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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한국일보 신춘문예] 동화 당선작 ‘이제부터 내 이름은’

입력
2019.01.01 04:40
수정
2019.01.02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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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박구원 기자
일러스트= 박구원 기자

“고양이 이름이 고양이라고?”

수의사 선생님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널 보았다. 넌 선생님의 눈을 피했다.

“나이는?”

“한 살쯤 됐을 걸요.”

“진짜 주인하고는 아직도 연락 안 돼?”

넌 입을 꾹 다물었다. 선생님이 더 물으려하자 넌 통조림이 높게 쌓인 진열장을 향해 등을 돌렸다. 휴대폰만 만지작거리는 널 보며 선생님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러니까 이름은 고양이, 수컷, 나이는 한 살로 추정. 진짜 주인은 지금 없고…대신 맡고 있던 임시보호자는 장태호.”

선생님은 컴퓨터에 내 정보 입력을 마친 뒤 핀셋으로 솜뭉치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한쪽 팔로 내 몸을 지그시 누르기 시작했다.

“곧 집에 가겠네. 얼마나 다행이니? 그치?”

선생님이 날 보며 웃었다. 나도 웃고 싶었다. 그러나 내 목엔 거대한 깔때기가 씌워져 그럴 수 없었다. 다리는 두꺼운 붕대로 칭칭 감겨 있었다. 돌을 달아둔 것처럼 무거웠다. 어쩌다 이 꼴이 된 걸까.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아가, 가만히 있어. 약 발라야 하니까.”

조금만 움직여도 살갗이 찢어질 것 같았다. 무슨 일이 있던 건지 모르겠지만 큰 사고를 겪은 건 분명한 것 같았다. 옆구리와 등이 허전했다. 털을 다 밀어내서 살갗이 훤히 드러나 있었다. 살갗엔 붉게 그은 줄처럼 발톱 자국이 가득했다.

“조금 따끔….”

선생님은 물약을 적신 솜뭉치로 이마를 문지르기 시작했다. 이마 위로 불길이 확확 지나가는 것 같았다. 솜뭉치가 이마에서 허벅지로 옮겨갔을 때 나도 모르게 앞니를 드러냈다. 입에서 침이 질질 새어나왔다. 선생님은 내 입가를 따뜻한 수건으로 닦아주었다.

“마취 깨느라 힘들었을 거야. 우리 아기, 마지막 치료까지 잘 참았어.”

넌 그대로였다. 선생님이 네게 약봉지를 건넬 때도, 치료를 마치고 나갈 준비를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똥 씹은 얼굴을 하고 휴대폰만 만지작거렸다.

“계좌번호 이거 맞죠? 치료비는 우리 엄마가 부쳐주실 거예요.”

“치료비는 절반만 받을게. 넌 진짜 주인도 아니잖아.”

“진짜 주인 오면 나머지 반도 다 내라고 할게요.”

너의 말에 선생님이 깔깔거리며 웃었다. 선생님은 나를 품에 안아 이동가방에 넣어주었다. 넌 가방을 두 손으로 받아 안았다.

“이제 이건 떼어도 되겠지?”

선생님은 병원 유리벽에서 ‘주인을 찾습니다’ 종이를 떼었다. 그 글자 밑엔 바보 같은 표정의 내 사진도 붙어 있었다. 넌 병원을 나와서 오르막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너의 겨드랑이에서 고약한 땀내가 났다. 얼마 만에 맡아보는 너의 냄새인지 모른다. 걸어가면서도 계속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난 알고 있었다. 네가 누구한테 문자를 보내고 있는지.

“사람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넌 문자를 보내다말고 휴대폰을 점퍼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너의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게 느껴졌다. 지금 네가 화가 나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만큼 나를 미워하고 있다는 것도.

넌 저녁마다 백팔계단 모퉁이에 앉아있었다. 산동네로 오르는 가파른 계단을 사람들은 백팔계단이라고 불렀다. 난 창 틈으로 가끔 널 본 적이 있다. 넌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꼬마야, 안녕.”

나의 주인 형이 가끔 쓰레기를 버리러 나올 때 너와 인사하는 소리를 몇 번 들은 적이 있다. ‘여기서 뭐하니?’ 하고 물으면 넌 ‘그냥 있어요’라고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주인 형이 사료와 모래 그리고 장난감을 커다란 봉투에 담고 있었다. 형은 날 이동가방에 넣고 현관문을 나서 어디론가 향했다. 바로 네가 앉아있는 백팔계단이었다.

