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한국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어느 날 거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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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한국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어느 날 거위가’

입력
2019.01.0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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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신동준 기자

아내는 나가고 없었다. 거실 바닥에 놓인 물을 병째로 들이켰다. 미지근한 물에서 알코올 냄새가 났다. 소주 한 잔 정도가 남은 참이슬 병을 주머니에 넣고 홍삼 팩을 입에 물었다.

가게 앞에 서자 유리문 너머로 홀에 앉은 아내가 보였다. 일곱 테이블밖에 없는 홀이 휑했다.

없는 손님도 쫓겠다.

문을 열며 말했다. 아내는 돌아보지 않았다. 그녀를 지나 주방으로 들어갔다. 본사에서 온 절단육 상자가 열린 채로 놓여 있었다. 상자에 담긴 스무 마리의 절단된 닭도 비닐봉지에 포장된 그대로였다. 가뜩이나 좁은 주방이 상자로 발 디딜 틈 없었다.

뭐 했어?

답이 없었다. 아내는 지역 채널 뉴스를 보고 있었다. 홀에 걸린 티브이에 강청호가 나왔다. 쓰레기와 썩은 갈대가 호수에 떠다녔다. 산책로를 지나는 주민들이 고통을 호소했다. 어제부터 수 번은 본 뉴스였다.

장사 안 할 거야?

다시 물었다. 아내가 내게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눈동자는 짙은 검은빛이었다. 가끔 그녀의 눈은 그렇게 어두운 밤에 뜬 달처럼 보였다. 결혼 전 어느 호프집에서 그녀를 바라보던 날이 떠올랐다. 한때는 몇 시간이고 그 눈을 들여다보았다.

저거 봐. 아내가 시선을 돌렸다.

아나운서의 오른쪽 위에 ‘외출·외박·면회 금지’라는 제목이 보였다. 강청군 인근 부대에 유사한 증상을 보이는 장병이 잇따라 나타났다. 군은 문제의 원인과 전염성 여부가 확인될 때까지 장병들의 외출과 외박, 면회를 사실상 금지했다. 아나운서가 뉴스를 전했다.

휴대폰으로 인근 부대의 금지령을 검색했다. 오늘의 유머와 루리웹 게시글이 몇 개 떴다. 내용은 모두 같았다.

<강청군 사건의 비밀>

글 내용상 자세히 말하긴 어렵지만 강청군 근처 부대와 매우 밀접한 사람임.

최근 *사단, *군단에서 외출·외박·면회 금지된 거 아는 사람은 알 거임. 근데 이게 단순한 질병 문제가 아님.

먼저 병장 한 명이 훈련 중에 오한이 든다며 떨다가 생활관에 돌아가자마자 쓰러짐. 침을 흘리고 먹은 걸 다 토했다고 함. 입 주변에 버짐이 피고 온몸에 하얗게 각질이 일어남. 일단 직할 의무대에 격리하고 지켜보는데 잠깐 사이에 사라짐.

며칠 뒤에 같은 사단 다른 연대에서 한 일병이 같은 증상을 보이더니 마찬가지로 없어짐. 조사 결과 둘은 접촉한 적 없음. 둘 다 탈출을 목격한 사람도 없고 CCTV에도 안 찍혀서 사실 탈영이라기에도 애매함. 군에서도 탈영으로 생각하고 조사했는데 밖으로 나간 흔적이 없어서 고심 중.

소름 끼치는 건 *사단에서 2명, *군단에서 1명 총 세 명이나 같은 증상을 보이고 말 그대로 증발하다시피 사라졌는데 무슨 병인지, 왜 그런 건지 모른다는 거임. 언제 또 누가 걸릴지 알 수 없음.

올리고 잡혀갈지도. 후속 글 없으면 누가 신고해주면 고맙겠음.

그럴듯한 개소리였다. 커뮤니티 글 외에 문제의 질병을 기립 저혈압으로 추정하는 기사도 있었다. 아내가 의자를 끌며 일어났다.

기립 저혈압이라는 게 있어? 주방으로 들어가는 아내에게 물었다.

주방에서 양동이를 바닥에 던지는 소리, 양동이에 절단육을 떨어트리는 소리가 들렸다. 양동이가 둔탁하게 달그락댔다. 아내는 장갑을 끼고 가위를 집어 들었을 것이다.

주방으로 몸을 돌리는데 시야가 흐릿하고 어지러웠다. 새벽에 마신 술이 올라왔다. 정수기에서 물을 따라 마시며 생각을 정리했다.

그러고 보니 토요일이었다. 주말이면 군인과 면회객으로 가게가 가득 차기 마련이었다. 시끄러운 홀을 지나 주방으로 다가가면 이따금 아내의 휘파람이 들리기도 했다. 입을 오므리고 입김을 부는 것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 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지금은 주말이면 오는 아르바이트생조차 보이지 않았다. 평일과 다를 게 없었다.

