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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미꾸라지 정국, 민정의 실패

입력
2018.12.22 04:40
수정
2018.12.23 10:12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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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기를 위기로 보지 않는 건 권력속성 

 靑, 프로를 미꾸라지라며 서툴게 대응 

 음습한 민정 기능, 관련기관에 넘겨야 

큰 사건을 나중에 뒤돌아보면 슬로우 모션으로 기차가 탈선하는 것 같다. 앞 기관차부터 맨 뒤 객차까지 레일을 벗어나는 것을 알지만 사람들은 사고를 피하려 하지 않는다. 위기를 위기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에서도 위기의 움직임을 충분히 포착할 수 있었지만 사회적 내성은 위기를 느끼지 못하게 했다. 위기가 가장 좋아하는 것도 위기를 위기로 보지 않는 일이다.

2001년 6월 미 중앙정보국(CIA)은 오사마 빈 라덴이 고강도 공격을 계획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7월에는 연방수사국(FBI) 요원이 빈 라덴 추종자들이 미국 항공학교에서 훈련을 받고 있다고 보고했다. 9ㆍ11테러가 발생하기 한달 전 CIA는 대통령에게 빈 라덴이 미국 내에서 공격하기로 결정했다고 브리핑했다. 그럼에도 2차 대전 이후 미국의 최대 실패로 기록된 9ㆍ11사태는 피하지 못했다. 위기를 피하지 못한 것은 정보의 실패가 아니라 조직, 관리의 실패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청와대가 6급 검찰 수사관의 폭로에 휘청대고 있다. 전 청와대 특별감찰단원인 김태우 수사관의 비위 의혹은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으로 번져 검찰 수사로 이어지고 있다. 김 수사관을 미꾸라지로 표현한 청와대 말을 빌리면 ‘미꾸라지 정국’이다. 현 정부를 위해 정보를 수집하던 김 수사관이 자신의 업무를 까발리는 지경은 상식적이지 않다. 하지만 더 상식적이지 않은 것은 그 과정에서 공개돼선 안될 청와대 내부 상황이 청와대 담장을 넘고, 청와대는 문제의 6급 직원과 진실게임이나 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히려 청와대의 대응이 잘못됐거나 엇박자여서 논란이 된 경우도 적지 않다. 더구나 미꾸라지는 10년 넘게 민감한 정보를 다룬 ‘선수’였다. 경제, 외교 등에서 불안감이 커지는 마당에 이런 사안 대응조차 흔들리는 청와대를 보며 국민들은 과거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서툰 대응이 일부 언론의 트집을 낳는 악순환이 거듭되면서 보수진영이 국민 스포츠처럼 정권을 조롱하던 광경은 참여정부에서 목격한 일이다.

‘6급 대처’를 이리 하면 닥쳐올 고래 싸움들은 어찌 헤쳐갈까. 권력 주변에선 지금 검찰과 경찰이 서로 으르렁대고, 한직으로 비껴나 있거나 배제된 엘리트들도 움직이고 있다. 김 수사관의 의혹 폭로와 진위 공방을 바라보는 정치권과 법조계 인사들은 DJ정부의 힘을 빼놨던 옷로비 사건이나, 박근혜 정부의 정윤회 문건을 떠올리고 있다. 4년 전 이맘때 벌어진 실세 정윤회와 문고리 3인방의 국정개입 논란에 대해 박 정부는 ‘지라시 사건’으로 단정했었다. 그러나 진짜 문제가 사태를 이렇게 바라본 청와대의 안일한 대응이었다는 사실은 2년 뒤 탄핵 정국에서 드러났다.

지금 청와대에 위기감 수준이 낮은 것은 특별감찰반 쇄신안에서도 보인다. 쇄신안에 따르면, 이름을 공직감찰반으로 바꾼 특감반에 검찰 경찰 외에 국세청 직원까지 파견 받겠다고 한다. 그러자 많은 전문가들은 YS정부 시절 청와대에 파견된 국세청 직원이 DJ 친인척 계좌까지 뒤지던 일을 떠올리고 있다. 권한이 더 세질 공직감찰반에서 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것이다. 사실 이번에 문제가 된 민정수석실의 기능과 역할은 이전 정부 때와 달라진 게 없다. 같은 시스템에 사람만 바뀌어 같은 일을 하고 있다. 하지만 공무원 직무감찰만 해도 우리 헌법은 민정수석실이 아닌 감사원에 그 권한을 맡기고 있다. 대통령 비서실 직제를 규정한 대통령령이 헌법에 어긋나게 특별감찰반에 감찰 기능을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령의 모법인 정부조직법도 대통령 비서실에 그 같은 집행기능을 규정하고 있지 않다. 법에 근거하지 않은 대통령령은 위헌이거나 초헌법적인 것이다. 지금 민정수석실에서 하는 인사검증이나 대통령 친인척 관리도 인사혁신처와 공직자윤리위원회, 특별감찰관의 법적 권한과 따져봐야 한다. 그래서 과거 정권들처럼 관행에 기대고 있는 적폐라면 과감히 그 음습한 권한을 관련기관에 넘기고 새로운 기능을 찾아야 한다.

이태규 뉴스1부문장


※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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