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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잘 된 신도시, 덜 된 신도시

입력
2018.12.21 18:0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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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가 잡혔다’는 표현은 ‘시스템이 잘 정착돼 기대대로 잘 돌아간다’는 의미로도 쓰인다. 신도시 중에도 자리가 잘 잡힌 곳이 있는가 하면, 아직 그렇지 못한 곳도 적지 않다. 우리나라 신도시 개발 역사상 가장 성공적으로 자리 잡힌 곳을 꼽으라면 역시 서울의 ‘강남’일 것이다. 서울 강남을 신도시로 볼 수 있느냐는 시각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강남 개발안이 처음 등장한 1960년대 중반만 해도 강남은 서울로 여겨지지조차 못했다. 그게 지금은 원조 서울인 강북을 압도할 정도로 자리가 잘 잡힌 것이다.

□ 역대 정권을 거치며 신도시가 본격 개발됐다. 전두환 정부 때엔 1974년 본격화한 강남 개발이 서울올림픽에 맞춰 거의 완료됐다. 노태우 정부 땐 일산, 분당 등 서울 도심 반경 20㎞ 선상에 1기 신도시가 개발됐다. 노무현 정부 땐 김포, 동탄, 판교 등 도심 반경 30㎞ 선을 기준으로 2기 신도시 10개 지역이 발표돼 박근혜 정부까지 이어지며 개발이 진행됐다. 2기 신도시는 서울 도심에서 거리가 먼데다, 1기 신도시 일부가 단순 ‘베드타운’으로 전락했다는 비판 등을 의식해 자족 기능 강화에 신경을 쓰기도 했다.

□ 하지만 자리가 잘 잡힌 신도시는 좀처럼 나오지 못했다. 그나마 분당과 판교 등은 잘 된 신도시로 꼽히며 인기 주거지가 됐지만, 나머지는 정체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잘 된 신도시엔 공통점이 있다. 우선 서울에서 가깝고 교통이 편리하다. 강남은 한강만 건너면 구 서울 도심이었다. 분당, 판교는 강북 도심에서는 멀지 몰라도 비즈니스 신 중심지인 서울 강남과는 지근거리다. 새로운 비즈니스 거점이 형성돼 자족적 기능을 갖춘 것도 중요한 공통점이다.

□ 정부는 신도시에 자족적 기능을 갖추기 위해 다양한 지원책을 강구해왔다. 강남 개발 땐 아예 명문 고교와 학원 등이 반강제적으로 강남으로 옮겨졌고, 기업과 문화ㆍ유흥시설 등이 각종 세제와 낮은 지가 등에 힘입어 강남 이주를 감행했다. 분당과 판교 역시 마찬가지다. 인터넷기업 등을 중심으로 벤처창업벨트가 조성된 게 발전을 크게 뒷받침했다. 정부는 3기 신도시에도 비즈니스 거점을 조성해 자족 기능을 높일 계획이라고 한다. 문제는 그 동안 여기저기 창업ㆍ벤처단지가 조성되면서 3기 신도시를 새로 채워나갈 비즈니스 여력이 별로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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