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무와 꽃에 대해선 문밖에 있는 사람이다. 안도현 시인을 빌면 쑥부쟁이와 구절초를 구별하지 못하고 들길을 걷는 무식한 놈이고, 애기똥풀에 죄지은 사람이다. 한때 식물도감을 사서 나무 이름을 몽땅 외울까 생각도 했지만 영 소질이 없다. 그래서 식물박사는 무조건 존경하는 편이다.
그런데 내가 확실히 알고 유독 좋아하는 나무가 있다. 그 나무에 대한 강렬한 잔상이 있다. 오래 전 겨울 충남 천리포수목원에서다. 해풍 속에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다. 그 흐드러진 군무 사이로 보일 듯 말듯 붉은 점이 알알이 박힌 나무들의 열병식. 가까이 다가서니 진녹색 윤기 나는 이파리 사이로 붉디붉은 열매들이 도도하게 자태를 드러냈다. 숨이 막혔다.
이 수목원 설립자인 민병갈 박사(1921~2002, 귀화 미국인)가 자식처럼 키웠다는 호랑가시나무다. 이름부터가 범상치 않다. 잎의 톱니에 난 억센 가시가 호랑이 발톱을 닮기도 했고, 그분께서 여기 기대 등을 긁으셨다 한다. 이 수목원에는 호랑가시나무가 400여 종이나 자라는데, 박사의 흉상 곁에는 당신이 처음 발견해 학명을 받은 완도호랑가시나무 한 그루가 세월을 같이 가고 있다.
그 후로 나는 겨울에 붉은 열매를 맺는 나무들을 유심히 보게 됐다. 의외로 많다는 걸 알았다. 나는 정말 나무 문외한이었다. 열매가 팥알 같은 팥배나무, 노란 꽃으로는 봄을 알리지만 다닥다닥 붉은 열매로 추위를 알리는 산수유, 제주도에서 가로수로 많이 심는 ‘이름이 뭐래?’ 먼나무, 울릉도에선 모르는 이가 없다는 마가목, 그밖에 산사나무, 식나무, 가막살나무, 자금우, 아금배나무, 남천, 피라칸다….
붉은 열매는 새들의 눈에 잘 띄어 씨를 퍼뜨리기 위한, 잎에 달린 가시는 초식동물의 접근을 막기 위한 나무의 생존전략이다. 키가 자라면 날카로운 가시가 퇴화한다(나무들은 사람보다 똘똘하다). 이 가운데 호랑가시나무, 먼나무, 식나무 등은 상록활엽수다. 눈발 흩날리는 날에 봐야 한다. 나무가 크든 소담하든, 화이트와 그린과 그 보색인 레드의 판타스틱 앙상블에 눈이 호사한다.
무채색의 겨울이지만 유심히 돌아보면 빨간 색이 많다. 화살 같은 세월, 하릴없이 쓸쓸한 세모의 정서에 그나마 붉은 색이 마음을 적신다. 백화점과 가로수의 네온 장식, 성당의 촛불, 크리스마스 트리도 붉게 반짝인다. 산타의 옷도, 구세군 자선냄비도, 포인세티아도 붉다. 열매는 아니지만 처절하게 붉은 피를 토하는 동백꽃은 또 어떤가.
빨간 색은 금지 같은 부정적 경고도 있지만, 사랑 희생 열정 생명 헌신 영광 같은 메시지를 담고 있다. 거기에 딱 맞는 나무가 바로 이맘때의 호랑가시나무다. 성탄 카드나 리스(화환)에 나오는 진녹색 잎과 빨간 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사랑의 열매’도 이 나무다. 영어로는 성스러운 나무, 할리우드(hollywood)다. 미국 LA 할리우드는 이 나무에서 따왔다.
예수가 골고다 언덕을 오를 때 호랑가시나무의 가시면류관을 썼는데 작은 티티새 로빈이 고통을 덜어주려고 부리로 가시를 뽑아내다 피를 흘리며 죽어갔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그래서 이 나무는 서양에서 예수의 고난과 대속(代贖)을 상징하는 크리스마스 나무가 됐다. 우리나라에서는 음력 2월 영등달에 이 나뭇가지로 정어리 대가리를 꿰어 처마 끝에 매달아 잡귀를 물리쳤다고 한다. 서양에서는 성수(聖樹), 동양에서는 신목(神木)이다.
성탄도 갔고, 붉은 해는 서산마루에 걸렸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며칠 남지 않았다. 작은 호랑가시나무를 마음의 반려로 삼아 매일 들여다봐야겠다. 그대에게 글감을 빚졌으니 원고료 나오면 잘 생긴 한 그루 들여놓겠다. 조롱조롱 매달린 새빨간 열매를 보면 내 마음도 붉게 물드려나.
한기봉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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