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만 대한상의 회장, 송년 인터뷰서 사회 각층에 쓴소리
“누구도 문제 해결 위해 십자가 지려하지 않아”
“성장ㆍ분배 이분법 등 편가르기 대신 갈등 막을 근본 치유 나서야”

“장기 하락 추세의 우리 경제는 점점 뜨거워지는 냄비 속 개구리와 비슷합니다. 지금까지는 땀을 뻘뻘 흘리는 수준이었다면 이제 곧 화상이 생기기 시작할 겁니다. 정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현 정부 들어 재계를 대표해 목소리를 키우고 있는 대한상공회의소 박용만 회장이 사회 각층을 향해 쓴소리를 날렸다. 구조적으로 활력을 잃어가는 경제와 갈수록 심해지는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려면 편 가르기식 이분법에서 벗어나 누군가 십자가를 지고 갈등의 근본 원인을 종합적으로 치유하는 데 나서야 한다는 충언이다.
박 회장은 지난 24일 출입기자단과 가진 송년 인터뷰에서 우선 각종 문제에 대한 ‘전체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 경제의 구조적 문제에 대해 원인도 해법도 대부분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다만 매번 단기 이슈에 매몰되거나 이해관계라는 장애물에 막혀 진척이 안 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일자리, 신산업 등 문제 해결을 촉구하면서 정작 이를 위해 꼭 필요한 규제개혁과 사회안전망 강화는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어느 한 단면만 봐서는 해결책이 나오지 않는다”고 씁쓸해했다. 그는 “고질병을 고치려면 링거를 맞거나 특정 부위 수술뿐 아니라 식단조절, 운동 등 종합처방이 함께 있어야 한다”며 “그런 면에서 ‘성장이냐, 분배냐’ 식의 이분법은 현 상황에 맞는 논리가 아니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최근 우리 경제가 겪고 있는 구조적 어려움이 “어느 한 정부의 책임은 아니다”고 평가했다. 고도성장이 꺾였는데도, 과거 모델을 제때 바꾸지 못한 결과라는 것이다. 그는 해결책으로 평소 지론인 ‘규제개혁’을 재차 강조했다.
그는 “20대 국회 들어 기업 관련 법안 1,500여개가 발의됐는데, 그 중 833건이 규제 강화 법안”이라며 “기존 주력산업의 효율은 점점 떨어지는데, 각종 규제로 신산업의 진출마저 막으면 성장을 등에 짊어지고 있는 사람들의 등골만 부러진다”고 비유했다. 지금까지는 냄비 속 개구리가 땀을 흘리는 수준에서 버텼지만, 이젠 화상을 입는 단계로 넘어가는 만큼 ‘파격적인 규제개혁’을 더 늦기 전에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 회장은 최근 카풀 서비스 찬반 논란, 협력이익 공유제 등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갈등과 혼란을 “선진국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겪는 일”이라면서도 “이런 갈등이 좀처럼 해결되지 않는 것은 각 진영에서 앞선 선진국의 경험을 인용하면서도 모두가 자기주장에 유리한 것만 강조하며, 타협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라고 답답해했다.
그는 정부와 국회의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했다. 그는 “최근 갈등이 빈발하는 곳이 운수, 소매, 음식, 숙박 등 4대 생활서비스업”이라며 “영세상인이 유독 많고, 많은 사람이 자주 이용하는 서비스이기 때문인데 그만큼 해법을 찾기 쉽지 않다”고 진단했다.
결국 행정력과 입법권을 가진 정부와 국회가 ‘갈등조정 메커니즘’을 만들어 개입하되 “각 진영이 기득권을 내려놓고, 스스로 져야 할 십자가는 감당하는 모습을 보이면 아무리 첨예하게 대립하는 이해관계도 해결점을 찾을 수 있다”고 그는 조언했다.
박 회장은 최근 난항을 겪고 있는 ‘광주형 일자리’에 “상당히 좋은 모델”이라며 “현대차와 민주노총 간의 이해충돌 때문에 광주에서 적용이 어렵다면 다른 지역, 다른 산업에라도 시도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용식 기자 jawoh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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