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현ㆍ유희 ‘익명의 독서중독자들’
책읽기 소재로 그린 이색 웹툰
연재 때 입소문 타고 단행본 출간
웹툰이 B급, 오타쿠, 병맛 같은 것을 주된 키워드로 삼는다면, 이 시대 ‘책읽기’는 확실히 웹툰 소재가 될 자격을 갖췄다. 쿨하고 힙한 세상에서 책읽기는 이제 남들에게 내놓고 말하기 어려운 소재가 되어서다. 그래서 나왔다.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사계절). 사회 소수자가 되어버린 독서 중독자들이 정체를 숨기고 만나는 모임에서 일어난 일을 만화로 그렸다.
저자, 역자 소개가 지나치게 장황하고 번드르르 한 책은 그냥 패스한다, 명징하다는 둥 농밀하다는 둥 하는 ‘문체 타령’으로 빠지기 쉬운 소설 읽기는 본격적인 독서가 아니다, 불특정 다수의 평균적 취향이 반영된 베스트셀러 목록은 거부한다, 심지어 읽은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면 자신의 안목에 수치심을 느껴야 한다, 산 책을 반드시 다 읽을 필요는 없다, 여러 책을 돌려가며 동시에 읽는다 등등.
즐겨 책을 뒤적대보는 이들이라면 허리를 꺾고 웃을만한 에피소드들이 등장한다. 웹툰 연재 때 출판사 편집자들 사이에서 입 소문이 쫙 돌고, 단행본 내자고 제안한 출판사만 6곳이었다는 이유를 알 만 하다.
스토리를 짠 이창현 작가, 그림을 그린 유희 작가를 최근 서울 세종대로 한국일보에서 만났다. ‘에이스 하이’ ‘빅토리아처럼 감아 차라’에 이은 세 번째 작품이다. 제목 ‘익명’에 어울리게, 얼굴을 가리고 촬영해 응했다.
-독서 코믹 만화란 발상이 특이한데 원래 책을 좋아하나.
이창현(이)= “개인적으론 좋아한다. 예전에 한 구청 도서관에서 인문학자 강유원이 진행한, 10개월짜리 고전강연을 들었는데 엄청 재미있었다. 그 느낌을 만화로 표현해보고 싶었다.”
유희(유)= “전 아니다. 하하하. 책 별로 안 좋아한다.”
-책 뒤에 만화에 등장한 대사와 책의 출처, 서지사항을 꼼꼼히 기록해뒀다.
이= “단행본 제안을 받았을 때는, 출판사 편집자들이 좋아한다고 세상 사람들이 다 좋아하는 건 아닐 텐데 했다. 하하. 농담이고, 당연히 좋았다. 특히 좋았던 게 그 부분이다. 웹툰할 때는 안 그래도 책 얘기가 많은데, 거기다 이 대사는 이 책에서 따왔고, 여기서 언급되는 책은 이런 책이고, 설명을 붙인다는 건 만화를 보지 말라는 뜻이라 생각해서 다 뺐다. 책 만들면서 싹 다 정리했는데 너무 좋다.”
-책읽기를 그림으로 표현하기 어렵지 않은가.
유= “책 내용이 많이 나오니까 그림을 최대한 간단하게 가려 했다. 코믹 만화라는 게 원래 내가 하는 것보다 좀 더 색을 많이 쓰고 그러게 마련인데, 이번 작업을 그와 정반대로 갔다.”
이= “웹툰은 아래로 스크롤 하면서 쭉 보는 건데, 진득하게 보기를 기대한다는 게 쉽지 않다. 글이나 문장이 많이 등장하지만, 이 만화를 즐기기 위해 그걸 다 읽을 필요는 없다는 느낌을 어떻게 전달할까, 둘이서 고민 많이 했다.”
유= “쓱 넘겨보면 이해가 안될 수 있다는 게 제일 큰 걱정이었다. 사실 이건 독자에게 무리한 걸 요구하는 작업이기도 했다. 작업 자체는 아주 재미있었다.”
