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A씨는 회사에서 걸어서 30분 거리에 있는 사장의 집을 매주 3번씩 출근도장을 찍었다. 회사 업무와는 상관없는 쓰레기 분리수거와 장보기, 약수 떠오기 같은 사장의 집안일을 처리하기 위해서였다. 사장의 딸이 학원을 가거나 운동을 하러 가면 운전기사 노릇도 했다. 최근 부당한 월급 삭감까지 당한 A씨는 결국 사표를 던졌다. 그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참고 견뎠는데 이제는 사장이 조사를 받고 합당한 처벌을 받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A씨 사례처럼 노동ㆍ인권단체 ‘직장갑질119’에 올해 하반기 접수된 직장 내 괴롭힘 제보는 1,403건에 이른다. 그 중 50건을 직장갑질119가 23일 공개했다.
한 공공기관장은 자신의 지인 선거운동에 직원들을 동원하거나 상사 흰머리 뽑기와 안마하기 같은 일을 매일같이 시켰다. 정규직 전환을 앞두고 회사에서 키우는 개를 목욕시키는 일을 지시 받아 거절하지 못했다는 경우도 있었다. 지난해 언론을 통해 크게 보도됐던 장기자랑과 김장 동원 같은 사례는 최근 6개월간 각각 2건밖에 접수되지 않은 반면, A씨가 겪은 것 같은 잡일 강요나 폭행, 폭언 등의 괴롭힘은 여전하다는 설명이다.
성희롱과 폭력 등을 상급기관에 알렸다가 2차 가해를 당했다는 제보도 이어졌다. 직장갑질119는 “지점장의 성희롱 사실을 본점에 제보했다가 지사장에게 이른바 ‘신고 가해자’로 낙인 찍힌 제보자도 있었다”고 전했다. 괴롭힘을 신고할 곳도 마땅치 않고 신고해도 적절한 후속 조치가 이뤄지지 않아 2차 가해가 발생한다는 분석이다.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직장갑질119는 관련 법안의 조속한 국회 통과를 촉구했다. 앞서 지난 21일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으로 불리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찬열 더불어민주당 의원 대표발의)과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개정안이 각각 소관 상임위원회를 통과했다. 근로기준법개정안은 직장 내 괴롭힘을 ‘신체적ㆍ정신적ㆍ정서적 고통’ 등으로 명확히 규정하고, 괴롭힘이 발생하면 사용자가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 조치하는 등의 내용을 담았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개정안의 골자는 직장 내 괴롭힘 등 정신적 스트레스로 질병이 발생하면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는 내용이다. 박점규 직장갑질119 운영위원은 “올해 국회에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통과되지 않으면 직장 갑질에 고통 받는 직장인들의 공분이 국회로 향할 것”이라고 말했다. 두 개정안은 오는 26일 열리는 법제사법위원회와 27일 본회의 논의를 앞두고 있다.
진달래 기자 az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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