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는 밝고 명랑하지 않아요. 색깔이 무척 우울한 시대입니다. 천재들이 부유한 사람들의 풍족한 후원을 받으면서 자신들의 천재성을 꽃피운, 그런 아름다운 시대가 아닙니다.”
26일 서울 종로구 한 빌딩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툭 던진 화두다. 간담회는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난처한) 미술이야기 5 – 이탈리아 르네상스 문명과 미술’편 출간 기념으로 마련된 자리다. ‘난처한’은 미술 입문자를 위한 안내서를 자처한 시리즈물. 양 교수의 세부 전공이 르네상스인 만큼 이번 책은 난처한 시리즈 가운데 가장 힘을 준 책이기도 하다. 르네상스 시기는 5,6,7 세 권 분량으로 다룰 예정이다. 5권은 그 도입부 격으로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의 성립 과정, 피렌체의 르네상스, 메디치 가문 등 르네상스 미술의 후원자들을 재조명한다.
르네상스라면 예술사의 정점 가운데 하나이니까, 몹시 화려한 시대 아니었을까. 양 교수는 정반대 이야기를 했다. “르네상스는 엄청난 재난과 위기 속에서 얻어낸 겁니다. 르네상스 직전인 1333년에도 대홍수가 있었어요. 건물 안 3~6m까지 물이 차 올라서 수천 명이 죽었습니다. 그 무렵 흑사병이 창궐할 때는 전 인구의 60% 이상이 죽었고 경제는 붕괴됐습니다. 그 위기 속에서 다시 일어서기 위해 노력하는 게 바로 르네상스입니다.”
그래서 르네상스기 대활약을 펼친 예술가들은 거의 대부분 변두리 인생들이었다. 경계지대에 놓여 있던 사람들이 혹독한 충격에 맞닥뜨려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발버둥 친 결과가 르네상스였다는 얘기다. 가령 르네상스기 최고의 스타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일거리를 못 찾아 헤매던 부랑아 같은 신세였고, 원근법 이론을 정립한 알베르티는 사생아였다는 식이다.
양 교수는 “중세 신분사회에서 기회를 얻을 수 없었던, 한번도 주류에 들 수 없었던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당대 최고의 스타 작가 위치에서 르네상스를 주도했다기보다 불우한 환경에 맞서며 새로운 사조를 만든 작가들이란 설명이다. ‘갈등하는 인간이 세계를 바꾸다’라는 이번 책의 부제 자체가 “이단, 주변인 같은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 끊임없이 도전한 결과가 바로 르네상스”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셈이다.
난처한 시리즈를 시작한 뒤 TV 강연에도 나서는 등 양 교수는 서양미술사를 대중에게 널리 알리는 데 힘쓰고 있다. 이는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고 싶다는 뜻 때문이다. 양 교수는 “우리나라 사람들 유럽에 정말 많이 가는데, 가서 미술작품 하나를 보더라도 유럽 문화의 정수를 느낄 수 있도록 해 주고 싶었다”면서 “직접적으로 도움이 됐다는 평, 아니면 가서 실제 보니 이러저러하더라는 피드백을 많이 받고 싶다”고 말했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김진주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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