강청군의 식당과 상점은 대부분 군인과 면회객이 오는 주말에 수익을 냈다. 군인들의 외출, 외박에 면회까지 막힌다면 시내에서 먼 우리부터 손해를 볼 게 뻔했다. 지난달에도 겨우 적자를 면한 참이었다. 매일 치킨을 튀기고 배달하지만 수중에 남는 돈이 없었다. 이 년 전 처음 가게를 열었을 때가 악몽처럼 떠올랐다. 석 달 동안 천만 원가량 적자를 봤다.

괜찮아. 우리 좋아지고 있잖아. 아내에게 말했다.

닭의 뼈와 내장이 가윗날에 스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전화벨이 울렸다. 서둘러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양념이랑 후라이드 하나씩에 와사비 간장 치킨이랑 고구마튀김도 시킬게요.

와사비 간장은 찾는 사람이 많지 않아 단종될 위기에 놓인 메뉴였다. 더욱이 와사비 간장과 고구마튀김을 함께 주문하는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 인중이 유독 튀어나온 얼굴을 떠올렸다. 아내와 나는 그를 와사비라고 불렀다.

부대에서 주문해도 되는 거예요? 와사비에게 물었다.

허락받은 겁니다. 그가 대답했다.

전화를 끊고 뒤로 돌자 주방에서 나온 아내가 보였다. 목장갑 위에 비닐장갑을 낀 그녀에게서 생닭 냄새가 났다. 지난 이 년간 우리에게 스며든 그 냄새에 속이 메슥거렸다.

스테인리스 그릇에 물과 치킨 파우더를 붓고 반죽을 만들었다. 할 일이 많았다. 주문을 세 마리나 받다니 어려운 가운데 뭔가 해낸 느낌이었다. 소스 만들기가 좀 번거로우면 어떤가. 인중이 불거져 나온 와사비와 와사비 간장 치킨을 단종하지 않은 본사에 고마운 마음마저 들었다.

부대로 가는 길은 익숙했다. 주말이면 하루 몇 번은 오가는 길이었다. 길가에 깔린 낙엽과 볼에 닿는 찬 바람에 기분이 좋았다. 어쩌면 이번이 기회가 될지 몰랐다. 금지가 풀리면 연말 특수와 겹쳐 매출이 몇 배로 뛸 수도 있었다. 매일 가게에 묶여 있으니 시야가 좁아졌다. 이맘때는 전어에 소주가 딱인데. 중얼거리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래도 주말이니까 홀 손님이 조금은 올지도 모른다. 참이슬 병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소주의 감촉이 그리웠다.

열두 시가 조금 넘어 부대 후문에 도착했다. 와사비가 치킨을 받고 카드를 내밀었다.

영수증 드려야죠?

와사비가 눈을 내리깐 채 입술을 잘근거렸다.

아저씨. 와사비가 입을 가리고 소곤댔다. ……가져가실래요? 그의 말이 잘 들리지 않았다. 카드와 영수증을 건네며 그를 쳐다봤다. 와사비가 오른쪽을 가리켰다.

뭐요? 카드단말기를 전대에 넣고 그가 가리킨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담장에 가려 무엇이 있는지 잘 보이지 않았다. 왼쪽 초소에 앉은 초병을 곁눈질했다. 그가 무관심한 눈길로 나를 보더니 손에 든 책으로 시선을 떨궜다.

오토바이를 끌고 오른쪽으로 걸었다. 초소가 보이지 않는 곳까지 갔을 때 나지막한 욕설과 꺽꺽대는 울음소리가 들렸다. 담장 위에서 푸드덕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거위가 날아왔다. 원형 철조망 위로 꽤 높이 떠 오른 거위는 보도 턱 위로 아슬아슬하게 떨어졌다. 목에는 얼룩무늬 손수건이 묶여 있었다. 거위가 나를 보며 몸을 낮추더니 반대쪽으로 달려갔다. 멀어지는 거위를 멍하니 지켜보는데 담장 너머에서 또 다른 거위가 날아왔다. 역시 목에 손수건을 두르고 있었다.

저기요. 와사비를 불렀다. 담장 저쪽에서 흙길을 달리는 발소리가 들렸다.

한낮의 거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덩치가 큰 거위가 목울대를 부풀리며 울었다. 거위는 성인 네 명이 나눠 먹어도 좋을 만큼 몸집이 컸고 좋은 환경에서 사육된 것처럼 윤기가 났다. 거위를 잡아 배달통에 넣고 가게로 향했다. 뚜껑을 열어두고 거위가 나오지 못하도록 통을 끈으로 여러 번 묶었다.

아내는 치킨값을 제대로 받았는지부터 궁금해했다. 영수증을 보여주자 그제야 거위를 살폈다.

거위치고는 크지 않아? 내가 물었다.

외래종인가 보지. 아내가 휴대폰을 집어 들며 툴툴댔다.

거위 앞에 쭈그려 앉아 목에 묶인 손수건을 풀었다. 손수건이 풀리면서 종이쪽지가 떨어졌다.

