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워킹그룹 2차회의 ‘제재 예외’ 결론… 남북 유해발굴ㆍ타미플루 지원도 차질없이
26일 철도ㆍ도로 연결 착공식 등 유엔의 대북 제재 면제가 필요한 협력사업들을 남북이 추진하는 데에 청신호가 켜졌다. 대(對)유엔 영향력이 가장 큰 미국의 지지를 받아내면서다.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21일 대북 비핵화 협상 공조 등을 위한 ‘한미 워킹그룹’ 2차 회의를 마친 뒤 카운터파트인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와 함께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기자들을 만나 “오늘 워킹그룹에서 (대북 제재 면제 문제를 논의한 결과) 철도 연결 사업 관련 착공식이 예정대로 진행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외교부에 따르면 닷새 뒤 개성 판문역에서 열기로 남북이 합의한 철도 연결 사업 착공식의 경우 행사를 위해 북으로 가져갈 각종 물품에 대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로부터 제재 예외 인정을 받아야 한다. 외교부 당국자는 “유엔의 대북 제재를 주도하는 미국이 예외로 결론 낸 만큼 행사 전 무난히 면제 승인이 이뤄질 듯하다”고 했다. 정부는 이날 곧장 안보리에 면제 신청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실상 안보리 승인 관문을 넘은 남북 협력 사업은 이뿐 아니다. 이 본부장은 “(워킹그룹을 통해) 남북 유해 발굴 사업도 차질 없이 진행될 수 있게 됐고 북한 동포에 대한 타미플루(독감 치료제) 제공 문제도 해결됐다”고 했다. 남북은 9ㆍ19 군사합의에 따라 내년 4~10월 강원 철원군 비무장지대(DMZ) 내 화살머리고지 일대에서 6ㆍ25 전쟁 전사자 공동 유해 발굴 사업을 벌일 계획이다. 사업에 필요한 발굴 장비가 북한으로 반출되려면 제제 적용이 면제돼야 한다.
미측의 남북 협력 사업 제재 면제 동의는 침묵하고 있는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한 유인책 성격이다. 이날 비건 대표는 회의 뒤 언론에 “단독 및 유엔 제재를 완화할 생각은 없지만, 북미 간 신뢰를 쌓기 위한 여러 방안을 찾을 준비는 돼 있다”고 말했다. 이날 회의 전 조명균 통일부 장관과의 면담에 앞서서도 “우리(한미)의 노력이 성공한다면 한반도에 70년간 드리워진 적대 역사를 끝내고 모든 한민족을 위한 밝은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의 핵심 대북 ‘유화 카드’는 인도적 지원이다. 19일 입국 당시 공항에서 취재진을 상대로 대북 인도 지원이 막히지 않도록 자국민 대상 북한 여행 금지 조치를 재검토하겠다는 요지의 문건을 꺼내 읽기도 했다. 회의 뒤 회견에서 비건 대표는 “북미 대화가 재개되면 2차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구체적 사항을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북한 요구는 오로지 제재 해제다. 이날도 대남 선전 매체 ‘우리 민족끼리’를 통해 “미국 등의 제재ㆍ압박 책동에 편승해 남북관계를 침체시킨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고 불평했다. 제재 완화 중재에 실패한 남측 정부에 불만을 토로한 것이다.
한편, 이 본부장은 워킹그룹 회의 뒤 기자회견에서 “우리 둘(한미)은 내년 초까지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및 평화체제 구축에 중요한 시기라는 데 뜻을 함께했다”며 “그런 의미에서 미국ㆍ북한 간 실무협상이 조속히 개최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비건 대표는 이날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만나서도 비핵화 및 대북 인도 지원 문제를 협의하는 한편 한미 공조를 더 긴밀히 지속하기로 했다고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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