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역사책을 열어보고, 나라가 망해가던 무렵의 순국열사들의 삶을 살피다 보면 어떤 경우 가슴이 터지려는 분노와 울분을 금할 수 없을 때가 많다. 어찌하여 그렇게 어린 나이에 우주보다 더 귀한 목숨을 당당하게 버리면서 나라를 위해서 죽어갈 수 있었던가에 대한 감격스러운 생각 때문이다. 겨우 18세의 꽃다운 여성의 몸으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던 유관순 열사, 25세의 팔팔한 청년으로 기꺼이 생명을 바친 매헌 윤봉길 의사, 31세의 젊은이로 이등박문을 죽이고 여한 없이 순국한 안중근 의사, 일본 천왕을 암살하려다가 나라에 목숨을 바친 32세의 이봉창 의사… 새파란 청춘으로 나라를 위해 죽음을 택했던 그들은 정말로 위대한 젊음이었다.

역사책을 넘겨 더 옛날의 시대로 올라가 보자. 사육신도 뜨거운 젊음의 희생자들이었지만, 삼학사(三學士)에 이르면 눈물 없이는 읽을 수 없는 기막힌 사연들이 나열되어 있다. 화포(花浦) 홍익한(1586∼1637)은 51세, 임계(林溪) 윤집(1606∼1637)은 31세, 추담(秋潭) 오달제(1609∼1637)는 겨우 28세로 나라에 목숨을 바친 분들이었다. 오달제의 사연이 바로 눈물 없이는 넘어갈 수 없는 그런 대목이다. 명문의 집안에서 태어나 19세에 진사가 되고, 26세에 문과에 장원하여 세월만 지나면 저절로 판서에 오르고 정승에 올라 벼슬과 명예의 최고 절정에 이를 수 있는 조건이 갖춰졌지만, 그는 겨우 홍문관 부교리(副校理)라는 학사(學士)의 지위에서 병자호란을 맞아 척화파의 상징적 인물로 지목되어 심양으로 끌려가 어떤 감언이설에도 굽히지 않고 선배 홍익한·윤집과 함께 장렬한 죽음으로 국은(國恩)에 보답하고 말았다.

역사란 그런 것인가. 지조와 절개는 헌신짝처럼 버리고, 권력에 빌붙고 세력에 아부하면서 70,80이 넘도록 온갖 못된 일만 하던 사람도 목숨이 아깝다면서 비굴한 삶으로 살아가는데, 어찌하여 애국선열들은 그렇게 짧은 삶에도 추호의 두려운 기색도 없이 그렇게 장렬한 죽음을 맞을 수 있었을 것인가. 이런 대목에서 글자나 읽은 사람으로서 가슴이 출렁거리지 않을 수 없다. 오달제가 청나라에 죄인으로 끌려가면서 어머니에게 형님에게 아내에게 바친 3편의 시가 전해지고 있다. 3편 모두 비가(悲歌)로서 우리의 심금을 울려주지 않은 것이 없지만 유독 아내에게 바친 28세 청년의 시 한 편은 더욱 우리의 가슴을 울리기에 넉넉하다.

부부의 금슬 은혜와 정이 무거운 건데(琴瑟恩情重)

서로 만난 지 두 돌도 못되었네(相逢未二朞)

이제 만 리의 이별을 맞았으니(今成萬里別)

100년 살자던 기약 그냥 어겼구려(虛負百年期)

지역이 멀어 편지 부치기 어렵고(地闊書難寄)

산맥이 길어 꿈에도 만나지 못하리(山長夢亦遲)

내 목숨 점칠 수 없으니(吾生未可卜)

모름지기 뱃속 아이나 보호해 주시오(須護腹中兒)

‘기내(寄內)’는 아내에게 바치는 시의 제목이다. 아마 조선과 청국의 국경 근처에서 슬프게 읊었던 시로 여겨지는데 눈물 없이는 읽을 수 없는 시가 아닌가.

오달제는 첫 부인과는 결혼 뒤 오래지 않아 사별하고 두 번째 부인과 만난 지 두 돌이 지나지 않아 척화신의 볼모로 청국으로 끌려갔다. 남편과 아내의 은혜가 어떤 것인데 100년을 함께 살자고 굳은 약속을 해놓고 겨우 2년이 못되어 영원한 이별을 맞게 되었으니, 그런 슬픔을 감히 쉽게 견딜 수 있겠는가. 살아 있는 동안 편지라도 오고가야 했건만 조선과 청국, 거리가 얼마나 멀었으며, 꿈에라도 서로의 그리운 정을 나눌 수 있어야 했건만 첩첩이 가로놓인 그 산맥들이 가로막아 꿈엔들 보이기라도 했겠는가. 그래도 아내의 뱃속에는 꿈틀거리는 아이가 있었던 것도 다행한 일. 살아서 돌아올 기약은 없으니, 제발 뱃속의 아이라도 잘 키워달라는 부탁이 모두의 눈물샘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청나라에서 그들 척화신들을 달래려고 청나라에 승복만 해준다면 그곳으로 가족을 데리고 와서 함께 살게 해주겠다고 온갖 설득을 했지만 조선의 신하로서의 의리, 민족정기를 지켜내야 한다는 철석같은 지조로 그들은 나라에 생명을 바치는 의기를 세우고 말았다.

사육신이나 삼학사 같은 의인들의 의혼(義魂)을 배우기 위해 역사를 공부하는 것 아닌가. 노욕에 사로잡혀 80이 넘는 고령에도 온갖 아부와 아양을 떨면서 독재자들에게 부역하던 그 많은 간신배들이 아직도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세상이 오늘이다. 나라를 팔아먹어도 자신의 부귀, 영화만 누리면 그만이라고 온갖 악행을 저질렀던 친일파들, 유신을 선포하여 모든 국민의 입과 귀를 가로막아 국민 전체가 노예로 살아갈 수밖에 없던 시절 독재자에게 빌붙어 고관대작으로 온갖 호강을 누렸던 사람들. 그들은 유관순ㆍ윤봉길ㆍ안중근ㆍ이봉창ㆍ사육신ㆍ3학사들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을 것인가. 얼굴에 철판을 깔고 예의와 염치는 마스크로 가리고 살았던 사람이 아니겠는가. 우리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아직도 떵떵거리고 큰소리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한다. 어떤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을 테니 “빨리 죽여주라!”라고 외치던 오달제의 무서운 의혼이 염치없는 지금의 세상에 경종이나 울려주기를 희망해 본다.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ㆍ우석대 석좌교수

공감은 비로그인 상태에서도 가능합니다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