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는 지난 6월 말로만 듣던 ‘제주 한달살기’를 경험하기 위해 숙박업체에 예약을 하고 선금 50만원을 입금했다가 황당한 일을 겪었다. 개인 사정으로 당초 계약했던 9월에는 제주로 내려갈 수 없어 8월 중순쯤 업체에 연락해 계약기간을 10월로 변경할 것을 요청했지만 어렵다는 답변을 들었다. 결국 계약해지를 요구했지만 업체는 환급도 거부한 채 돈도 돌려주지 않았다. 기대했던 ‘제주 한달살기’는커녕 돈만 날린 셈이다.
B씨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지난 3월 제주지역 장기숙박업체와 7월에 17일간 객실을 이용하기로 하고 계약금으로 10만원을 입금했다. 하지만 개인 사정으로 이용하기 3개월 전인 지난 4월 6일 계약 해지를 요구했지만, 위약금으로 계약금의 50%를 빼고 5만원만 돌려받았다. 소비자분쟁해결기준에 따르면 계약일 10일 전에 예약을 취소하면 계약금 전액을 환급해야 한다.
지난해 5월 제주에 내려와 한달살기 숙소를 이용하던 여성 C씨는 더 황당한 일을 겪었다. 잠을 자고 있는데 갑자기 C씨의 방문이 열리며 낯선 남성이 들어와 깜짝 놀랐다. 업주는 열쇠를 잃어버린 다른 고객에게 마스터키를 빌려주는 과정에서 방 호수를 착각해 벌어진 일이라고 해명했지만, 불안한 마음 때문에 더 이상 제주에 머물 수 없어 짐을 싸고 돌아왔다.
여유롭게 장기간 제주에 머물면서 여행을 즐기려는 ‘제주 한달살기’가 유행하면서 소비자 피해도 크게 늘고 있다.
26일 한국소비자원 제주여행소비자권익증진센터에 따르면 2015년부터 올해 9월까지 ‘1372 소비자상담센터’에 접수된 ‘제주 한 달 살기’ 관련 소비자 상담건수는 48건으로 집계됐다. 연도별로 보면 2015년 6건, 2016년 13건, 2017년 14건으로 늘었다. 올해 들어서도 9월까지 15건이 발생하는 등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상담 유형별로 보면 계약금 환급 거부 및 지연 19건(39.5%), 과도한 위약금 청구 9건(18.8%) 등 계약해지 관련이 전체의 58.3%에 달했다. 이외에도 안전 등 시설불량 9건(18.8%), 추가요금 요구 5건(10.4%) 등 이용관련 불만사항도 상당했다.
제주여행소비자권익증진센터가 ‘제주 한달살기’ 장기숙박 업체에 대한 실태조사를 실시한 결과 조사 대상 50개 업체 중 30개가 관련 법률에 따른 신고 없이 불법영업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숙박 영업을 위해서는 ‘공중위생관리법’의 숙박업, ‘제주특별법’의 휴양펜션업, ‘농어촌정비법’의 농어촌민박업 등 관련 법률에 따라 사업자 등록 및 신고를 해야 한다.
이들 숙박업체들의 운영도 제멋대로 이뤄지고 있었다. 숙박업체 홈페이지에 계약 취소 시 환급규정을 표시한 곳은 35개 업체였지만, 소비자 귀책 사유로 취소 시 ‘소비자분쟁해결기준(숙박업)’에 따른 위약금 부과 기준을 준수하는 업체는 단 1곳에 불과했다. 사업자 귀책 사유로 취소 시 환급규정을 안내한 업체는 아예 없었다.
또 태풍, 폭설 등 기후변화 및 천재지변에 의한 취소 시 환급규정을 표시한 곳은 조사 대상 중 28%인 14개 업체뿐이었고, 이 중에서도 ‘소비자분쟁해결기준’을 준수한 업체는 7곳에 불과했다.
숙박요금도 제각각이었다. ‘50만원 이상 100만원 미만’이 23곳(46%)로 가장 많았고, ‘150만원 이상 200만원 미만’이 13곳(26%), ‘100만원 이상 150만원 미만’도 9곳(18%)에 이르렀다. 또 9개 업체는 홈페이지에 숙박요금도 표시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제주여행소비자권익증진센터는 숙박업체가 숙박업 등록 등 관련 법규를 준수하지 않고 운영 시 소비자 분쟁, 안전, 위생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제주관광 이미지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센터는 또 제주도에 업종 미신고 ‘제주 한달살기’ 장기숙박 업체를 대상으로 한 계도와 단속을 실시할 것을 건의할 계획이다.
오흥욱 제주여행소비자권익증진센터장은 “이번 실태조사는 홈페이지가 있는 숙박업체만 대상으로 이뤄진 것으로, 신고를 하지 않고 불법영업을 하는 업체는 이보다 더 많을 것”이라며 “소비자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계약 전 숙박업체가 자치단체에 신고해 정상적으로 영업하고 있는지를 확인하고, 계약 취소 시 환급조건 등 규정을 꼼꼼히 확인한 뒤 계약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영헌 기자 taml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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