고든 램지가 추수감사절 특집으로 요리하는 영상도 있네. 외국 거위가 육즙이 좋대. 아내가 휴대폰에서 눈을 떼고 말했다. 곧 추수감사절이라잖아. 그녀의 목소리가 커졌다.

종이쪽지를 그녀에게 보여주었다.

‘2소대 1분대 병장 장준태. 멀리 풀어주세요.’

주인이 있는 것 같아.

군인인데? 아내가 물었다.

우리는 의논 끝에 가게 뒷문 옆, 주차장 한쪽에 거위를 묶어놓았다. 아무 데나 똥을 싸고 날개를 흔들어대는 통에 가게 안에 둘 수 없었다.

점심을 먹고 정리하는데 전화가 왔다. 가게를 소개하고 주문을 기다렸지만, 상대는 말이 없었다. 전화를 끊으려는데 헛기침 소리가 들렸다.

먹었어요? 그가 물었다.

뭘요?

장 병장님이요. 그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누구요?

장준태요. 그 새끼가 변한 거예요. 분명히 봤어요.

작고 나직한 목소리가 귀에 익었다. 고개를 들어 주차장 쪽을 바라봤다. 벽 너머로 거위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나 같아도 안 믿지, 시발. 와사비가 욕을 지껄였다. 그냥 마음대로 하세요.

왜 욕을…. 턱을 괴고 눈을 감았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이 정신 나간 자식에게 따끔한 한마디를 해줄까. 그렇게 얼마 없는 단골을 잃을 수도 있었다. 예, 다음에도 시켜주세요. 솟아오르는 화를 억누르고 상냥하게 말했다. 와사비가 전화를 끊었다.

누구? 아내가 물었다.

와사비.

뭐라는데?

아내에게 자초지종을 전했다.

그걸 듣고 있어? 아내가 짜증스럽게 말했다. 하여튼 속도 좋아.

주문 알람이 울리고 단말기에서 접수증이 나왔다. 근처 주택이었다. 30분 후에 도착한다는 안내를 보낸 뒤 아내가 미리 튀겨놓은 닭을 다시 기름에 넣었다.

새벽 두 시까지 배달만 열 건이었고 홀 손님은 없었다. 와사비를 제외하고는 모두 한 마리를 시켰다. 적자를 면하려면 하루에 열네 마리는 팔이야 했다. 평일 매출을 생각하면 그 열 배를 팔아도 모자랐다.

남은 치킨을 데워서 테이블에 놓았다. 두 마리 양이었다. 아내가 입맛이 없다며 일어섰다. 나도 먹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닭이 아까워 다리를 집어 들었다. 후라이드는 싫었지만 소스값을 생각하면 양념을 묻힐 수 없었다.

쟤 밥은 줬어? 아내가 물었다.

아까 양배추 줬는데.

데려오기만 하면 다지. 아내가 주방으로 들어갔다. 뒷문이 열리고 거위가 난동을 피우는 소리가 들렸다. 아내가 비명을 질렀다. 스테인리스 그릇이 뒤집히고 바닥이 긁히는 소리가 나더니 거위가 홀에 나타났다. 나는 일어서서 무릎을 굽히고 손을 가슴께로 올렸다. 여차하면 거위의 목을 낚아채야 했다. 거위가 몸을 부풀리며 부리를 여닫았다. 동그란 거위의 눈에 광기가 스쳤다. 거위가 목을 뻗으며 내게 달려들었다. 주황빛에 거무스름한 혹이 돋아난 부리가 눈앞으로 다가왔다. 나는 닭 다리를 놓고 몸을 돌려 문밖으로 달려나갔다. 문에 단 풍경이 댕그랑댔고 거위가 푸드덕대는 소리가 풍경 소리와 뒤섞였다.

손잡이를 쥐고 온몸으로 문을 막았다. 유리문 너머로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짓는 아내와 치킨이 놓인 접시에 부리를 박는 거위가 보였다. 거위가 목을 부르르 떨며 닭 다리를 집더니 고개를 젖혀 입에 넣었다.

문을 열고 거위에게 다가갔다.

얘 왜 이래? 아내가 물었다. 고기 먹어도 돼?

거위가 목을 바닥으로 내리더니 컥컥댔다. 거위의 목덜미를 잡고 부리를 벌렸다. 거위가 날개를 펼치며 버둥거렸다. 입안 끝에 두툼한 다리 살이 보였다. 닭 다리를 잡아 뺐다. 거위가 나를 보며 나지막이 울었다. 그네가 삐거덕거리는 소리 같기도 했고 애가 칭얼거리는 소리 같기도 했다.

아내를 흘금거렸지만, 그녀는 팔짱을 끼고 나와 거위를 바라볼 뿐이었다. 마지못해 닭 다리의 살을 발라 거위에게 건넸다. 거위는 닭 다리에 붙은 살을 순식간에 해치웠다. 아내가 기름이 묻은 내 손과 거위를 번갈아 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이상하잖아. 거위가 닭을 먹는다는 게. 그녀가 말했다.