“부탁이 있는데….”

“무슨 부탁이요?”

“딱 일주일만 돌봐주면 안 될까? 급하게 출장을 가야해서.”

주인 형은 내가 담긴 이동가방을 네게 내밀었다. 그게 너와의 첫 만남이었다. 넌 이동가방의 촘촘한 망 틈으로 날 보았다. 네 얼굴엔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었다.

“출장이 뭔데요?”

“일하러 가는 거 있잖아. 잠깐 볼 일 있어서 다른 곳으로 가는 거.”

주인 형은 너의 표정을 살폈다.

“저 고양이 싫어하는데요.”

넌 나를 주인 형 쪽으로 밀어냈다. 형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런데요.”

갑자기 넌 조심스레 끊어진 말끝을 다시 이었다.

“만약 돌봐주면 뭐 해주실 건데요?”

밤 골목에 가로등이 켜진 것처럼 형의 얼굴이 다시 환해졌다.

“하고 싶은 걸 말해봐. 다 들어줄게.”

넌 뭔가를 골몰히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놀이공원…가보고 싶어요.”

형은 네 부탁을 흔쾌히 들어주기로 했다. 손가락 약속도장도 찍었다. 놀이공원을 말할 때 너의 눈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그곳은 어떤 곳일까. 혼자 상상하던 사이 형은 등 뒤에 숨겨둔 커다란 봉투를 네게 내밀었다. 봉투에서 사료와 장난감, 모래를 차례대로 꺼내놓으며 사용법과 주의사항을 이야기했다.

“연락처도 주셔야죠.”

너의 부탁에 형은 당황한 눈치였다. 형은 다급히 주머니에서 껌 종이를 꺼냈다. 그리고 네가 갖고 있던 연필로 연락처를 적어 주었다. 넌 그것을 받으며 형에게 물었다.

“그런데 얘 이름이 뭐예요?”

“이름? 그냥 고양이라고 불러.”

넌 고개를 갸우뚱했다. 내게 이름이 없다는 게 이상하다는 눈치였다.

너희 집은 방과 거실과 부엌이 함께 있는 단칸방이었다. 현관문 옆엔 빈 박스가 산처럼 쌓여있었다. 넌 열시가 넘어 일을 마치고 돌아온 엄마에게 나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엄마. 놀라지 마요.”

넌 크게 잘못한 사람처럼 엄마 눈치를 살폈다. 이제 난 쫓겨날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친구가 잠깐만 맡아달라고 했어요.”

넌 손가락으로 이동가방 속 날 가리켰다.

“친구? 누구?”

네 입에서 나온 친구라는 말에 엄마의 눈이 동그래졌다.

“엄마한테 친구 얘기한 건 처음 아니냐?”

엄마는 무척 기뻐하는 모습이었다. 네게 어떤 친구냐고 자꾸 물었다. 넌 그냥 아는 친구이고 별로 친하진 않다고 했다. 키가 크고 여행을 자주 다니는 것 같다고도 말했다.

“어떤 친구인지 몰라도 널 믿어서 맡긴 걸 거다. 잘 돌봐주자.”

엄마는 네게 더 묻지 않았다. 이튿날부터 너의 엄마는 검은 봉지에 순대와 돼지내장을 담아와 그릇에 가득 부어주었다. 일하는 식당서 남은 것을 챙겨온 거라고 했다. 너의 엄마는 늘 바빴다. 일을 마치고 돌아와서도 밤늦은 시간까지 골목 마트에서 박스를 모아오는 일을 했다. 건물 복도엔 박스들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복도에 둘 곳이 부족하면 집 안에 가져와 현관문 옆에 쌓아뒀다. 너의 엄마는 밤늦게 들어왔고, 새벽 일찍 나갔다.

난 너의 엄마가 쌓아둔 박스 위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가끔 잘못 기어올라 쌓아둔 박스를 와르르 무너뜨리기도 했다. 하지만 넌 화를 내지 않았다. 그곳에 몰래 실례를 할 때도 말없이 젖은 상자를 치워주었다. 넌 날 잘 돌봐주었다. 네 이불 속에 허락 없이 파고들 때도, 네가 게임할 때 모니터를 가릴 때도 넌 날 한 번도 팽개치지 않았다. 계속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 집에서. 우린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확신도 들었다.

