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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내 부조리 제보창구 ‘대나무숲’, 교수ㆍ선배 “누가 찔렀나” 색출에 휘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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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내 부조리 제보창구 ‘대나무숲’, 교수ㆍ선배 “누가 찔렀나” 색출에 휘청

입력
2018.12.28 04:40
수정
2018.12.28 08:02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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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보자인 척 제보자 알아내려는 시도 예시. 그래픽=김경진기자
제보자인 척 제보자 알아내려는 시도 예시. 그래픽=김경진기자

지난달 경기 한 대학 항공운항과 내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글이 페이스북 ‘캠퍼스 대나무숲 텐덤’ 페이지에 올라왔다. 반응은 뜨거웠다. 선배들의 과한 군기잡기, 인권침해에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사용자들은 분노했다. 학과 부조리를 알린 제보자의 신원은 철저히 숨겨졌지만 내용만큼은 사실이었다.

학과 내 분위기는 험악해졌다. 선배들의 ‘색출 작업’ 지시가 떨어졌기 때문. 후배들은 대나무숲 운영자에게 제보자인 척 ‘정확히 뭐라고 보냈는지 헷갈려서 그러는데 채팅방 좀 캡처해서 보내줄 수 있느냐’는 메시지를 보냈다. 다행히 대나무숲 운영자는 대응하지 않았지만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운영자에게 메시지를 보낸 이들만 20명에 달했고, 결국 제보자는 색출 압박에 못 이겨 글을 내리고 말았다.

대학생 사이에서 명실상부 제보 창구로 자리잡은 대나무숲 등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제보자 색출작업이 비일비재해져 비상이다. 학생회, 선배, 교수 등 대학 내에서 견제 받지 않는 세력과 관련해 유일하게 ‘쓴소리’가 터져 나오던 공간이 위축될까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대나무숲은 페이스북 등 SNS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페이지로, 이름은 ‘삼국유사’의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이야기에서 따왔다. ‘개강 너무 싫다’ 같은 혼잣말에 가까운 글부터 학내 부조리를 폭로하는 글까지 다양한 주장이 올라오고 있다.

운영자에게 글을 보내면 익명으로 대나무숲 페이지에 올라가는 식이다. 이 과정에서 대나무숲 운영자가 글을 보내는 사람의 이름 등 신상을 알게 되지만, 외부 유출은 절대 금지가 원칙이다. 그런데 일부 대학 대나무숲 운영자들이 제보자인양 ‘제보 내용을 다시 보내달라’는 거짓 요구에 속거나, 가해자로 등장한 당사자들이 운영자 지인에게 부탁하는 등 제보자가 노출된 사례가 여럿 있었다. 완벽한 비밀 보장이 이뤄지지 않는 셈이다.

제보자 색출작업은 그 허점을 파고든다. 특히 학과 평가를 할 정도로 커진 대나무숲 커뮤니티의 경우 학과에 대한 부정적인 내용이 조금이라도 담긴 글이 올라오면 글 작성자를 알아내려는 움직임이 노골적이다.

실제 올해 서울 한 대학 학생회에서 성추행 사건을 은폐하려 했다는 사실이 대나무숲을 통해 알려지자, 해당 학생회 관계자들은 대나무숲 운영자에게 각종 협박성 문구가 담긴 메시지를 보내 제보자를 알아내려 했다. 최근 대전 한 대학에서는 교수가 학생들에게 “나와 등산을 해야 점수를 잘 준다”는 등 갑(甲)질을 한 사실이 폭로되자, 제보자 색출을 위해 해당 교수가 온라인 커뮤니티를 모욕죄로 고소해 압박하기도 했다.

대학 통합 대나무숲을 운영 중인 유원일 애드캠퍼스 대표는 “대나무숲과 온라인 커뮤니티는 익명 보장이 장점인 곳인데 글쓴이를 찾아내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얘기만으로도 제보를 고민하는 학생들이 있다”라며 “현재로선 저런 제보자 색출 시도가 문제라는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정도가 고작”이라고 말했다.

최근 한 대학 항공운항과 '군기잡기' 고발 글이 '대나무숲 텐덤' 페이지에 올라오자, 해당 학과 학생들이 제보자를 찾기 위해 제보자인 척 보낸 메시지들. 애드캠퍼스 제공
최근 한 대학 항공운항과 '군기잡기' 고발 글이 '대나무숲 텐덤' 페이지에 올라오자, 해당 학과 학생들이 제보자를 찾기 위해 제보자인 척 보낸 메시지들. 애드캠퍼스 제공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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