거위는 원래 잡식이야. 내가 대꾸했다.

아내는 주방 입구에 서서 나를 쳐다보다가 말없이 가게를 나섰다. 올해 초부터 반복되는 생활이었다. 아내가 가게를 열었고 내가 뒷정리를 했다. 이제 함께 보다는 각자 일하는 게 편했다.

거위는 순식간에 치킨 두 마리를 먹어치웠다. 거위의 입가에 기름기가 흘렀다. 홀 한쪽에 상자 두 개를 놓고 거위를 불렀다.

야. 닭 다리. 여기서 자라. 여기서 싸고.

거위가 두 상자를 들여다보더니 그중 하나에 들어가 앉았다.

주방을 청소하고 정산까지 끝내고 나니 거위는 부리를 날개에 파묻은 채 잠들어 있었다. 치킨집에서 거위를 키우는 광경도 그렇게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홀 손님이 없으니 병에 따라 모을 소주도 없었다. 주머니에 넣었던 참이슬 병은 아침 그대로였다. 거실 소파에 앉아 소주를 홀짝이며 유튜브 영상을 봤다. 거위를 키우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아 놀랐다. 주인의 뒤를 따라다니던 거위 네 마리가 낯선 사람을 공격하는 영상을 보다 잠이 들었다.

부재중 전화가 다섯 통이었다. 감각이 둔해질 정도로 얼굴이 부었고 목소리도 잘 나오지 않았다. 아내의 목소리 너머로 거위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아내의 말에 집중하려 애썼다.

온통 똥이야. 그녀가 말했다. 물기나 하고 이 거위 새끼.

실눈을 뜬 채로 홍삼 팩을 입에 물었다. 거위 새끼 아니고 닭 다리 새끼야. 내가 웅얼거렸다.

술 안 깼니? 얼른 오기나 해. 아내의 목소리가 단호했다.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었다. 피곤했지만 웃음도 나왔다. 아내와 이렇게 실없는 말을 주고받은 것도 오랜만이었다.

아내는 닭 다리를 키우자는 말에 나를 흘겨봤지만, 자정이 다 되도록 거위를 어떻게 할 거냐고 묻지 않았다. 저녁 배달이 한차례 끝나고 아내와 홀에 앉아 스테인리스 양동이에 담긴 물을 들이켜는 거위를 구경했다.

먹지 말고 키우자. 쟤 얼굴 작은 게 너랑 똑같잖아. 내가 말했다.

뭐가 똑같아. 아내가 손을 저으며 실소했다.

아니 진짜. 나는 물 마시기를 멈추고 우리를 빤히 올려보는 닭 다리를 가리켰다. 뭔가 말하려는 것 같지 않아?

닭 다리가 꽥꽥댔다. 봐봐. 먹지 말라네. 내가 덧붙였다.

배고픈가 보지. 아내가 일어나 주방으로 움직였다.

아내의 뒷모습을 보며 닭 다리에게 손을 뻗었다. 닭 다리가 부리를 소매 안에 파묻었다. 이런 앨 어떻게 먹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닭 다리는 가게에 남은 양배추도, 아내가 편의점에서 사 온 샐러드와 과일도 먹지 않았다. 기름에서 튀김 부스러기를 건져내 닭 다리에게 주었다. 닭 다리가 거름망에 담긴 부스러기를 허겁지겁 쪼아 먹었다.

사람한테도 안 주는 걸 동물한테 주면 어떡해. 아내가 질색했다.

다른 걸 안 먹는데 어떡해. 주방을 돌아가 부스러기가 더 없나 살폈다. 새카맣게 탄 게 대부분이었다. 쓰레기도 처리하고 얘 먹고 싶은 것도 먹이고 좋잖아. 내가 말했다.

어제는 양배추도 먹었잖아. 아내가 나를 따라와 말했다.

고기 맛을 본 거지. 내가 대꾸했다. 우리도 채소보단 고기가 좋잖아.

아내가 양배추와 과일을 섞어 스테인리스 그릇에 담았다. 배고프면 먹겠지. 그녀가 바닥에 그릇을 내려놓는 소리가 들렸다.

새벽 한 시가 가까워졌다. 주문은 없고 시간은 더디게 흘러갔다. 아내와 나는 티브이와, 샐러드를 앞에 두고 입맛만 다시는 거위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여보. 아내를 불렀다. 소주 한 병만 깔까?

아내가 눈썹을 들어 올렸다. 운전은?

걸어가면 되지. 연애할 때처럼. 내가 대답했다.

아내가 무엇이라 중얼거리며 고개를 숙였다. 콧바람을 내는 모습이 화가 난 듯도 했고 웃는 듯 보이기도 했다.

조금만 마시자. 소주를 꺼내 뚜껑을 땄다.

기어이 까는구나. 아내의 입에서 작고 낮은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아니, 술 때문이 아니라. 황급히 말했다. 같이 얘기한 지도 오래됐잖아.

