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4월 30일 퇴위하는 아키히토(明仁) 일왕이 재임 기간 동안 전쟁이 없었다는 점에 대해 안도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왕실 업무를 관장하는 궁내청이 23일 밝혔다.
이날 85세 생일을 맞이한 아키히토 일왕은 지난 20일 도쿄(東京) 고쿄(일왕의 거처)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헤이세이(平成ㆍ1989년 아키히토 일왕 즉위 이후 연호)가 전쟁이 없는 시대로 끝나게 된 것을 진심으로 안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즉위 이후 일본 헌법에 따라 (정치적 권한이 없는) 바람직한 천황(일왕)의 자세를 추구해 왔다”며 “물러나는 날까지 계속해서 그런 자세를 추구하면서 임무를 완수해 갈 것”이라고 말했다. 아키히토 일왕에 이어 현 나루히토(德仁) 왕세자가 내년 5월 1일 새로운 일왕으로 즉위한다.
그는 또 “전후(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일본의 평화와 번영은 전쟁에서의 많은 희생과 국민의 노력으로 구축된 것을 잊지 말아야 하고 전후 태어난 세대에도 올바로 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재임 기간 발생한 동일본대지진이나 한신(阪神)대지진 등의 막대한 인명 피해에 대해선 “말로 다 할 수 없는 비통함을 느낀다”며 사람들이 서로 돕는 모습에 항상 감명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재임 중 오키나와(沖繩), 사할린, 팔라우, 필리핀 등을 2차 세계대전 당시 격전지를 방문해 전쟁 희생자들을 추도한 것에 대해서도 “잊을 수 없다”며 “일왕으로서 여정을 끝내려는 지금, 나를 지지해 준 많은 국민들에게 충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덧붙였다.
아키히토 일왕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재임해 전쟁 가해 책임에서 벗어나지 못한 히로히토(裕仁ㆍ1901~1989) 일왕의 장남이다. 그는 부친과 달리 일본 국민과 고락을 함께 하는 모습을 보이는 데 주력했고, 대외적으로도 ‘위령의 여정’을 통해 화해 제스처를 보이면서 ‘전쟁 책임’이 있는 부친과는 다른 길을 걸었다. 이는 평화 헌법 개정을 자신의 정치적 과업으로 내세우면서 한국 등에 사과를 거부하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행보와도 대조를 이루었다.
그는 지난 2001년 12월 생일 기자회견에서 “내 자신으로서는 간무(桓武) 천황(일왕)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고 ‘속일본기(續日本記)’에 쓰여 있는 데 것에 대해 한국과의 연(緣)을 느끼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이날 일왕의 생일을 맞아 재임 중 마지막 생일을 축하하려는 사람들로 오전부터 고쿄 주변에는 약 2만명의 인파가 몰렸고, 아키히토 일왕 내외와 나루히토 왕세자 내외 등이 나와 시민들의 환호에 손을 흔들며 화답했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