-까치 출판사의 책 표지 디자인 얘긴 책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다 한번씩은 하는 얘기다. 까치 책 즐겨보는지.
이= “즐겨보진 않았는데 인상적이긴 했다. 예전 까치 표지는 아주 심각했다.”
유= “그래도 자주, 오래 보다 보니까 클래식한 맛이 나는 것 같더라.”
이= “맞다. 너무 단순한 것 같지만, 그렇기에 아주 진지해 보이기도 한다.”
유= “까치 표지 디자인 이야기는 웹툰이니까 농담처럼 넣은 거다. 우리는 까치를 사랑한다(웃음).”
-자기계발서 맹신자, 그래서 독서모임에 계속 쫓겨나는 캐릭터 이름이 ‘노마드’다. 나름대로 의미심장한데, 어떻게 정했나.
이= “유행을 가장 잘 반영하면서도 사람들에게 반감이 덜할 이름을 고민하다 정했다. 생김새도 말끔하게 그리려 했다. 처음 봤을 때 주인공으로 착각하게 하는 게 우리 목표였다.”
-그 외에도 마들렌 이야기처럼 독서에 대한 에피소드들이 좋은데 따로 취재한 것인가.
이= “개인적 경험, 그간 들었던 이야기들을 넣었다. 혹시 잘못된 게 아닐까 싶어 그리기 전에 독서법을 다룬 책들을 샅샅이 뒤지면서 확인하긴 했다. 나만 이상한 소리를 할 순 없으니까.”
-그래도 굳이 책읽기를 소재로 삼았는데.
이= “원래 책을 열심히, 잘 읽는 사람은 만화 속 에피소드를 그냥 개그 만화 수준에서 즐기거나 공감만 하면 된다. 읽고는 싶은데 새로 시작하려니 부담되고 어렵다고 생각하는 분들에게 ‘책, 그거 샀다고 꼭 다 안 읽어도 돼’ ‘너 편한대로 마음대로 읽어도 돼’ 그런 말을 전해주고 싶었다.”
유= “맞다. 제 돈 들여 자기가 산 건데,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도 책에 대해서는 ‘사놓고 안 읽었다’는 죄책감이 강하다. 그런 거 없이 그냥 편히 즐기면 그 뿐이란 메시지로 쾌감, 해방감 같은 걸 주고 싶었다. 실제 독자 반응 같은 걸 봐도 그래서 좋았다는 얘기를 제일 많이 들었다.”
-어떻게 둘이 함께 만화작업을 하게 됐는지.
이= “만화가를 꿈꾸다 김진태 작가가 스포츠신문에 연재하던 ‘시민 쾌걸’에 스토리 작가로 합류했다. 그 때 김진태 작가가 내가 그린 그림을 보더니 그림 그리진 말라고 하더라. 하하. 그래서 스토리에 좀 더 집중하기로 했다. 그 때 유희 작가를 만나게 됐다.”
유= “만화과 졸업 전인 2007, 8년쯤 만나서 의기투합했다. 데뷔 자체는, 지금은 없어진 한 만화사이트에서 했다. 함께 하는 게 재미있다. 이창현 작가가, 뭐랄까, 지적 바탕이 있다고 할까. 그런 독특한 스토리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도전하는 재미가 있다. 또 개그 만화지만 지나치게 과장하는 걸 못 견뎌 한다.”
-웹툰 연재 때 반응은 어땠나.
이= “10~20대에게 인기가 있어야 하는데 우리 만화는 30대 이상 남성에게 인기가 있었다.그 분들은 콘텐츠 소비에 제일 적은 돈을 쓰시는 분들이다. 그래서 유료가 풀릴 때까지 참고 기다리시더라. 하하.”
유= “젊어서는 성급하게 하시는 분들이 나이 들어선 인내심이 너무 좋다. 담배 한 개피에 200원인데, 그 200원 아끼려고 3주를 참으시더라. 참지 말고 보세요.”
-다음 작품은?
이ㆍ유= “없다. 빨리 차기작을 하고 싶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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