오늘 몇 마리 팔았는데. 그녀의 눈이 날카로웠다.

배달만 다섯 건 했잖아. 홀도 몇 팀 받고. 목소리가 기어들어 갔다. 매출이 적은 게 내 탓도 아닌데 왜 그녀가 따져 묻고 내가 주눅이 드는지 억울했다.

아내가 숨을 내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익숙한 모습이었다. 그녀가 모든 감정을 억누르겠다는 듯 눈을 깔고 얼굴을 돌렸다. 아내를 따라 일어나는데 테이블이 흔들리더니 소주가 넘어졌다. 곧바로 잡아 들었지만, 테이블에 소주를 조금 흘렸다. 아내가 나를 돌아봤다.

그래서 어쩌자고? 죽상으로 앉아있을까? 목소리가 커졌다. 기분 좀 풀자는 거 아니야.

지금 네가 화낼 상황이야? 아내가 소리쳤다.

그녀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가 말하는 문제는 가게 상황이 나아지지 않고는 해결될 수 없었다. 적어도 내가 느끼기엔 그랬다.

네가 하는 게 뭐 있어? 기껏해야 손님들이 남긴 술 모아 마시는 것밖에 더해?

말조심해. 아내의 말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내 표정에도 아랑곳없이 말을 이어 나가던 아내가 내 옆으로 무엇인가를 곁눈질했다. 왼쪽 테이블에서 무엇인가가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고개를 돌리자 닭 다리가 머리를 쳐들고 무엇인가를 삼키고 있었다.

뭐야? 급히 주변을 살폈다. 얘 뭐 먹어? 소주 뚜껑은 테이블에 그대로 놓여 있었다.

저거 마신 것 같은데. 아내가 테이블에 흘린 소주를 가리켰다.

닭 다리가 테이블에서 떨어져 나와 비틀거렸다. 날개를 조금 들어 올리고 옆으로 걷는 모습이 춤이라도 추는 듯 보였다. 닭 다리는 한 바퀴를 그렇게 돌다가 앞으로 넘어졌는데 계속 몸을 일으키려 엉덩이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러니까 왜 소주를 까서. 아내가 언성을 높였다.

이게 그렇게 욕먹을 일이냐? 나도 맞받아쳤다.

그아하.

말을 멈추고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바닥에 목을 늘어트린 닭 다리가 엉덩이를 씰룩이며 울었다. 그아하.

아내가 눈을 크게 뜨고 입을 꿈틀거렸다.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만해? 아내가 키득거렸다. 진짜 사람 같잖아.

아내를 따라 웃었지만, 마음 한구석이 찜찜했다. 카운터 아래 있는 손수건과 종잇조각이 떠올랐다. ‘분명히 봤어요.’ 와사비의 목소리도 들리는 듯했다.

닭 다리는 추수감사절을 무사히 넘겼다. 아내가 조리 방법이 번거롭다는 이유로 거위 구이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닭 다리에게 그날그날 홀 손님이 남긴 치킨과 튀겨놓고 남은 치킨을 주었다. 닭 다리는 먹는 양이 늘면서 닥치는 대로 먹었고 하루가 다르게 살이 쪘다.

군의 금지령은 두 주 뒤에 해제되었다. 같은 증상을 보이는 병사가 더 나타나지 않았고 원인균을 지닌 거위를 부대 근처에서 잡았기 때문이었다. 군은 문제의 질병에 전염성이 없다고 결론지었다. 아내와 나는 급하게 홀 아르바이트생을 구했다.

토요일이 되자 오픈 시간부터 배달 주문이 줄을 이었고 홀도 반이 찼다. 부대로 배달을 갔다 와 가게에서 새로운 치킨을 싣고 다시 부대로 향했다. 가게에 들를 때마다 손님 수를 헤아렸다. 대부분 반 이상이 차 있었고 일곱 테이블이 모두 찼을 때도 많았다. 오토바이를 타며 하루 매출을 계산했다. 계산대로라면 하루 매출로 한 주 매출을 메울 수 있었다.

문제가 생긴 건 배달이 조금 뜸해진 네 시 이후였다. 종일 주방에 있던 아내는 기름 냄새를 내보내기 위해 점심 이후로 뒷문을 열어두었지만, 홀이 워낙 붐비고 어수선해 주차장의 소리는 잘 듣지 못했다. 한번 앉지도 못할 정도로 바빴던 날이었다. 아내는 반죽을 만들고 닭을 튀기고 부족한 소스를 만드느라 정신이 없었다.

한차례 배달을 끝내고 가게에 도착한 나는 헬멧을 벗기 무섭게 1번 테이블에 물통을 가져다주었다. 홀은 외출을 나와 복귀를 앞둔 군인들로 가득했다. 일곱 테이블의 서빙과 주문 전화를 도맡은 아르바이트생이 당장이라도 울 것처럼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자꾸만 새 소리가 나요. 아르바이트생이 말했다.

