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부터 달라지는 금융제도 소개
신용등급 4등급인 김모(42)씨는 올 초 저축은행에서 2,000만원의 신용대출을 받았다. 시중은행엔 3,500만원 대출이 있어 추가 대출 한도가 충분치 않던 차에 저축은행에서 더 많은 금액을 금리 우대까지 받아 빌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최근 이 대출 때문에 신용등급이 5등급으로 한 단계 떨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김씨는 “대출 원리금도 성실히 상환했는데 단지 시중은행 아닌 곳에서 돈을 빌렸다는 이유만으로 신용등급을 깎는 건 부당하다”고 하소연했다.
내년부터는 김씨처럼 은행 아닌 제2금융권 대출을 이용한다는 이유만으로 신용평가에서 불이익을 받는 일이 줄어들 전망이다. 금융위원회는 27일 이 같은 내용이 담긴 ‘개인신용평가체계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현재 개인신용 평가체계는 신용평가(CB)사가 개인별 금융활동 이력정보를 수집해 신용점수를 산출하고 이를 10개 구간으로 나눠 신용등급을 매긴다. 은행 대출의 경우 CB사는 대출의 유형(담보대출, 신용대출 등), 액수, 금리에 따라 차등적으로 신용점수를 낮춘다. 대출액이 적고 금리가 낮다면 점수를 덜 깎는 식이다. 반면 저축은행을 포함한 2금융권에서 돈을 빌리면 대출 유형과 금리는 배제하고 금액만 따져 신용점수를 하향조정 한다. 더구나 은행과 같은 조건으로 대출을 받아도 2금융권 대출자의 신용도가 훨씬 큰 폭으로 떨어진다. 이 때문에 은행 대출자는 신용등급이 평균 0.25등급 떨어지는 데 비해 저축은행은 1.6등급, 보험사는 0.85등급, 상호금융(농협 수협 등)은 0.54등급 강등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위는 이러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2금융권에 대해서도 대출금리가 낮을수록 신용점수(등급) 하락폭이 완화되도록 CB사의 평가 모형을 개선했다. 저축은행권은 다음달 14일부터 바뀐 모형이 적용되고, 상호금융ㆍ보험ㆍ여신전문금융(카드 캐피털) 업권은 내년 6월 시행된다. 금융당국은 이를 통해 2금융권 이용자 62만명의 신용점수가 올라갈 것으로 보고 있다. 저축은행 이용자는 28만명의 신용점수가 올라가고 이 가운데 12만명은 1단계 상위 등급으로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개인신용 평가체계는 현행 등급제에서 점수제(1,000점 만점)로 단계적으로 전환된다. 신용 조건이 저마다 다른 개인들을 10개 부류(등급)로만 나누다 보니 세분화된 평가가 어려운 데다가 등급간 ‘절벽 효과’가 발생한다는 우려가 높기 때문이다. 가령 신용점수가 664점인 사람은 신용등급이 6등급(665~789)에 가깝지만 현행 평가체계상 7등급(600~664점)에 속하다 보니 대부분 금융기관에서 저신용자(7~10등급)로 분류돼 대출을 받을 수 없다. 금융위는 다음달부터 5개 시중은행(KB국민 신한 우리 하나 NH농협)에서 점수제를 우선 시행하고 2020년부터 전 금융권에 도입하기로 했다.
이날 금융위는 새해부터 시행하겠다고 발표해온 금융제도 변경 사항을 모아 ‘2019년 달라지는 금융제도’를 발표했다. 올해 말 일몰 예정이었던 ISA 가입기간은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으로 2021년으로 연장됐다. 최근 2개 연도(가입 당해 또는 직전 연도)에 신고 소득이 있어야 가입이 가능하던 조건도 내년부터는 4개 연도(가입 당해 또는 직전 3개 연도)로 완화된다. 또 대출자들은 인터넷, 모바일 등 비대면으로도 금리 인하를 신청할 수 있고, 대출 중도상환수수료가 면제되는 시점이 오면 문자메시지(SMS)를 통해 안내 받을 수 있다.
서민ㆍ자영업자를 위한 저금리 대출도 늘어난다. 기업은행은 자금난을 겪는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금리 연 2% 내외의 초저금리 대출 1조8,000억원과 카드매출 연계 대출 2,000억원을 공급한다. 제도권 대출이 거절돼 대부업체로 내몰리는 서민에게 연 10% 중후반대 금리로 공급되는 긴급생계대출과 대환대출은 2분기에 신설된다. 카드사를 통한 중금리 대출상품도 출시돼 연간 7조9,000억원 규모로 공급된다. 한편 은행권에 한해 가계부채 관리지표로 사용하고 있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이 2분기부터 2금융권으로 확대돼 가계대출이 한층 엄격해질 전망이다.
기업 투자 지원 프로그램도 새해부터 본격화된다. 산업은행과 기업은행이 중소ㆍ중견기업의 설비투자, 사업 재편, 환경ㆍ안전 관련 투자를 위해 향후 3년간 15조원을 지원하고, 창업ㆍ벤처기업이 크라우드펀딩으로 모집할 수 있는 자금도 1분기 중 기존 7억원에서 15억원까지 확대된다. 금융위 관계자는 “내년에는 생산적 금융을 통해 경제 개선을 뒷받침하고, 서민ㆍ자영업자를 위한 포용적 금융을 확대하는 데 주안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허경주 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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