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이민자 아동 격리’ 피해 온두라스 출신 가족 “행복해”
“우리 가족 네 명이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합니다.”
올해 4월 미국 땅을 밟은 온두라스 출신 에베르 레예스-메히아(31)는 성탄절을 앞둔 소감을 이같이 밝혔다. 엄밀히 말하면 그는 아직 ‘불법 이민자’ 신분이다. 합법적으로 일할 수 없고, 따라서 사회봉사단체나 기부금의 도움 없이는 생활도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행복’을 얘기한 건 사랑하는 자녀와의 생이별 때 입은 상처가 이제는 아물었기 때문이다.
23일(현지시간)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불법 이민자 아동 격리’ 정책으로 한때 뿔뿔이 흩어졌다가 재결합한 이민자 가족들이 미국에서 첫 성탄절을 맞이했다면서 레예스-메히아 가족의 사연을 소개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월 불법 이민 행렬을 막고자 부모와 아동을 분리 수용하는 ‘무관용 정책’을 시행했으나, 들끓는 비난 여론과 연방법원의 무효 판결에 6월 말 이를 철회한 바 있다.
레예스-메히아는 지난해 동갑내기 아내와 세 살배기 아들, 젖먹이 딸을 데리고 온두라스를 떠났다. 갱단의 폭력 위험이 너무나 극심해서였다. 수개월간 가족과 함께 멕시코에서 지내던 그는 올해 4월 아들을 데리고 먼저 국경을 건넜고, 미 텍사스주 매컬런시 수용시설에 들어갔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서류 작성을 해야 한다”는 시설 관계자의 말에 잠들어 있던 아들의 곁을 잠시 떠난 게 화근이었다. 그 사이 아들은 미시건주 한 기관으로 이송됐고, 자신도 다른 시설로 보내지며 ‘강제 분리’가 된 것이다.
연방법원의 재결합 명령에 따라 3개월 후인 지난 7월, 다시 만난 아들은 어딘가 달라져 있었다. 자꾸만 움츠러들고 침울해한 데다, 아빠가 자리를 뜨려 하면 마구 화를 냈던 것이다. 레예스-메히아는 “트라우마가 생긴 것 같았다”고 했다. 며칠 후 아내와 딸이 있던 휴스턴으로 이동, 온 가족이 재결합했지만 아들의 ‘변화’는 더욱 심해졌다. 엄마의 접근 자체를 허락하지 않았고, 밤에는 아예 혼자 있으려 했다. 거듭된 애정 표현으로 아들이 ‘평온’을 되찾기까지 걸린 2개월의 시간은 이들 부부에겐 고통의 연속이었다.
레예스-메히아 가족은 올해 성탄절 때 교회에 다녀온 뒤, 임시 거주 아파트에서 멕시코 음식인 타말레스(옥수수 반죽과 치킨을 넣어 찐 요리)를 차려놓고 조촐한 기념 파티를 할 계획이다. 물론 내년 1~3월 이민법원 심리를 앞두고 있어 미래는 불확실하나, ‘총성의 위협’에서 해방됐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레예스-메히아의 아내는 WSJ에 “미국은 값을 따질 수 없는 ‘안전’을 줬다”며 “우리는 다시 태어난 기분”이라고 전했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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