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김제시가 관내 중ㆍ고생 학력수준을 높이기 위해 설립한 지평선학당의 내년도 운영업체 선정을 위한 입찰 과정에서 법인등기부등본에 등재된 학원 본점과 지점의 실체가 없는 사실상 페이퍼컴퍼니(서류상회사)로 드러난 영세 교육업체를 1순위로 선정한 뒤 위탁 계약을 추진해 논란이 일고 있다.
김제시는 지난달 ‘2019년 지평선학당 교육프로그램 운영’을 위한 주관업체 공개모집 공고를 내고 입찰서를 받았다. 학생들 진학지도 운영 등에 총 9억원이 투입되는 사업으로, 응모자격은 중ㆍ고생을 대상으로 한 입시교육과 관련된 기본 시설과 강사진을 보유한 전국 규모의 입시전문학원 등이다. 시는 지난 10일 심사를 통해 서울에 본점을 둔 입시컨설팅업체 A사를 선정했다.
하지만 취재결과 A사가 입찰 당시 김제시에 제출한 법인등기부등본에 서울시 강남구 대치동의 5층 건물로 등재된 입시학원 본점과 바로 인근 4층 빌딩에 입주한 것으로 나타난 지점은 시설이 존재하지 않는 유령사무실로 확인됐다. 등기부등본 상에 주소지만 올려놓은 전형적인 페이퍼컴퍼니로 드러난 것이다.
특히 A사는 업체 선정 심사 당일인 10일 돌연 본점과 지점 주소, 대표이사 및 사내이사, 감사 등을 변경했다. 이마저도 이전된 삼성동 본점과 대치동 지점의 사무실과 직원은 물론 간판이나 영업활동이 전혀 없었다. A사가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입시학원은 입찰이 끝난 뒤 이날 뒤늦게 등재한 경기도 성남의 소규모 학원 1곳이 유일했다.
이처럼 전국 규모도 아닌데다 본점과 일부 지점이 존재하지 않는 사실상의 페이퍼컴퍼니 수준의 영세업체가 1순위에 선정되면서 부실한 심사와 불공정 시비가 제기되고 있다. 실제 연간 매출액 6억원 안팎의 실적을 낸 A사는 매출액 200억~2,000억원대의 국내 대형 유명 입시학원 4곳을 제치고 최고 평가를 받았다. 재무구조나 공교육 실적, 학원시설, 강사진 확보 등에서 한참 뒤졌지만 높은 점수를 받은 것이다.
이에 대해 A사 대표는 “현 등기부등본에 등재된 본점과 지점 주소지에 개설된 학원이 없는 것은 맞다”면서도 “강남 본점은 임시로 계약한데다 서울에 주소가 있고 현재 학원은 성남에 있어 세무서와 교육청 등 업무 관할지역이 달라 번거로움이 있어 법인등기를 늦게 진행했다”고 군색한 답변을 내놨다. 이어 “지난해 전국 지자체에서 30억원에 가까운 공교육 실적을 내 프로그램 운영에는 문제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김제시는 심사과정에 A사의 실제 학원 존재 여부나 시설 규모조차 파악을 못한 상황에서 업체를 선정해 학부모들의 우려가 높다. 지평선학당에 선발된 일부 학생은 인근 전주의 고교로 빠져나가는 등 술렁이고 있다. 한 학부모는 “시설조차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실체 없는 학원에 아이를 맡길 수 없다”며 “업체 선정 과정에 대한 즉각적인 감사를 통해 진상을 철저히 밝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제시는 입찰 당시 A사가 제출했던 법인등기부등본 서류 검증을 하지 않은데다 학원 실체나 규모에 대해선 답변을 일절 거부하고 있다. 김제사랑장학재단 이사장인 박준배 시장도 모르쇠로 일관해 불신을 키우고 있다. 김제시 관계자는 “A사 본점의 존재 여부나 시설규모는 답변하지 않겠다”며 “다만 성남교육청에서 발급한 학원등록증이 제출돼 서류상으로만 존재한 학원은 아니며 법적으로도 문제될 게 없다”고 말했다.
하태민 기자 ham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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