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초 나폴레옹 전쟁 직후 형성된 이른바 ‘빈 체제’의 골격은 전쟁 이전 해외 식민지 지배력을 회복하겠다는 유럽 열강들의 집념이었다. 거기에 위협을 느낀 미국의 선택이 1823년의 ‘먼로 독트린’, 즉 아메리카 대륙에 대한 영국과 러시아의 영향력을 차단하고, 대륙에서 독점적 지위를 지키겠다는 고립주의였다.
하지만 먼로 독트린은 대륙 안에서 미국의 영토를 최대한 확장하는 팽창주의이기도 했다. 거기에 스스로 이념적 정당성을 부여한 구호가 이른바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 혹은 ‘자명한 계시’란 거였다. 프로테스탄트의 기독교 정신과 건국 이념인 민주ㆍ자유주의를 북미 대륙 전체로 확장하는 것이 신의 계시이며, 그것을 위해 헌신하는 것이 미국인의 운명적 과업이라는 것이 이 말의 의미였다. 1845년 12월 27일, 당시 뉴욕의 저명 저널리스트였던 존 오설리번(John O’Sullivan. 1813~1895)이 ‘뉴욕모닝뉴스’란 신문 칼럼에 이 말을 처음 썼고, 이후 미국의 사실상 모든 (정복) 전쟁의 이념에 이 관념이 스몄다.
1800년 무렵 약 530만명이던 미국 인구는 1850년 2,300만명으로 불어났다. 유럽 흉작과 프랑스혁명 여파로 이민자는 1850년대 이후 더 늘어났고, 그들은 남부 농장지대보다 북부 공장지대로 몰렸다. ‘Go West’의 서부개척은 북부 인구 압박의 타개책이기도 했다. 대서양 북부 연안의 한 도시에서 시작된 미국의 영토 개척은 19세기 내내 서쪽으로는 태평양, 남쪽으로는 멕시코의 리오그란데 강까지 거침없이 전개됐고, 서부의 오리건(1846)에서 캘리포니아와 뉴멕시코(1848), 남부 텍사스(1845)를 사실상 전쟁을 통해 차례로 병합했다. 페리 제독의 함대가 일본에 개항을 요구하며 함포를 쏜 건 1853년이었고, 러시아로부터 알래스카를 사들인 건 1867년, 잠시나마 한국의 강화도를 점령한 것은 1871년이었다.
필리핀의 독점적 지배를 보장받는 조건으로 일본의 조선 지배를 약속한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맺은 것은 1905년이었다. 1차 대전을 ‘유럽전쟁’이라 부르며 ‘중립’을 고수하던 미국은 1917년에야 참전했고, 2차 대전에도 진주만 피습 직후인 41년 말에야 발을 담갔다. 미국 고립-팽창주의의 모순적 관념인 ‘명백한 운명’이 실로 돈독한 하나로 구현된 게 트럼프 체제의 미국일지 모른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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