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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분쟁지역] 선거로 정권 교체ㆍ경제 발전... 내전 겪은 아프리카 국가에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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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분쟁지역] 선거로 정권 교체ㆍ경제 발전... 내전 겪은 아프리카 국가에 희망

입력
2018.12.28 18:00
수정
2018.12.28 18:36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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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베리아 내전 그 이후

지난 2003년 7월 라이베리아 몬로비아에서 정부군이 반군에게 총을 겨누고 있다. 몬로비아=AP 연합뉴스
지난 2003년 7월 라이베리아 몬로비아에서 정부군이 반군에게 총을 겨누고 있다. 몬로비아=AP 연합뉴스

노예무역으로 인해 아프리카인들은 세계 역사상 유례가 없는 대규모의 강제 이주와 정착을 해야만 했다. 노예무역이 폐지된 이후 미국에서는 1817년 미국식민협회(ACS)가 조직돼 해방된 노예를 아프리카에 재정착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이게 됐다. 그 결과 1821년 라이베리아를 만들었고 수도의 명칭은 미국 제5대 대통령인 제임스 몬로에서 딴 몬로비아(Monrovia)라고 정했다. 이후 미국에서 풀려난 해방 노예와 미 해군이 사로잡은 노예선의 노예들이 라이베리아에 주로 정착했으며 1847년 미국으로부터 독립을 선포하고 공화국이 됐다.

라이베리아에 이주한 미국계 라이베리아인은 미국 문화를 따르며 자신들은 아프리카인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했다. 자신들은 문명화된 사람들이며 기독교도로서 원주민과는 차이가 있다고 여겼다. 이들은 미국 남부 양식의 집을 지었고 모자와 연미복의 정장을 즐겨 입었으며 자식들은 주로 미국에서 공부를 시켰다. 미국계 라이베리아인은 권력과 부를 독점하였고 백인 식민주의자들처럼 원주민들을 억압함으로써 내전과 분쟁의 씨앗을 심었다.

이러한 상황은 1822년 해방 노예들이 이주를 시작했을 때부터 1980년 원주민 군인 출신인 사무엘 도 상사가 라이베리아국군(AFL)을 이끌고 쿠데타를 일으켜 윌리엄 톨버트 대통령을 축출할 때까지 약 150년 이상 지속되었다. 도 상사는 쿠데타로 권력을 잡았지만 최초의 원주민 출신이었기 때문에 초기에는 많은 원주민의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1985년 대통령 선거를 부정선거로 치르며 라이베리아 민주화에 대한 희망을 저버렸다. 그리고 반대세력들이 규합되면서 라이베리아는 길고 잔혹한 내전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반군을 이끌었던 대표적 인물인 찰스 테일러는 미국계 라이베리아인으로 미국에서 대학을 나왔으며 라이베리아의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을 주장하며 시위에 참여했다. 테일러는 도의 정권에서 조달청장을 맡았으나 횡령혐의로 미국으로 도피했고 1984년 미연방수사국(FBI)에 체포되어 수감됐다. 그러나 그는 1985년 탈옥하게 되는데, 탈옥의 배후에는 부패하고 폭력적이었던 도 정권을 전복시키는 역할을 테일러에게 맡기려는 미국 정부의 의도가 있었다는 음모론이 나돌기도 했다.

테일러는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 코트디부아르의 펠릭스 우푸에부아니, 부르키나파소의 블레즈 콩파오레 등 독재자뿐만 아니라 경제적 이익을 바라던 국내외 자본가들의 지원을 받고 있었다. 그가 이웃국가인 시에라리온에서 반군 혁명연합전선(RUF)을 이끌던 포다이 산코와 결탁하여 라이베리아애국전선(NPFL)을 결성하고, 1989년 라이베리아에 군사 공격을 개시함으로써 전면적인 내전이 발생했다. 프린스 존슨은 이 과정에서 1990년 NPFL에서 독립해 라이베리아독립구국전선(INPFL)을 결성하였고 또 다른 세력으로 성장하였다. 내전의 상황은 도가 이끄는 AFL이 몬로비아의 일부를, 존슨이 이끄는 INPFL이 몬로비아의 나머지 지역과 항구를, 테일러가 이끄는 NPFL이 나머지 지역을 장악하는 식으로 흘러가는데, 1996년 내전이 공식 종료될 때까지 테일러는 라이베리아 대부분 지역을 장악해 나가면서 실질적인 지배자로 떠올랐다.

라이베리아 내전 당시 소년병이 동원되면서 국제적 비난이 일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라이베리아 내전 당시 소년병이 동원되면서 국제적 비난이 일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특히 라이베리아 내전은 소년병이 이용되면서 심각한 인권문제를 야기했다. 또 이 내전은 주변국가의 개입으로 지역분쟁으로 발전하여 지역안보에 위험을 초래했다. 그러나 유엔을 비롯해 아프리카연합(AU)도, 미국도 개입할 의사가 없자, 서아프리카경제협력체(ECOWAS)가 1990년 8월 평화유지군인 경제공동체 감시단(ECOMOG)을 파견하였고 결국 1996년 평화협정을 이끌어 내 제1차 내전이 막을 내렸다.

