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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는 나일강의 선물 아닌 ‘홍수의 선물’

입력
2018.12.26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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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준호의 실크로드 천일야화] <37> 아스완 채석장과 아부심벨신전

이집트 아스완 남쪽 280㎞ 지점 나세르호 옆에 아부심벨 신전이 세워져 있다. 1971년 아스완하이댐 건설 때 수몰위기에 처한 이 신전은 해체와 복원의 대역사를 거쳐 70m 높은 지점으로 이전했다.
이집트 아스완 남쪽 280㎞ 지점 나세르호 옆에 아부심벨 신전이 세워져 있다. 1971년 아스완하이댐 건설 때 수몰위기에 처한 이 신전은 해체와 복원의 대역사를 거쳐 70m 높은 지점으로 이전했다.

카이로역은 붐볐다. 대합실도 따로 없이 플랫폼에서 기다리다 보니 철길 옆이 시골장터와 다름 없었다. 철길 옆 구내식당에서 주문한 이름 모를 커피는 그 옛날식 다방의 향수를 불러냈다.

이국의 밤 기차역 풍경을 뒤로하고 철마는 카이로에서 아스완으로 달렸다. 2인1실의 침대칸은 비좁아 터졌다. 벽에 붙은 2층 침대를 펼치는 일도 난공사였고 별도 사다리로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도 암벽등반 수준이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나 칭짱열차도 비좁았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여행자에게는 누울 자리만으로도 배 부른 소리였다.

철로는 나일강을 끼고 뻗어 있었다. 강에서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반복하면서도 나일을 벗어나지 않았다. 열차는 궤도를 타고 정해진 길을 가는데도 오히려 방향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나일강은 빅토리아호수와 에티오피아에서 발원해 남쪽에서 북쪽으로 흐르다 지중해로 빠진다. 남으로 흐르는 낙동강만 보다 북쪽으로만 내달리는 나일강이 잘 적응되지 않았다. 게다가 기차는 강의 상류인 남쪽으로 달리다 보니 상류는 북쪽이어야 했던 공간개념이 뒤죽박죽이 됐다.

아스완의 한 채석장에 미완성 오벨리스크가 옛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원석 그대로 잘라 룩소르 카르나크 대신전 등 이집트 전역으로 옮겼다.
아스완의 한 채석장에 미완성 오벨리스크가 옛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원석 그대로 잘라 룩소르 카르나크 대신전 등 이집트 전역으로 옮겼다.

카이로를 떠난 지 13시간이 조금 더 지난 이튿날 오전 10시쯤 한적한 아스완역을 벗어났다. 카이로의 화려함은 없었지만 생얼굴의 이집트를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들떴다. 아스완 첫 행선지는 채석장이었다. 화강암이 많았던 아스완에는 옛날부터 채석장이 많았다. 피라미드에 드는 어마어마한 화강암이 모두 아스완에서 채석됐다고 하니 규모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카이로 기자지구의 피라미드 석재가 이곳에서 운반됐다니 4,500여 년전 밤기차가 지나온 거리만큼 나일강 뗏목으로 돌을 날랐다는 얘기다. 상상이 잘 되지 않는 스케일이다.

채석장에는 만들다 만 미완성 오벨리스크가 있었다. 길이가 45미터나 되는 엄청난 규모였다. 반쯤은 돌무더기 속에 파묻혀 있었지만 여기저기 돌을 깨기 위한 쐐기 자국이 가득했다. 태양신 라를 숭배한 이교도의 상징물이 프랑스 파리 콩코르드광장에 서있는 것은 그나마 이해되지만 로마 가톨릭의 심장인 바티칸광장에 솟아 있는 것은 아이러니다. 물론 꼭대기에 십자가를 달긴 했지만.

아부심벨 대신전 입구의 람세스2세 석상 4기 중 1기의 머리 부분이 떨어져 있고, 석상 조각에 귀 모양이 선명하다. 이전 복원할 때도 당초 발견된 모습을 그대로 재현했다.
아부심벨 대신전 입구의 람세스2세 석상 4기 중 1기의 머리 부분이 떨어져 있고, 석상 조각에 귀 모양이 선명하다. 이전 복원할 때도 당초 발견된 모습을 그대로 재현했다.

채석장도 채석장이지만 아스완을 찾은 이유는 아부심벨신전 때문이다. 람세스2세가 누비아 원정후 에티오피아 국경 일대에 자신과 왕비 네페르타리를 위해 지은 거대한 2개의 신전이다. 누비아는 고대 아프리카 북동부 수단 일대의 지명으로 이집트인은 이곳 흑인을 놉(Nob 노예)이라고 부른 것이 유례가 됐다. 영화 ‘글래디에이터’에서도 로마 장군 막시무스 옆에 서 있던 흑인 검투사가 누비아인이었다. 수도를 나일강 하류에 정한 람세스2세가 머나먼 상류에 신전을 지은 것은 국경선과 외부 침략에 대한 경고 성격이 짙다. 신라의 진흥왕순수비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스쳤다.

