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단보도에 나란히 선 두 사람의 발처럼, 올해도 꼭 나흘이 남았네요. 한 해를 정리하다보니, 올해 나는 주위에 어떤 사람이었나, 자꾸 자문하게 되네요.
한 사람의 생애를 간략하게 적은 것이 약전(略傳)이지요. 내밀한 부분까지 함께 겪은 가까운 사람만이 쓸 수 있고, 그래서 몇몇 문장으로 한 사람을 가감 없이 알게 되는 것이 약전이지요. ‘그’라고 불리는 이 사람을 볼까요. 이 사람은 언덕의 풀처럼 자연스럽고 조용조용하고 다감했을 것 같아요. 높은 이상을 가졌고, 연하고 섬세한 사람이었을 것 같아요. 갓 난 달걀과 마악 짜낸 염소젖이 생전에 그가 식구들에게 건네준 전부였다지요. 이 사람이 나평강씨라지요.
얼마간의 수채화 같은, 얼핏 얼핏 현실의 균열이 보이는 듯도 한 이 시를 읽고, 이름도 시적인 나평강씨는 누구인가, 궁금해졌지요. 그래서 찾아보았지요. 1960년대 신앙공동체에서 한 여자와 한 남자가 만났다고, 여자는 보육원 고아들을 돌보고 남편은 닭을 키우며 글을 썼다고, 둘 사이에 난 아기는 얼룩염소의 젖을 먹고 자랐는데, 그 아기가 바로 이 시를 쓴 시인이었다고, 어느 글에 나희덕 시인이 밝히고 있네요. 과거형 어미, 3인칭의 시가, 마지막 행에 와서 현재형 어미, 1인칭으로 바뀌는 이유를 알게 되는 순간이었지요.
아버지가 건넨 온기로 딸은 시를 쓰는 사람이 되어 아버지의 약전을 썼네요. 그보다 따뜻한 것을 알지 못한다. 이런 한 줄로 기억되는 사람이면 좋겠어요. 갓 난 달걀, 마악 짜낸 염소젖…… 뜨겁지 않은, 자연스러운 온기를 소중하게 건네는 사람. 새해에는 이런 손을 닮아 가면 좋겠어요.
이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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