그의 말이 단번에 이해되지 않았다.

오리 소리요. 닭 소린가? 손님들이 계속 물어봐요.

그제야 주차장에 있을 닭 다리가 생각났다. 주방으로 향했다.

쟤 점심 줬어?

뭐? 아내가 미간을 찌푸린 채로 되물었다.

닭 다리. 뭐 줬어?

아내가 미간을 펴고 눈을 크게 떴다. 뒷문에서 낮은 울음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문을 내다보자 부리를 벌린 채 고개를 숙인 닭 다리가 보였다. 닭 다리는 내가 다가가도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깃털이 달린 짐볼처럼 부푼 몸뚱어리에 허벅지만큼 두꺼워진 머리와 목을 내려다봤다. 목 아래에 깃털이 빠져 살이 드러나 있었다. 붉은 살결이 익히지 않은 닭 같았다. 목줄 가장자리에 부리로 짓누른 자국이 보였다.

줄을 풀었다. 닭 다리는 기다렸다는 듯 주방을 지나 홀로 내달렸다. 군인들과 아르바이트생의 비명과 욕설이 들렸다. 홀로 나가자 7번 테이블에 앉아 치킨을 집어 드는 닭 다리가 보였다. 7번 테이블의 군인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뒷걸음질 쳤다.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는 군인도 몇 명 보였다.

뭐야 이게? 7번 군인 중 한 명이 소리쳤다. 아르바이트생과 모든 군인이 나를 바라봤다. 입이 말랐고 식은땀이 났다. 닭 다리를 바닥으로 떨어트린 뒤 발길질하는 시늉을 하며 밖으로 몰았다. 닭 다리가 몸을 부풀며 내게 맞섰다. 평소보다 몸집이 커 보였고 눈가가 충혈된 듯 빨갰다.

재수가 없으려니까 웬 거위가 들어오네. 큰 소리로 말하며 아르바이트생에게 7번 테이블을 정리하고 치킨을 새로 갖다 주라고 시켰다. 문밖에 선 닭 다리가 이마와 윗부리를 유리문에 대고 가게를 들여다봤다. 주황색 부리에 돋아난 검고 볼록한 반점이 섬뜩했다.

가게 밖으로 나가 닭 다리를 잡아 들었다. 닭 다리가 몸부림치며 발톱으로 손등과 팔을 할퀴었다. 점퍼 소매가 찢어졌고 손등에서 난 피가 소매 안쪽으로 흘러내렸다. 닭 다리의 무게에 무릎이 절로 구부러졌다. 옆 골목까지 걷다가 모퉁이를 돌아 주차장으로 갔다.

닭 다리를 던지듯 내려놓고 목에 줄을 둘렀다. 닭 다리가 머리를 들어 올릴 때마다 부리가 어깨까지 올라왔다. 사람들이 볼 수 없도록 주변에 상자를 쌓아 올렸다.

울부짖는 닭 다리에게 7번 테이블에서 뺀 치킨을 던져줬다. 그릇에 머리를 넣었다 빼는 모습이 며칠은 굶은 것 같았다.

작작 좀 먹어라.

닭 다리가 눈을 치떴다. 반쯤 가려진 눈에 날이 서 있었다. 손등이 쓰라렸고 소매가 축축했다.

무슨 일이야? 아내가 뒤통수에 대고 물었다.

뒷문을 소리 나게 닫고 행주에 물을 묻혀 손등을 감쌌다. 화가 치밀었지만 함부로 소리를 지를 수도 없었다. 사진을 찍던 군인들이 신경 쓰였다.

주방에서 나와 아르바이트생에게 말을 걸었다. 홀이 소란스러워서 목소리를 높여야 했다.

신고했어야 했나? 그런 거는 처음 봐서.

하셔야죠. 아르바이트생이 대답했다. 군대에서도 거위를 잡았다잖아요. 병 걸린다고 하던데.

뉴스에서는 원인이 된 거위는 살처분했고 전염병도 아니라고 했는데 그가 뉴스를 어디로 들었는지 알 수 없었다. 나를 향한 군인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배달이 들어와 가게에 붙어있을 시간이 없었다. 주문이 들어오는 것은 좋았지만, 닭 다리가 신경 쓰여 괴로웠다. 거위가 가게에 있다는 게 알려지기라도 하면 군인이고 면회객이고 아무도 우리 음식을 먹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아르바이트생이 퇴근하는 여덟 시가 지나 새벽 한 시에 마지막 손님이 나갈 때까지 닭 다리가 가게로 들이닥치는 일은 없었다.

어떻게 하지? 내가 말했다. 우리는 가게 불을 끄고 물을 마시는 닭 다리를 지켜보았다.

나한테 물어? 아내가 되물었다.

어디든 보내야 하나….

닭 다리가 날개를 뻗어 올리며 크게 울었다.

뭘 잘했다고. 아내가 거위에게 윽박질렀다. 어쩔 거야? 그녀가 내게 따져 물었다.

