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사 여중생 가족 “의사ㆍ약사 설명 못 들어”… 학부모들, 먹일지 말지 발 동동
지난해 12월 A형독감 확진을 받고 타미플루를 처방 받아 복용한 김은영(54)씨는 이틀 간 왠지 모를 우울감과 몽롱함에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독감으로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직장에서 매일 사용하는 단어가 재빨리 떠오르지 않는다든가 작은 일에도 초조하고 화가 울컥 솟는 경험도 했다. 김씨는 “타미플루를 먹는 것 외에 일상에 달라진 게 없는데 잠도 못 자고 눈 앞이 흐릿해지는 것도 느껴 4일째에 복용을 멈췄다”고 털어놨다.
타미플루를 먹던 중학생이 부산의 한 아파트에서 추락사한 이후 소아ㆍ청소년의 복용 부작용이 집중 조명되고 있지만, 이상증상을 경험했다는 성인들의 목소리 역시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다. 25일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복용식 독감치료제는 오셀타미비르인산염 성분을 기반으로 한 타미플루(복제약 포함 163품목)가 유일하다. 성분이 다른 대체품은 없어 거의 모든 독감환자들은 타미플루를 처방 받게 되는데, 구토ㆍ두통 등 타미플루 부작용은 올해에만 206건(9월 기준) 보고됐다. 식약처는 국ㆍ내외에서 소아ㆍ청소년의 타미플루 복용 후 이상현상이 지속적으로 나타난 데다 최근 부산 중학생 사망 사고까지 발생하자, 24일 의료현장에 의약품 안전서한을 보내 “10세 이상 소아 환자에게 인과관계는 불분명하지만 복용 후 이상행동이 발현하고 추락 등 사고에 이를 수 있다는 점을 알리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성인 환자들도 예외는 아니다. 올해 1월 타미플루를 복용했다는 최모(32)씨는 “약을 먹은 후 눈앞이 흐릿흐릿 해지고 불면증이 와 하루에 잠을 2시간 밖에 못 잤다”며 “한 지인은 타미플루 복용 후 잠을 자지도 않았는데 30분 정도의 기억이 사라졌다고 전해 들었다”고 했다.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타미플루를 복용한 뒤 자살 충동이 들어 회사에 나가지 않았다” “말을 횡설수설하게 되고 이상한 표현을 되뇌는 일시적 언어장애를 겪었다” “직장에서 평소에 쓰지도 않는 욕설을 나도 모르게 내뱉었다”는 등 경험담이 잇따르고 있다.
문제는 병원이나 약국에서 제대로 된 복약지도를 받는 경우가 드물다는 점이다. 부산에서 추락사한 중학생 A(13)양의 어머니는 이날 “딸이 아빠와 함께 병원에서 타미플루를 처방받아 약국에서 제조된 약을 받았지만 해당 의사나 약사 모두 부작용에 대해 한 마디도 알려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A양 고모도 지난 24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우리 조카처럼 의사와 약사에게 한 마디도 주의사항을 못 들어서 허망하게 숨지는 일이 없도록 만들어달라”고 호소하는 글을 올렸다.
특히 성인의 경우에는 부작용 사례가 적다는 이유로 설명을 듣는 경우가 더 적다. 지난주 A형독감 확진을 받은 이모(28)씨는 “약을 먹은 후 울렁거림이 잦았는데 병원ㆍ약국에서 특별한 부작용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다”면서 “증상이 좀 나아졌다고 약을 끊어서는 안 된다기에 꾸역꾸역 3일치를 먹었다”고 토로했다.
독감이 한창 유행인 때 타미플루 부작용이 크게 알려지자 학부모들은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네살 아들을 둔 유진희(33)씨는 “독감이 낫지 않으면 어린이집에도 보낼 수 없는데 부작용이 무서워 약을 안 먹이자니 대안이 없는 상황”이라며 “더군다나 타미플루를 먹은 아이가 갑자기 애벌레가 보인다는 등의 사례를 들은 적이 있어 겁이 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문은희 식약처 의약품안전평가과장은 “타미플루와 자살경향 등에 의한 인과관계가 불분명하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집중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부산=전혜원 기자 iamjh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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