출발은 다음날 새벽이었다. 4시40분에 출발해 8시30분에 도착했으니 거의 4시간이 걸린 셈이다. 어둠속으로 이집트 군대의 초소와 장갑차, 경계병들의 번뜩이는 눈동자도 보였다. 버스는 어둠을 뚫고 달리고 또 달렸다. 사막 가운데 도로 위로 해가 떴다. 무허가 건물 형태의 휴게소에서 잠시 국민체조를 했다. 척박한 땅을 지나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도 인공 야산 하나와 주차장뿐이었다.

여행객들이 아스완에서 아부심벨로 가는 도로 옆 휴게소에서 잠시 휴식하고 있다.
여행객들이 아스완에서 아부심벨로 가는 도로 옆 휴게소에서 잠시 휴식하고 있다.

야산을 끼고 오른쪽으로 돌았더니 강물을 담은 나세르호가 먼저 보였고, 야산의 뒤편으로 높이 20m의 거대한 석상 4기가 눈에 들어왔다. 아부심벨 대신전이었다. 람세스2세의 석상을 올려다보며 빨리듯 신전 안으로 들어갔다. 벽과 천장에는 온갖 부조와 상징물이 조각돼 있었다. 정복전쟁에 나서 파라오의 치적을 찬양하는 내용이었다. 신전 제일 안쪽에는 4개의 신상이 모셔져 있는 방이 있었다. 람세스2세와 아몬 라, 라 호라크티, 그리고 프타신이다. 람세스2세는 신과 동격이었다. 1년 중 춘분과 추분 2차례 오전 6시에만 잠시 햇살이 이 방을 비추는데 죽음의 신 프타만 햇살이 비치지 못하도록 설계돼 있었다. 대신전 바로 옆에 람세스2세의 왕비 네페르타리를 모신 소신전은 상대적으로 아담했다.

여행객들이 람세스2세의 왕비인 네페르타리에게 바쳐진 아부심벨 소신전을 둘러본 후 나오고 있다.
여행객들이 람세스2세의 왕비인 네페르타리에게 바쳐진 아부심벨 소신전을 둘러본 후 나오고 있다.
아부심벨신전의 건물 곳곳에 여행자들의 낙서가 새겨져 있다. 몰지각한 낙서를 새긴 그들도 이제는 고인이 됐다.
아부심벨신전의 건물 곳곳에 여행자들의 낙서가 새겨져 있다. 몰지각한 낙서를 새긴 그들도 이제는 고인이 됐다.

그런데 이 거대한 신전이 당초 이 자리에 세워진 것이 아니었다. 1902년 아스완에 홍수조절용 댐이 완공됐는데 몇 차례 범람하자 1971년 이곳 상류에 아스완 하이댐을 다시 세우게 된다. 댐 건설로 수위가 60m 높아지면 신전이 수몰될 것이라는 경고가 나오자 유네스코가 팔을 걷어붙였다. 원형대로 신전을 70m 높은 지점으로 끌어올리는 대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암벽에 1만7,000개의 구멍을 뚫고 석상을 1,000여개의 조각으로 해체해서 옮기고 붙였다.

기념품 가게를 지나 아스완으로 돌아오는 길에 신전 이전의 주범인 아스완 하이댐을 들렀다. 물주머니 상류와 바짝 마른 하류 쪽을 번갈아 둘러보면서 궁금증 하나가 떠올랐다. 어릴 때 들었지만 평생 잘 이해되지 않는 문구가 있었다. 이집트가 나일강의 선물이란다. 나일강이 선물한 것이 이집트라니 무슨 말장난일까 싶었다.

1971년 완공된 아스완 하이댐의 하류쪽 전경. 이 댐은 높이 111m, 길이가 3.6㎞에 이른다.
1971년 완공된 아스완 하이댐의 하류쪽 전경. 이 댐은 높이 111m, 길이가 3.6㎞에 이른다.

카이로에서는 느낌이 오지 않았는데 아스완에 와보니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다. 이곳은 물이 없으면 사람이 살 곳이 못 됐다. 지금도 도시는 나일강 주변으로 형성되어 있고 조금만 벗어나면 사막이다. 강물을 퍼 나르는 것도 한계가 있으니 옛날에는 말할 나위도 없다. 겨우 강 주변에서만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것이다.

댐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나일강이 7월 하순이면 범람했다. 100일 가까이 나일강 하류, 지중해 인근 지역은 물난리를 맞았다. 그런데 강이 범람한 결과 광활한 삼각주가 옥토로 바뀌는 기적이 해마다 반복됐다. 사람들은 삼각주로 모였다. 정확하게 얘기하면 이집트는 나일강 홍수의 선물이었던 셈이다.

글ㆍ사진=전준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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