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장 목소리로 듣는 분열성적표'
② 이민선 연세대 총여학생회 회장
“대학에서 총여학생회(총여)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올해 서울 시내 대학 중 총여가 출범한 학교는 연세대가 유일합니다.
그마저도 위태롭습니다. 지난해 12월 1일을 시작으로 새롭게 출발한 연세대 총여는 임기 20일도 채 되지 않은 18일, 재적 인원 10분의 1 이상 요구로 존폐를 학생 총투표에 맡기게 됐습니다. 지난해 6월 총여 재개편이 학생 총투표에서 가결, 태스크포스를 꾸려 재개편을 논의하던 중 일어난 일입니다.
2019년 한국 사회에서 ‘여성’으로, ‘페미니스트’로 산다는 것은 결코 녹록하지 않은 일입니다. 엄중한 시기에 총여를 이끌게 돼 지난함과 무거운 책임감을 느낍니다. 최근 캠퍼스에 불어 닥친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backlashㆍ반동)’로 총여 폐지 여론이 득세해 1988년 이후 이어온 30년 명맥도 위태롭습니다.
약자에 대한 관용이 사라진 오늘날 캠퍼스는 혐오로 물들고 있습니다. 대학생들이 애용하는 익명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서는 학내 인권운동하는 이들을 ‘PC충(정치적 올바름을 뜻하는 Political Correctness에 벌레 충을 붙인 별칭)’이나 ‘꼴페미(꼴통+페미니스트)’라 부르며 조롱하는 등 반인권적인 발언이 난무합니다. 인권 의제에 대해 의견을 제시하는 것조차 혐오의 대상이 됩니다. 이런 분위기 속 소수자는 소외되고, 배제되고, 목소리를 낼 수 없게 됩니다. 많은 사람의 큰 목소리가 소수의 존재를 압도합니다.
각 대학 총여가 줄줄이 사라지는 과정도 이와 유사합니다. 흔히 ‘다수의 결정’이 민주주의라 생각하지만, 이는 곧 소수의견이 다수에 의해 묵살되는 ‘포퓰리즘’을 초래하기도 합니다. 민주주의의 본질은 다양한 가치를 지키는 데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의사결정이 다수 의견을 따라야만 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면,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등 학내 소수자는 더욱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될 것입니다. 총여는 캠퍼스 내 소수자 혐오와 폭력에 일침을 가하고 인권 문화를 가꿔나갈 보루로 남아야 할 것입니다.”
정리=이혜미 기자 herst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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