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서 여야 지도부 만나 통과 당부
“이견 좁혀져…내일 법안 윤곽”
“용균이는 이런 구조를 만든 정부가 죽인 겁니다. 이번에도 법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우리 아들들이 또 죽습니다.”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혼자 작업 중 숨진 비정규직 노동자 고(故)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씨가 24일 국회를 찾았다. 크리스마스 전날 김씨가 아들 분향소에서 국회로 발걸음을 옮긴 이유는 ‘위험의 외주화 방지법(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 처리를 촉구하기 위해서다. 이날까지 국회 환경노동위 고용노동소위가 산업안전법 심사에서 접점을 찾지 못하면 연내 처리가 어려울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한걸음에 달려 온 것이다.
여야 지도부를 일일이 찾은 김씨는 “용균이의 동료들만이라도 안전하게 일하게 해달라”면서 법안 처리를 당부했다. 김씨의 절규 앞에 여야 지도부는 일제히 “국회의 책임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김씨는 여야의 다짐을 믿고 밤 늦게까지 환노위 회의장 앞을 지켰지만, 여야는 끝내 세부 사항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 “정말 열악하고 처참한 현실 몰랐다…용균이 다시 살려달라”
이날 여야 4당 대표를 만난 김씨의 한마디 한마디에는 자식을 잃고 억장이 무너져 내린 부모의 슬픔이 고스란히 배 있었다. 가장 먼저 이정미 정의당 대표를 찾은 김씨는 “우리 아들은 죽었지만 무언가 했다는 의미를 부여해 주고 싶다”며 “여러분들이 우리 용균이를 다시 살려주시길 간곡히 바란다”고 눈물로 호소했다.
여당인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만난 김씨가 아들의 죽음을 자책할 때는 주변인들의 마음도 같이 무거워졌다. 그는 “나라가 하는 기업이니 다른 기업보다 낫겠지 싶었는데 정말 열악했고 처참했다. 저는 정말 몰랐다”며 “내가 이런 곳을 믿고 보냈구나, 조금 더 관심을 갖고 말을 걸었다면 알았을 텐데 자책감이 든다”고 입술을 깨물었다. 김씨는 그러면서도 “국민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나라가 될 수 있도록 진심으로 부탁 드린다”며 “우리 아들들이 또 죽는 걸 저는 더는 보고 싶지 않다”고 법안 처리를 재차 당부했다. 이에 이해찬 대표는 떨리는 목소리로 “사고가 재발되지 않게 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정 안되면 비상대책을 강구해 아드님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여야 합의에는 실패했지만 의견접근…27일 본회의 처리 가능성 높아져
김씨는 이해찬 대표를 만나기 전 법안 심사가 이뤄지는 환노위 회의장을 직접 찾았다. 그는 소위원장인 임이자 자유한국당 의원의 손을 꼭 잡고 법안 처리를 요청했다. 김씨는 소위가 끝난 저녁 8시까지 국회를 떠나지 않고 소회의장인 국회 본청 621호 앞을 지켰다. 하지만 여야는 이날 10시간 가까운 논의에도 최종 합의에는 이르지 못했다. 다만 김씨의 간곡한 바람을 외면할 수 없었던 여야는 이날 당초 예상보다 상당한 의견 접근을 이뤘다. 법안 처리에 미온적이던 한국당도 기존 입장을 바꿔, 정부가 제출한 전부개정안을 대부분 수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핵심 쟁점인 ‘원청 책임 강화’는 사실상 합의에 이른 것으로 전해졌다.
막판까지 의견 차를 좁히지 못했던 ‘하도급 금지’와 처벌 규정에 대한 각 당의 논의 과정만 순조롭게 진행되면, 26일 오전 소위에서 법안 통과가 가능할 전망이다. 실제 임이자 의원은 소위 산회 직후 기자들과 만나 “이견이 많이 좁혀졌다”며 “26일에는 윤곽이 나올 것 같다”고 전망했다. 소위를 통과하더라도 환노위 전체회의와 법제사법위를 거쳐야 하지만, 27일 예정된 본회의 처리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다. 김씨는 소위를 끝내고 나오는 위원들을 일일이 붙잡고 “유족들이 끝까지 지켜보겠다”며 마지막 남은 힘으로 법안처리를 당부했다.
류호 기자 ho@hankookilbo.com
이한호 기자 han@hankookilbo.com
정준기 기자 j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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