그렇게 약속했던 일주일이 흘러갔다. 마지막 날, 너의 엄마는 치킨 파티를 열어주었다. 작은 상자에 프라이드치킨이 가득 들어있었다.

“내일 친구가 직접 데려가기로 했니?”

“아마도요.”

너는 치킨 다리를 입에 문 채 작게 대답했다.

“엄마가 맛있는 걸 해줘야 하는데…. 언제 엄마 있을 때 꼭 놀러오라고 해.”

너의 엄마는 치킨은 먹지 않고, 뼈를 바르기만 했다. 살코기만 골라 일일이 내 앞에 놔주었다. 행복했다. 그러나 그런 시간을 늘 짧은 법이었다.

다음날, 주인 형은 널 찾아오지 않았다. 너는 형이 살던 건물을 찾아갔다. 형의 집은 비어있었다. 이를 지켜보던 이웃집 아주머니가 이백오호 청년은 일주일 전에 이사 갔다고 얘기해주었다.

“연락이 안 돼? 세상에 친구 사이에 그러면 못 쓰지.”

친구가 생겨 좋아하기만 했던 너의 엄마도 따져 묻기 시작했다. 너는 친구의 여행이 길어질 것 같다고 둘러댔다. 하지만 일주일이 보름이 되도록 주인 형은 연락이 없었다. 전화도 받지 않았다. 처음부터 연락 안 되는 번호였는지 모른다. 하지만 너는 포기하지 않고 형에게 문자를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넌 나를 품에 안고 현관문을 나섰다. 넌 한참동안 백팔계단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살폈다.

“이젠 어쩔 수가 없어.”

넌 나를 계단 끝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곧장 등을 돌려 집으로 향했다. 철컥. 현관문이 잠겼다. 계단 주변이 조용해졌다. 바람이 거세게 불어왔다. 구름이 뭉게뭉게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었다.

이젠 어떻게 하지. 머릿속이 까마득했다. 이곳은 나의 영역이 아니었다. 달아나야 했다. 하지만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난 갈 곳이 없었다. 날은 금세 어두워졌다. 계단 옆엔 높은 담장 하나가 있었다. 담장 밑으로 사람 손바닥만 한 그림자가 하나 둘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사방에 숨어있던 고양이들이 하나 둘 몰려오고 있던 것이다.

크르르릉. 등 뒤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크르르릉. 그 소리가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뒤를 돌아보았을 때였다. 검은 얼굴에 흰 반점을 가진 녀석이 내 이마를 앞발톱으로 찍어 내렸다. 그 다음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깨어났구나. 축하해.”

동물병원의 진료대 위에서 눈을 떴을 때 선생님이 내 이마를 어루만지고 있었다.

“내가 생명의 은인이니까 똑똑히 봐 둬.”

선생님은 내 뺨을 살짝 꼬집었다. 언제부터 병원에 누워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선생님이 위험 상황에서 날 살려준 것만은 분명한 것 같았다.

“아가, 주인을 찾을 때까지 우리 며칠만 기다려보자.”

하지만 며칠을 기다려도 주인이 오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었다. 다시 거리로 쫓겨나게 될 것이 뻔했다. 쌓여가는 골목 쓰레기처럼 머릿속이 무거워져갔다. 그런데 며칠 뒤, 거짓말처럼 네가 날 찾아왔다.

“너… 맞구나.”

넌 동물병원 유리벽에 붙은 사진과 날 번갈아보며 말했다. 널 불러보았다.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온힘을 다해 널 불렀다. 넌 씩씩거리며 진료대 앞에 주저앉았다. 화를 참는 것인지, 울음을 참는 것인지 알 수는 없었다.

넌 백팔계단을 오르고 있다. 조금만 더 가면 너희 집이 나올 것이다.

“엄마, 솔직히…. 그게 있잖아….”

넌 계속 중얼중얼 혼잣말을 한다. 네 입에서 뿌연 입김이 쉼 없이 토해져 나온다. 엄마에게 중요한 얘길 꺼내려는 것 같다. 저기 너희 집이 보인다. 넌 가방을 들어 촘촘한 망 틈으로 날 살펴본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너의 커다란 눈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있잖아. 이제부터 네 이름은….”

넌 현관문 문고리를 힘차게 잡아당긴다. 집안의 따뜻한 공기가 온몸을 타고 흐를 때 난 나의 이름을 또렷하게 들을 수 있었다.

최영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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