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영국의 소도시 예이츠에서 출생한 백인. 이름은 로빈 거닝엄으로 추정. 진바지에 후드 셔츠를 즐겨 입는다는 보도도 있다. 은니가 있다는, 용모에 대한 구체적 묘사는 있으나 그를 제대로 봤다는 사람은 거의 없다. ‘얼굴 없는 거리 예술가’로 세계적으로 이름 난 뱅크시의 신상은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추측과 추정만 있을 뿐이다. 어떤 삶을 살아오며 어떤 생각을 하는 사람인지는 그의 그림을 보는 이들이 추론할 수 밖에 없다.
□ 뱅크시는 10대 때 학교에서 쫓겨난 후 거리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캔버스는 공공시설의 벽일 때가 많다. 작업 대부분이 ‘그래피티’다. 1997년 그의 존재를 처음 널린 알린 그림도 영국 브리스톨 시내 상가 벽에 그렸다. 귀여운 테디 베어가 경찰 셋을 향해 화염병을 던지는 그림이었다. 그래피티가 태생적으로 그렇듯 그의 작업 대부분은 불법이다. 누구의 허락을 받지도 않고 자신의 신분을 감춘 채 공공시설에 마음대로 그림을 그린다. 뱅크시가 유명해졌지만 반달리즘이라는 비판이 여전히 따르는 이유다.
□ 뱅크시의 작품이 사람들로부터 호감을 사고 반달리즘 비판에서 그나마 자유로울 수 있는 건 그림에 담긴 메시지와 그의 한결 같은 행동 때문이다. 그의 작품은 권위주의에 대항하고, 가진 자들을 조롱한다.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까지 가서 반전 메시지를 전한다. 지난 10월 경매에 나온 자신의 그림이 15억원 가량에 낙찰되자 미리 설치한 장치로 그림을 파쇄해 화제를 모았다. 뱅크시의 이런 행동은 오히려 자신만의 권위와 가치를 만들었다. 그가 최근 영국 웨일스 남부 도시 포트탤벗의 한 노동자 집 차고 벽에 남긴 그림을 보호하기 위해 보안요원이 배치되고 플라스틱 판까지 설치됐다고 한다.
□ 요즘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을 드러내 유명해지고 싶어한다. 유명인이 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고, 부를 쌓으면 더 유명해져 더 큰 부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유튜브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유명 인사가 되고 싶은 사람들의 자기 현시가 넘쳐난다. 누가 누구를 만나 무엇을 먹고 어디를 갔는지를 실시간으로 알 수 있는 시대, 그리고 유명도가 권력이 된 지금, 뱅크시는 오히려 대중의 디지털 추적을 피하며 자신만의 가치를 만들어내고 있다. 익명성이 사라진 시대의 역설이다.
라제기 문화부장
※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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