대답을 망설이는데 마침 가게로 전화가 왔다. 카운터로 가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영업이 끝났다는 말에 상대가 내 이름을 댔다.

본인인데 무슨 일이십니까? 내가 물었다.

이현우 상병 관련해서 전화 드렸습니다.

누구요? 고개를 낮추고 그의 전화를 받았다. 목소리가 떨렸다.

아내가 카운터로 다가와 눈썹을 내려트렸다. 누구야? 뭐래? 그녀가 소곤댔다.

손가락을 입에 갖다 대고 고개를 저었다. 아내가 머리를 들이밀더니 내 관자놀이와 수화기 사이로 귀를 갖다 댔다.

지난 십일 월 십구 일 열두 시 사 분 본 사단에 배달 오셨죠? 남자가 말했다.

아, 글쎄요. 확인을 좀 해봐야….

있지도 않은 종이를 뒤적거렸다. 그가 와사비에게 치킨을 배달한 앞뒤 상황을 물었다. 나는 이현우 상병이 치킨 세 마리를 시켜서 배달했다고 대답했다.

아내가 입을 벙긋거렸다.

허락받았다고 해서 배달한 건데 문제가 됩니까? 아내의 말을 따라 했다.

거위를 보셨습니까? 그가 낮은 목소리로 엄숙하게 말했다.

거위요? 웬… 무슨….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정말 못 보셨습니까? 그가 물었다.

거위는 본 적이 없는데. 내가 대답했다.

두 마리 보셨죠? 그가 다시 물었다.

두 마리나 있대요? 뉴스엔 한 마리로 나오던데.

협조 부탁드립니다. 보신 그대로 말씀해주시면 됩니다. 그가 말했다.

아내가 수화기를 뺏어 들었다.

저기요, 치킨집에 거위가 말이 돼요? 그녀가 언성을 높이고 화를 냈다. 장난도 정도가 있지.

남자는 필요하면 다시 연락하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진짜 어쩌지? 내가 물었다.

어쩌긴 뭘 어째. 아내가 주방으로 가서 기름을 데웠다. 그녀가 닭에 반죽을 묻혔다.

거위가 상자 밖으로 엉덩이를 내밀고 똥을 쌌다. 나는 눈을 감고 이마에 손을 얹었다.

혹시 몰라서 닭 다리 하나 따로 챙겼어. 아내가 주방에서 나와 거위에게 치킨을 줬다. 그녀의 손에 비닐봉지에 담긴 닭 다리 조각이 들려 있었다.

강청호에 풀어주자. 그녀가 나를 돌아봤다. 자연에서 사는 게 얘한테도 좋을 거야.

거위의 부리에 튀김옷과 기름이 엉겨 붙었다.

괜히 나쁜 짓 하는 것 같네. 내가 웅얼거렸다. 아내는 아무 말이 없었다. 우리는 거위를 데려오기 전에 그랬던 것처럼 서로의 시선을 피하고 입을 다물었다.

카운터로 가서 손수건과 종이쪽지를 꺼냈다. 거위가 치킨에 정신을 파는 틈을 타 손수건을 목에 둘러주었다.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창밖에서는 첫눈이 내렸다. 아내와 나는 거위를 태우고 강청호로 향했다. 마지막 달의 첫날, 가로등 빛을 받으며 내려오는 눈만 공연히 낭만적이었다. 자잘하게 내리던 눈은 진눈깨비로 변하더니 강청호에 다다를 때쯤 비가 되어 쏟아졌다.

호수를 따라 세운 가로등은 모두 꺼졌지만, 도로의 가로등에서 나오는 빛이 강청호 둔치를 어슴푸레하게 비췄다. 벤치와 운동기구가 있는 작은 공원에 우산을 쓴 연인이 보였다. 산책로 끄트머리에 차를 세웠다. 흙이 드러난 길 너머로 호수까지 잡초가 무성한 곳이었다.

거위를 차 밖으로 몰아냈다. 그것이 잡초를 등지고 우리를 바라보았다. 기다랗고 두꺼워진 부리는 단단한 껍질로 둘러싸인 열매처럼 보였고 창백한 얼굴에 붉어진 눈동자는 괴물처럼 느껴졌다. 저 눈 좀 봐. 나는 생각했다. 사람일 리 없었다.

아내가 닭 다리 조각을 힘껏 던졌다. 거위가 몸을 낮추고 잡초 너머로 달려갔다. 산책로 끝에 서서 거위가 물가로 가 닭 다리를 먹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어디선가 악취가 났지만, 호수 건너 불빛이 반짝이는 풍경이 제법 아름다웠다.

이런 데다 풀어도 될까. 아내에게 물었다.

그래도 즐거웠는데. 그녀가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쏟아지는 비에 호수가 일렁였다. 날이 어두워 쓰레기는 잘 보이지 않았고 물결마다 조금씩 내보이는 빛이 우아할 따름이었다. 우산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아늑했다. 손을 뻗어 아내의 어깨를 감쌌다. 아내가 우산을 든 내 손을 잡았다.