1997년 비교적 공정하게 실시된 선거에서 군사지도자인 테일러가 75% 이상을 득표하면서 대통령에 당선되자 국제사회는 난감한 상황에 빠졌다. 이후 두 번이나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노벨평화상 수상자였던 엘렌 존슨 설리프는 당시 테일러와의 대결에서 전체 표의 10%밖에 얻지 못했다. 오랜 내전에 지친 라이베리아 국민들은 테일러를 선택함으로써 민주주의보다는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한 안정적 통치를 택한 것이다. 테일러는 강한 카리스마를 가진 인물이었지만 라이베리아를 회복시킬 만한 훌륭한 인물은 결코 아니었다. 그의 집권기에 살인과 폭력적인 사건이 연이어 발생했고 이웃국가인 시에라리온의 반군을 지원하여 국제분쟁을 야기했다. 아프리카의 다른 독재자들과 마찬가지로 부정부패와 재산을 축적하는데도 능했다. 테일러를 타도하기 위해 도 대통령이 속했던 크란족을 비롯한 반군세력들이 1999년 시에라리온 프리타운에서 세력을 규합해 '화해와 민주주의를 위한 라이베리아연합(LURD)’을 결성하고 시에라리온과 기니를 거점으로 미국과 영국의 군사·경제적 지원을 받으며 테일러를 공격했다. 이렇게 제2차 내전이 시작되었다. 테일러는 시에라리온 반군단체인 RUF를 지원하여 기니의 LURD를 공격하도록 지원했다. RUF는 극악무도한 방법으로 반인류적 범죄를 저질러 악명이 높았고, 인도적 피해는 매우 심각한 수준에 이른다. 하지만 국제사회의 노력과 LURD의 공격으로 2003년 테일러 정권은 결국 무너지고 전범재판을 받게 되었다. 테일러는 2012년 5월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국제형사재판소(ICC) 시에라리온 특별법정(SCSL)에서 시에라리온 반군에 무기를 공급하여 내전을 사주하고 극악무도한 반인륜 범죄와 전쟁범죄를 방조한 죄로 징역 50년을 선고받았다.

지난 2003년 라이베리아 거주민들이 수도 몬로비아의 반군 장악 지역에서 식량을 약탈하고 있다. 몬로비아=AP 연합뉴스
지난 2003년 라이베리아 거주민들이 수도 몬로비아의 반군 장악 지역에서 식량을 약탈하고 있다. 몬로비아=AP 연합뉴스
라이베리아의 수도 몬로비아 남쪽의 한 마을에서 지난 2005년 주민들이 대통령 선거일을 맞아 투표를 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14년 동안 내전을 겪으면서 세계 최빈국으로 전락했으며 독재자 찰스 테일러가 2003년 축출된 이후 첫 민주적 대선을 치르게 됐다. 몬로비아=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라이베리아의 수도 몬로비아 남쪽의 한 마을에서 지난 2005년 주민들이 대통령 선거일을 맞아 투표를 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14년 동안 내전을 겪으면서 세계 최빈국으로 전락했으며 독재자 찰스 테일러가 2003년 축출된 이후 첫 민주적 대선을 치르게 됐다. 몬로비아=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라이베리아는 내전 종식 이후 여성인 엘렌 존슨 설리프가 2005년과 2012년 연이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는 내전 이후 라이베리아의 평화건설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2011년 라이베리아의 활동가인 레이마 가보위와 예멘의 인권운동가 타워크쿨 카르만과 함께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아프리카 힐러리’, ‘철의 여인’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기도 한 설리프는 재임기간 동안 49억달러에 달하던 부채를 모두 탕감했고 미국 등 서방의 원조를 이끌어내 연평균 약 8%의 성장을 이끌었다.

엘렌 존슨 설리프 전 라이베리아 대통령이 지난 2006년 1월 대통령 취임식에서 선서를 하고 있다. 몬로비아=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엘렌 존슨 설리프 전 라이베리아 대통령이 지난 2006년 1월 대통령 취임식에서 선서를 하고 있다. 몬로비아=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조지 웨아 라이베리아 대통령.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조지 웨아 라이베리아 대통령.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또한 1990년대 '흑표범'으로 불리던 세계적인 축구스타 조지 웨아가 2017년 12월 라이베리아 대통령선거 결선투표에서 61.5% 득표율로 승리하여 대통령에 당선되어 민주주의가 정착되고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빈민가 출신인 조지 웨아는 여전히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내전의 상처를 씻어내고 라이베리아가 직면한 높은 실업률, 기아와 빈곤, 범죄를 해결해야 하는 문제를 안고 있지만, 민주주의의 정착과 경제적 발전을 이루고 있다.

라이베리아 내전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첫째, ECOWAS는 서아프리카 지역의 경제협력체인데도 불구하고 지역의 역내 안보를 위해 평화유지군을 파병하여 라이베리아 내전을 종식시키고 지역의 분쟁확대를 막아 ‘아프리카 문제는 아프리카인이 해결한다’는 희망을 주었다. 둘째, 전직 국가 정상이 국제 재판소에서 유죄를 받은 것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전범을 처벌하기 위해 열렸던 뉘른베르크 재판 이후 최초라는 점에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결국 테일러 전 대통령에게 중형을 내림으로써 정의를 구현하는 데 기여한 측면이 있다. 셋째, 2003년부터 주둔했던 유엔 라이베리아임무단(UNMIL)이 2018년 3월 철수하였으며 이후 정치적 안정을 유지하고 있다. 라이베리아는 내전 이후 선거를 통한 평화적인 정권교체와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어 내전을 겪은 아프리카 국가의 발전 사례로 평가할 수 있다.

김광수 한국외대 아프리카연구소 HK교수

김광수 한국외대 아프리카연구소 HK 교수
김광수 한국외대 아프리카연구소 HK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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