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노동자 수급 어려워지자 연장근로 年 250→400시간으로
野ㆍ노조 “권리 침해하는 노예법”
유럽의 ‘리틀 푸틴’으로 불리는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가 자신의 정치적 트레이드마크였던 반(反) 이민 정책에 발목이 잡혀 집권 이후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이민 통제로 부족해진 노동력을 메우기 위해 노동자들의 연장 근로시간 확대 정책을 밀어붙이다 거센 국민적 반발에 직면한 것이다. 지리멸렬했던 야당도 똘똘 뭉쳐 정부 흔들기에 본격 나서면서 정국 혼란은 더욱 심화할 것이란 관측이다.
지난 12일 헝가리 집권여당 피데스는 연장 근로 허용시간을 연 250시간에서 연 400시간으로 확대하는 한편 연장근로 수당 지급도 현행 1년 이내에서 3년간 유예할 수 있는 내용의 노동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새 노동법은 내년 1월 1일부터 시행된다.
집권 여당은 연장 근로를 자발적으로 희망하는 노동자들의 이익을 보장하고, 특정 시기에 일이 몰리는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의 탄력적 인력 운용을 감안한 조치라고 법 개정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나 야당과 노동조합에선 노동자 권리를 심각하게 저해하는 ‘노예법’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헝가리를 비롯 폴란드, 체코, 슬로바키아 등 중부유럽 국가들에서 저임금 노동자는 경제를 지탱해 온 중심축이다. 독일 등 기술 선진국의 제조업 공장을 자국에 유치하는 대신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며 경제성장을 이뤘기 때문이다. 독일 BMW는 헝가리 동부 도시 데브레첸에 10억유로에 달하는 투자 계획을 밝힌 상태다.
하지만 헝가리의 고급 인력들이 처우가 나은 서유럽으로 대거 빠져 나가는 상황에서, 반 이민정책 때문에 외국인 노동자 수급이 어려워지면서 일손 부족 현상이 심각해진 것이다. 연장 근로시간 확대는 이를 해소하려는 고육책인 셈이다. 반면 다른 국가들은 이민자 수용에 유연한 태도를 보이며 위기를 극복하고 있다는 평가다. 반 이민 기조를 유지하던 폴란드조차 지난해 우크라이나 노동자를 대거 수용하며 대체 인력으로 활용했다.
‘노예법’ 반대로 촉발된 시위는 재임 8년째를 맞은 오르반 정부에 쌓인 불만이 폭발하면서 대규모 반(反) 정부 집회로 번질 태세다. 이들은 노동법 폐기 이외에도 사법부 독립 및 언론 자유 보장 등을 외치며 정부를 맹공하고 있다.
특히 시위 주도 세력이 이념과 정파를 초월했다는 점에서 폭발력은 더욱 커질 것이라는 예상이다. 당장 오르반에 반대하는 우파 연합에서 좌파 정당까지 야당들이 한데 뭉쳤고, 노조와 시민사회까지 가세했다. 정부는 헝가리 출신의 억만장자인 부호 조지 소로스가 시위대를 배후에서 부추기고 있다며 역공에 나섰으나 민심은 차갑다. 영국 경제지 이코노미스트는 “평범한 노동자들이 거리로 나오고, 야당도 단일대오로 대항하고 있다. 오르반에게는 매우 불안한 신호”라고 해석했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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