그때 거위가 고개를 들어 우리를 바라봤다. 잡초 너머로 보이는 눈이 번쩍이더니 그것이 순식간에 잡초가 난 땅의 반을 가로질렀다. 아내와 나는 서로에게서 떨어져 차로 질주했다. 진흙이 무릎 위까지 튀었다.

차 문을 닫았을 때 거위의 부리가 창문을 스쳤다. 사람만 한 그림자가 차에 드리웠다. 브레이크를 밟고 기어를 당겼다. 거위가 창을 쪼았다.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고 엑셀을 밟았다. 바퀴가 헛돌 뿐 차가 앞으로 가지 않았다. 빨리! 아내가 소리쳤다. 문밖에서 쇠가 긁히는 소리가 났다. 거위가 목을 들어 올렸다 앞으로 뻗으며 힘껏 울었다. 차가 움직였다. 백미러로 멀어지는 거위를 바라보았다.

치킨을 한 조각 더 남겨둘 걸 그랬어. 아내가 숨을 몰아쉬었다.

아내를 따라 오전 열 시에 집을 나섰다. 주문이 몰리기 전 절단육을 다듬어야 했다. 강청교를 지나는데 아내가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왜? 내가 물었다.

호수 주변에 사람이 모여 있어. 아내가 대답했다.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그녀도 더는 말이 없었다.

손수건을 발견한 걸지도 모르지. 주차장에 차를 멈추고서야 그 말이 튀어나왔다. 아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매출은 기대 이상이었다. 더는 거위와 같은 걱정거리도 없었다. 다음 주도 오늘과 같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세 시가 되어서야 숨 돌릴 틈이 났다. 아르바이트생을 쉬게 하고 홀을 맡았다. 음식을 기다리는 손님이 세 팀, 받아서 먹고 있는 손님이 네 팀이었다.

정수기 옆 구석 자리에 앉아 있던 아르바이트생이 나를 불렀다.

이거 보셨어요? 그가 내민 휴대폰을 들여다보았다. 큰일 날 뻔했네요.

SNS에 뜬 거위의 사진이었다. 강청호 공원을 배경으로 부리를 벌리고 달려드는 거위가 보였다. 수풀 아래에 떨어진 얼룩무늬 손수건도 눈에 들어왔다. 손수건은 매어 준 사람이 아니면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흙으로 범벅되어 있었다.

티브이 채널을 돌려 뉴스를 확인했다. 강청호나 거위에 관한 뉴스는 나오지 않았다.

무슨 일인데? 아르바이트생에게 물었다.

그때 전화가 울렸다. 누군가가 와사비 간장 치킨과 고구마튀김을 주문했다.

또 뭐 시킬까? 수화기 너머에서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렸다. 얘는 맥주 먹고 싶겠지. 여러 명이 낄낄거리며 웃었다. 야, 웃지 마. 내가 그 거위 때문에 몇 번을…. 와사비의 목소리였다. 이제 다 끝났잖아. 누군가 말했다.

습관적으로 주문을 입력하고 홀을 확인했다. 아직도 세 팀이 치킨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샌가 카운터로 다가온 아르바이트생이 휴대폰을 내밀었다.

산책하던 사람을 깔고 눈을 쪼았다나 봐요. 그가 말했다. 계속 날뛰는 바람에 실탄을 열 발이나 쐈대요.

왜 이렇게 안 나와? 손님 한 명이 투덜거렸다. 와사비와 거위를 뒤로하고 주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무슨 소리야? 7번 테이블의 손님이 수군댔다. 다른 손님들도 웅성거렸다. 주방으로 다가가는 동안 울음소리는 점점 커졌다. 벽 너머에서 날개를 퍼덕이고 넓적한 발로 바닥을 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흰색의 무엇인가가 느리게 주방 밖으로 걸어 나왔다.

눈이 검고 왜소한 거위였다.

또 뒷문으로 들어왔나 봐요. 아르바이트생이 투덜거렸다. 어제부터 왜 거위가 난리지?

거위를 지나 주방으로 들어갔다. 뒷문은 닫혀 있었다. 주방으로 들어온 거위가 부리를 작게 벌리더니 짧은 숨을 여러 번 내쉬었다. 부리 사이로 가늘고 희미한 음이 새어 나왔다.

진흙이 묻은 손수건을 떠올렸다. 뒷문을 열고 차로 걸어갔다. 손수건을 찾아야 했다. 종이쪽지와 손수건을 가지고 가서 와사비를 만나봐야지. 거위가 왜, 어떻게 나타났는지 의문을 품는 사람이 한 명쯤은 있을지도 몰랐다. 그들도 찾아봐야지. 나는 생각했다.

뒤를 돌아 주차장에 선 거위를 바라봤다. 거위의 눈이 일렁이며 조금씩 빛을 내보였다.

전예진 당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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