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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 인정 받으러… 순천 사는데 서울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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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 인정 받으러… 순천 사는데 서울 갑니다

입력
2018.12.27 04:40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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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지난 2009년과 2010년 제주의료원에서 불규칙한 교대 근무 및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다 집단 유산을 한 간호사들, 그리고 지난해 전남 순천에서 20년 넘게 거리 청소를 하다가 폐암을 진단받은 환경미화원들. 이들의 ‘산업재해’ 인정 여부를 가린 곳은 제주도 순천도 아닌 서울이었다.

이들만이 아니다. 26일 신창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올해 6월까지 서울 질판위에서 다뤘던 심의의 절반 이상인 464건(55.4%)이 수도권이 아닌 지방에 거주하는 신청인들의 사건으로 나타났다. 왜 이들은 굳이 산재 인정을 받기 위해 서울을 찾아야 하는 걸까.

국내에는 권역별로 서울을 비롯해 부산, 대구, 경인, 광주, 대전까지 총 6개의 질판위가 있다. 산재보상보험법에 따른 산재는 업무상사고와 업무상질병으로 나눠지는데, 업무상질병은 일부를 제외하고는 원칙적으로 근로복지공단 산하 질판위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 이 과정에서 일반 질병은 근무지의 관할구역에 해당하는 질판위에서 처리를 하지만 ‘특수 상병’의 경우엔 서울 질판위에 심의를 의뢰한다. 암과 정신건강의학과, 산부인과, 안과, 이비인후과, 피부과, 비뇨기과의 진료과목 등이 해당한다. 근로복지공단 관계자는 “한꺼번에 여러 질병을 동시에 심의하던 관행에서 벗어나 전문성과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한 것”이라며 “지방의 경우 판정위원으로 섭외할 수 있는 의사의 수 자체가 부족하다는 문제도 있어 서울에서 통합 심의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저작권 한국일보}서울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박구원 기자/2018-12-26(한국일보)
{저작권 한국일보}서울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박구원 기자/2018-12-26(한국일보)

그러나 암이나 정신질환 등을 앓는 산재 신청자들의 입장에서는 거주지에서 서울까지 가는 일이 몹시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다. 물론 산재를 신청한 본인이 아니더라도 노무사나 주치의 등이 질판위의 심의회의에 대신 들어갈 수는 있지만, 혹시 산재 인정 여부에 영향을 미칠까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울산에서 용접공으로 수십 년을 근무하다 폐암이 발생해 산재 신청을 했던 A씨의 유족들은 “폐암 말기로 판정이 나서 호스피스 병원으로 옮길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서울까지 가서 직접 환자의 상태를 보여줬다”며 “그래도 본인이 가서 이야기를 하는 게 낫지 않겠나 싶어 무리를 했다”고 털어놨다. 산재 신청 절차를 대리하는 노무사들도 이를 독려한다. 조윤희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법률원 노무사는 “본인의 참여가 산재 인정 여부를 좌우한다고 보긴 어렵지만, 되도록이면 5분에서 10분 정도라도 직접 심의회의에 나가서 얘기를 하라고 조언하는 편”이라고 했다. 실제 2014년~2018년 6월 기준 신청인이 질판위에서 직접 의견 진술을 한 경우의 인정률(54.5%)은 하지 않았을 때(46.2%)보다 높았다.

노동계 안팎에선 서울에서만 전문적인 심사가 가능하다고 보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신창현 의원은 "지방 의료진도 충분히 전문적, 체계적인 재해심사를 할 수 있다"며 "가뜩이나 몸이 불편한 산재 신청인에게 효율을 이유로 심사를 서울에서만 받도록 하는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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