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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한반도 정세, 싱크탱크에 듣는다] “정부, 북미 설득할 제3대안 내는 진정한 중재자 역할을”

입력
2019.01.04 04:40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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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ㆍ끝>조동호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조동호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이 지난달 17일 서울 강남구 연구원 집무실에서 가진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2019년 한반도 정세를 논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조동호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이 지난달 17일 서울 강남구 연구원 집무실에서 가진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2019년 한반도 정세를 논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6개월 전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은 ‘세기의 사건’이라는 수사로 표현하기에 결코 부족함이 없었다. 화려한 수사만큼이나, 북미 간 비핵화 프로세스가 급진전될 것이란 기대도 컸다. 과감하고, 저돌적이며, 실용적이라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만나 담판을 짓는다면, 나머진 비교적 수월하게 진행될 것이란 예상이 많았다.

하지만 수십 년 적대감을 해소하기에 반 년은 짧았다. 북미가 무엇을 주고받을지 이견을 보이는 상황에서, 여러 레벨에서 추진된 북미 회담은 번번이 무산됐다. 협상 동력이 떨어졌고, 북한은 북한대로 미국은 미국대로 내부 여론만 악화하는 듯 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이 1일 신년사로 대미 협상 의지를 밝히고, 트럼프 대통령이 곧장 이에 화답하며 다시 북미 간 협상이 활기를 띨 조짐이다. 국가정보원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의 조동호(59) 원장은 “북미 비핵화 협상이 밖에서 볼 때는 꽉 막힌 교착 상태로 보일 수 있겠지만, 안에서는 그야말로 숨가쁘게 돌아갔을 것”이라고 현재 상황을 분석했다. 이어 “김 위원장이 신년사를 통해 대화의 끈을 이어가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와 소망을 여실히 드러냈다”며 “정부가 이 기회를 잘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 원장과의 인터뷰는 지난달 17일 서울 강남구 국가안보전략연구원에서 진행됐고 이달 2일 전화 통화를 통해 추가 질의ㆍ응답이 이뤄졌다.

_북미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다는 얘기가 연말까지 나왔다. 어떻게 보나.

“북미가 문제를 풀려면 일단 만나야 하는데, 그 만남조차 성사되지 않는 원인이 뭔가 봐야 한다. 북미는 사실 대화 방식이 너무나도 다르다. 대화 방식의 차이가 북미 대화가 교착 상태에 빠진 중요한 원인이다. 북미가 지난해 싱가포르 정상회담으로 대화 돌파구를 열기는 했으나, 미국은 그 이후에 실무 접촉을 통해 차근차근 내용을 채워나갔어야 했다. 민주주의 체제니까. 근데 ‘톱다운(Top-down)’ 방식에서 ‘보텀업(Bottom-up)’ 방식으로 가려니 북한이 따라주지 않는 거다. 독재국가인 북한으로선 보텀업 방식을 취할 리 만무하고, 취할 수도 없다. 보텀업 방식이 오히려 비효율적이기만 할 뿐이다. 이 과정에서 북미가 조정이 필요했던 거라고 본다.”

_내용적인 측면보다 형식적인 측면에서 더 문제가 크다고 보는 건가.

“내용과 형식은 맞물려 있는 거니까 뭐가 더 큰 문제다, 뭐가 더 작은 문제다 말할 수는 없다. 내용적인 측면에서 북미 의견이 일치한다면 형식 차이를 논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서로 원하는 내용이 다르니 그것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기라도 해야 하는데,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 것조차 합의를 못하니 문제인 것이다.”

제2차 한미 워킹그룹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지난달 19일 방한한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이날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해 대북 인도지원 정책 개선에 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영종도=홍인기 기자
제2차 한미 워킹그룹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지난달 19일 방한한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이날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해 대북 인도지원 정책 개선에 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영종도=홍인기 기자

_예를 들자면.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와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의 실무 회담이 지난해 10월 불발된 것이 대표적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김 위원장에게 ‘실무 협상을 하자’고 제안하고, 김 위원장이 ‘오케이’ 사인을 줬지만, 정작 협상에 나서야 하는 최 부상 입장에서는 준비도 안 돼 있을뿐더러, 어떤 결정 권한도 없었을 것이다. 미국이야 다 준비가 돼 있었겠지만. 결국 미국 입장에선 ‘하기로 했던’ 실무 협상이 불발되니 ‘북한이 약속을 어긴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이런 상황이 계속돼 왔다. 결국 서로가 접촉하는 과정에서 정리가 될 것이다.”

_그래서일까. 지난해 북한 비핵화 조치가 미진하다는 평이 우세하다.

“기대가 컸기 때문에 실망도 컸지만, 지난해 1월 1일로 돌아가 생각해보면 정말 놀라운 진전이 있었구나 할 것이다. 지난해 김 위원장은 비핵화를 약속했고, 세 번에 걸쳐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났으며 트럼프 대통령까지 만났다. ‘뭔가 될 것 같다’ 싶은 일들이 벌어지니 ‘이대로라면 비핵화도 금방 되겠는데’하는 기대감도 덩달아 커졌다. 그런데 막상 북한이 기대만큼의 조치를 취하지 않으니 ‘아무것도 이룬 게 없잖아’ 하는 얘기가 나오는 것 같다.”

_특히 어떤 결실에 주목하나.

“단연 비핵화 프로세스 일환으로 남북이 체결한 9ㆍ19 군사분야 합의서다. 비무장지대(DMZ)라는 이름을 달고 있었으나, 역설적으로 최고의 무장지대였던 곳이 지난해 비로소 본연의 이름대로 비무장화됐다. 미국 등 국제사회는 북핵에만 관심이 있을 수도 있지만 우리 입장에선 재래식 무기가 어쩌면 안보에 더 큰 위협이 될 수 있다. 종전(終戰)을 향한 첫발을 뗀 것이다.”

