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임시정부 파리위원부 대표를 지낸 독립운동가 김규식(1881~1950)이 파리를 떠나기 직전 한반도 일제강점에 대한 서구 열강의 무관심에 호소한 연설이 처음 확인됐다.
프랑스 일간 라 랑테른(La Lanterne)이 1919년 8월 8일자 기사에서 김규식이 파리외신기자클럽 연회 겸 자신의 환송연에서 한 연설을 소개한 내용이다. 최근 재불 독립운동사학자 이장규씨가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해당 기사를 찾아냈다.
임시정부 수립으로 임정 외무총장, 파리위원부 대표를 겸했던 김규식은 3·1운동 직후인 1919년 3월부터 파리로 가 서구 열강을 상대로 5개월간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연설 당시는 1919년 8월 초 이승만의 초청으로 미국 행을 앞둔 때였다.
이 연회에는 프랑스 국회의원 루이 마랑, 베이징대학 교수 이유잉, 전 러시아 국회 의장 미노르씨 등 파리의 명사들과 상원의원 등이 참석했다.
기사에 따르면 김규식은 “사실 누가 여기에서, 옛날 선원들이 섬으로 알았던 머나먼 한국을 걱정하겠나. 아무도 없을 것”이라며 “있다면 아마 한국의 매력적인 수도이고,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진 서울까지 직접 가는 호기심을 가졌던 루이 마랑씨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체류 경험이 있는 루이 마랑은 강제 병합 문제에 대해 잘 알고 있던 인물로 2년 뒤 한국친우회를 만들어 한국의 독립운동을 돕기도 했다.
기사는 파리 평화회의에 와서 냉대를 받아야 했던 김규식의 울분을 생생하게 전했다. 기자는 “(김규식은) 오늘날 일본의 속박에서 꼼짝도 못하고 떨고 있는 2,000만 영혼들의 간청에도 성의 있게 답하지 않는 프랑스에 경악했다”며 “이러한 프랑스인의 무관심에 파리 평화회의 한국 대표단의 단장 김규식은 분을 참지 못했다”고 적었다. 또 “결론은 일본이 아시아에서도, 미국에서도 큰 공감을 얻지 못하고 여러 알자스 로렌들을 힘들게 떠안고 있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알자스 로렌은 프랑스와 독일 접경지대로 19세기 후반 프랑스-프로이센 전쟁(보불 전쟁)때 프랑스가 독일에 뺏겼다가 다시 되찾은 바 있다. 일본의 한국 침탈을 독일의 알자스 로렌 강제병합에 빗댄 것이다.
장석흥 국민대 사학과 교수는 “파리평화회의 대표단이 냉대 받고 좌절한 심경이 생생하게 표현된 자료는 처음”이라며 “프랑스에 대한 서운한 마음을 그대로 옮겨 쓴 프랑스 언론의 시도로 괄목할 만하다”고 평가했다. 이 기사는 27일 서울 광복회관에서 열리는 심포지엄 ‘3·1운동과 프랑스 언론’에서 소개된다.
이소라 기자 wtnsora2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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