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ㆍ18 민주화운동 당시 헬기 사격을 증언한 고(故) 조비오 신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재판 방청권 응모 일정이 확정됐다. 건강 상의 이유 등으로 담당 법원 이송 신청 및 연기 신청을 제기해 무려 8개월여나 일정이 뒤로 밀렸지만 전 전 대통령의 출석은 여전히 불투명해 재판이 진행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21일 광주지법은 피고인 전두환에 대한 사자(死者)명예훼손 재판의 방청 응모 및 추첨 일정을 발표했다. 재판은 내년 1월 7일 오후 2시 30분 광주지법 201호에서 진행되며 총 103석 중 82석을 신청자 가운데 추첨을 통해 배분할 계획이다. 방청을 원하는 시민은 재판 3일 전인 내년 1월 4일 오전 광주지법 6층 대회의실 입구에 비치된 응모권을 직접 작성해 응모함에 넣어야 한다. 신청자는 본인 신분증을 반드시 지참해야 한다.
응모 가능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전 10시30분까지이며, 현장에서 곧바로 추첨한 뒤 오전 11시 당첨자를 발표한다. 현장에서 구두로 발표할 계획이며 응모한 후 귀가한 당첨자에게는 핸드폰으로 문자 통보하기로 했다.
전 전 대통령의 피소는 지난해 4월 펴낸 회고록이 발단이 됐다. 전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5ㆍ18 당시 헬기 기총소사 사실을 부인하면서, 헬기 기총소사를 목격했다고 증언한 고 조비오 신부를 ‘가면 쓴 사탄’이라고 비난했다. 이에 조 신부의 유족이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면서 검찰의 수사가 진행됐고 지난 5월 3일 불구속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기소 당시 검찰은 전 전 대통령의 수사ㆍ재판 기록, 국방부 5ㆍ18 특별위원회 조사 및 주한미국대사관 비밀전문 등의 자료를 통해 5ㆍ18 당시 헬기 기총소사가 실제로 자행됐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전 전 대통령은 검찰의 소환 조사를 거부한 데 이어 기소 이후에도 다양한 이유를 들어 재판 일정을 미뤄왔다. 특히 전 전 대통령 측은 사자명예훼손 재판과는 별개로 담당 법원 결정에 대한 공방을 대법원까지 이어갔고, 광주지법에서 진행하는 것으로 최종 결정이 났지만 재판 진행은 계속 지지부진했다. 기록물 검토 등을 위해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며 수 차례 재판 연기를 요청하기도 했다. 급기야 지난 8월 27일 첫 재판이 열렸지만 알츠하이머 진단으로 인한 인지 능력 저하 및 기억 상실 증세를 이유로 출석하지 않았다. 형사 재판의 경우 피고인이 반드시 법정에 출석해야 한다.
때문에 우여곡절 끝에 법원이 다시 재판 기일을 잡았지만 전 전 대통령의 출석 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한 상태다. 알츠하이머 투병 논란의 진위와는 별개로 검찰 수사 당시에도 소환 조사에 불응하고 서면 조사에만 응했던 점을 고려할 때 오는 1월 재판에도 출석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일단 광주지법은 원활한 재판 진행을 위해 만전을 기한다는 입장이다. 광주지법은 이날 방청응모 공고와 함께 “(방청 대상자는) 담당 직원의 질서유지 요청 등 공무수행에 적극 협조해 주시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조원일 기자 callme1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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