 이번 대책에서 D등급을 포함한 전체 지사에 우회망을 설치하도록 했다. 재난이 발생해 중요 지사 중 한 곳이 먹통이 되더라도 우회로가 촘촘하게 연결돼 있으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기정통부는 중요 통신 지사 구분 기준도 개선하기로 했다. 행정구역 수로 분류하는 기존 기준으로는 좁은 지역에 많은 가입자가 있는 경우 피해가 커진다는 단점이 있기 때문에, 행정구역 수에 더해 가입 회선 수를 등급 기준에 추가로 반영할 계획이다.
예를 들어 서울 서대문구 지역만 담당하는 지사(D급)더라도, 해당 지역에 거주하는 가입자가 10만명이 넘는다면 C급으로 올려 관리할 수 있다. 현행 기준에 신설 기준을 추가로 적용하면 13곳에 불과하던 C급 국사가 100여곳으로 대폭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기준 회선 수는 내달 중 통신재난관리 심의위원회를 통해 최종 결정될 예정이다.
◇통신재난 시 다른 이통사로 ‘로밍’ 가능
과기정통부는 이날 SK텔레콤과 KT, LG유플러스와 SK브로드밴드와 함께 통신 재난 발생시 서로 협력하겠다는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이통사들은 재난으로 한 통신사의 망이 망가지더라도 이용자는 다른 이통사의 무선 통신망을 이용해 전화와 문자메시지를 보낼 수 있도록 ‘국내 로밍’을 실시하기로 했다. 재난지역에 각 통신사가 보유한 와이파이망을 개방해 인터넷 사용도 가능하도록 했다.
하지만 관련 부처 및 업체가 15곳에 이르는 만큼 내년 2월 발의될 방송통신발전기본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다면 대책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또 새롭게 우회망을 확보해야 하는 D급 지사만 전국에 835곳에 달한다. 가뜩이나 세계최초 5G 상용화를 위해 통신사들이 수십조원 이상의 투자비용을 쏟아붓고 있는 상황이어서 우회망을 제때 완성할 수 있는 자금을 공급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과기정통부 측은 “투자 비용을 고려해 통신사별 재무능력에 따라 유예기간을 달리 줄 계획”이라고 밝혔다.
곽주현 기자 z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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