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작가 에바 알머슨展
해녀 프로젝트 등 200여점
둥글넓적한 얼굴의 여성이 미소를 짓고 있다. 알록달록 만개한 꽃들이 머리카락 대신 풍성하게 물결친다. 그림 속 그녀를 보기만 해도 곧 행복에 빠질 것만 같다. 그녀는 아이들과 밝은 표정으로 서 있기도 하고, 손을 꼭 붙잡고 산책을 하고, 가족들과 두런두런 둘러앉아 식사를 한다.
최근 내한 기자간담회에서 만난 스페인의 에바 알머슨(49)은 마치 자신의 작품 속 ‘그녀’가 금방 튀어나온 것만 같았다. 밝고 사랑스러웠다. 알머슨은 “삶이 항상 재미있고 신날 수는 없지만 그런 기억을 간직하고 기록하려고 그림을 그린다”고 했다. 자신의 경험과 기억을 토대로 그렸지만 자화상은 아니다. 그는 “제가 중시하는 것은 그림을 보는 이들에게 행복하고 재미있는 경험을 선사하는 것이다”라며 “제 일상을 그린 것이지만 누구나 경험했을 행복한 순간들”이라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그의 작품을 보면 누구나 쉽게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리게 된다.
작품은 지극히 일상적이다. 부부, 아이, 형제자매, 반려동물 등 가족들이 주로 등장하고 이들은 함께 밥을 먹거나, 산책을 하거나, 얼싸안고 있다. 알머슨은 “일상의 행복한 순간은 미처 깨닫기도 전에 지나가버린다”며 “행복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행복하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런 감정을 알아채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했다. 그의 작품을 보고 행복한 감정이 든다면 일상의 행복에도 눈을 뜰 수 있다.
그림 속 얼굴은 간혹 눈을 감거나 뜨거나 하는 차이만 있을 뿐, 거의 미소를 짓고 있다. 작가는 “웃는 표정은 저절로 그 사람의 내면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하는 힘을 갖고 있다”면서 “관객들이 쉽게 그림에 공감 하고,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알머슨은 주로 여성을 소재로 그림을 그린다. 작가 자신이 여성이기도 하지만 여성이 가진 부드럽고 관용적인 힘에 주목했다. 제주 해녀의 다양한 모습을 아름답게 그린 ‘해녀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3년 전 외국의 잡지에서 해녀를 처음 본 그는 “잠수복을 입은 해녀는 마치 야생 동물처럼 강인해 보였다”며 “그녀들이 가진 힘, 물질 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제주를 방문했고, 그들의 모습을 스케치했다”고 했다. 그는 2016년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물숨’의 고희영 감독이 지은 동화책 ‘엄마는 해녀입니다’에 삽화를 그렸다. 그는 “해녀들은 자연이 그들에게 선사한 지혜를 갖고 있었고, 그것들을 아주 자연스럽게 딸에게 물려주고, 삶을 이어갔다”며 “여성 특유의 자연스러움과 포용력 등이 진정 그들이 가진 강인한 힘이었다”고 했다.
예쁘기만 한 그림이라는 비판에 대해 알머슨은 “겉으로 보면 그럴지도 모르지만, 포악한 얼굴 뒤에도 아이 같은 순수함과 선의가 분명히 있다고 믿는다”라며 “힘든 일상에도 분명히 행복한 순간이 있듯이 예술은 아름다운 삶을 추구하고, 보여줘야 할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연말연시 동화 같이 아름다운 삶으로 안내하는 알머슨의 전시는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유화, 드로잉, 대형 오브제, 작가 소장품 등 200여점이 한데 모인 세계 최대 규모로 마련됐다. 개막(12월7일) 일주일 만에 관람객이 1만명을 넘었다. 유독 한국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알머슨은 “한국에서 ‘어릴 적 감정을 상기시킨다’는 평가를 종종 듣는데, 감정이 서로 연결돼 동그라미가 완성된 느낌이 들어 매우 행복하다”고 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서울의 풍경, 음식, 건물 등 서울을 주제로 한 신작도 볼 수 있다. 전시는 내년 3월 31일까지.
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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