남북이 ‘9ㆍ19 군사분야 합의서’ 이행 차원에서 최근 시범 철수한 비무장지대(DMZ) 내 감시초소(GP)들을 상호 방문 검증하기로 약속한 지난달 12일 남북 현장검증반이 황색 깃발로 표시된 강원 철원군 중부전선 군사분계선(MDL)에서 만나 인사를 나누고 있다. 철원=사진공동취재단
남북이 ‘9ㆍ19 군사분야 합의서’ 이행 차원에서 최근 시범 철수한 비무장지대(DMZ) 내 감시초소(GP)들을 상호 방문 검증하기로 약속한 지난달 12일 남북 현장검증반이 황색 깃발로 표시된 강원 철원군 중부전선 군사분계선(MDL)에서 만나 인사를 나누고 있다. 철원=사진공동취재단

김 위원장은 1일 신년사를 통해 남북이 지난해 체결한 합의서들을 언급하며 “북남 사이에 무력에 의한 동족상쟁을 종식시킬 것을 확약한 사실상의 불가침선언”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군사적 적대관계 해소를 한반도 전역으로 확대하기 위한 조치를 취해가야 한다’는 말도 더했다.

_비핵화 프로세스가 조만간 본 궤도에 오를까.

“일단 김 위원장은 신년사를 통해 육성으로 ‘완전한 비핵화’를 언급하는 등 비핵화를 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였다. 지금 상황이 여의치 않으나 (대화) 모멘텀을 만들고 싶어하는 의지, 소망이 여실히 드러난 것이다. 향후 성패는 트럼프 대통령의 ‘북한 비핵화에 대한 의지’에 달려있다. 북한은 ‘이미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반쯤 건넜다. 지난해 4월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열어 ‘핵ㆍ경제 병진노선을 종료한다’고 선언했는데, 이 결정을 일방적으로 번복할 수 있을까.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는 급하지 않다’는 메시지를 발신한 것도 김 위원장이 결정을 뒤집을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북한이 만약 ‘우린 비핵화를 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했다면 느긋하다고 할 수 있었을까.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비핵화에 관심을 끊으면 북한만 머쓱해지는 거다.”

_김 위원장 스스로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 있다’고 언급한 것처럼 결심을 바꿀 수도 있지 않나.

“얼마 전 만난 북한 인사에게 ‘우리는 여론이라는 게 있어서 대통령 마음대로 할 수 없다’고 하자 ‘조 선생, 우리라고 왜 여론이 없겠습니까’ 반문하더라. 순간 당황했다. 근데 생각해보니 독재국가에선 최고지도자가 가장 중요하고 우선하지만 그 나름대로 여론이 있고 민심이 있다. 과거 어느 시대에서도 그랬다. 민심을 위반하면 제아무리 독재자라도 권력을 내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김일성 주석, 김정일 국방위원장보다 한참 어린 김 위원장 입장에선 민심이 더욱 중요할 거다. 자기가 결정했다고 해서, 손쉽게 회수해버린다면 지도자에 대한 신뢰가 남아 있을까. 지금 김 위원장은 딜레마에 빠져 있는 것이다. 미국에 추가 조치를 내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비핵화를 철회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공은 미국이 쥐고 있다.”

_중재자 한국은 올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않게 처신을 잘해야 한다. 가령 미국이 ‘북한을 조금만 밀어 붙이면 되겠다’고 판단하고 있는데, 여기에 대고 ‘북한을 이해하자, 믿어보자, 우리가 당근을 주자’는 식의 메시지를 보내면 미국 입장에서는 당연히 ‘한국 정부가 북한 편을 들고 있는 것 아니냐’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중재자는 A와 B의 생각이 다를 때, 그 가운데서 제3의 안을 제시할 수 있는 자를 말한다. A의 말을 B에 전하고, B의 말을 A에 전하는 건 단순한 ‘브로커(Broker)’다. 괜히 말을 전하다 양측 모두에 오해를 살 수도 있고, 차라리 둘이 만나 해결하는 게 나은 상황을 만들 수도 있다. 2019년에는 정부가 ‘진정한’ 중재자의 역할을 ‘잘’ 해야 할 것 같다.” (조 원장은 ‘진정한’과 ‘잘’을 말할 때 목소리에 힘을 줬다.)

_한반도 정세가 급변하는 상황에서 연구원도 바빴을 것 같다. 연구원이 2019년 주력할 부분은 무엇인가.

“특정 기관의 이해를 대변하지 않는 기관이 되고자 최선을 다했다. 국가정보원으로부터 예산을 지원받는 싱크탱크이지만, 결국 국정원 예산은 세금이다. 고로 국정원을 위한 보고서가 아니라 국가를 위한 보고서를 만들자는 생각으로 일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2019년에도 연구원은 기존 해오던 연구, 그러니까 북한 내부 분석, 남북관계 관련 정책 제언 등을 착실하게 수행할 것이다. 그리고 아직까지는 국내에서 많은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는 신안보 분야에 대한 연구에도 중점을 둘 것이다. 그리고 앞서 말한 두 가지를 더 잘하기 위해 해외 네트워크 활동도 더욱 강화할 것이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조동호 원장은

북한 경제 전문가로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선임연구위원, 북한경제팀장, 기획조정실장 등을 거쳤다.2007년 이화여대로 자리를 옮겨, 통일학연구원장, 대학원북한학과장 등을 지냈다. 경제ㆍ인문사회연구회 이사, 북한경제포럼 회장, 북한연구학회 부회장 등을 역임했고, 박근혜 정부 대통령직속 통일준비위원회 경제분과위원회 민간위원을 맡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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